ERP를 만드는 ‘아줌마들’
2008. 08. 04 디지털라이프, 사람들 |
기자의 필명은 ‘IT수다떨기’다. 수다떨기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문제는 너무 일방향이라는 것이다. 미국 여행길에 올랐던 한 동료는 내 옆에 앉는 불운(!)으로 인해 무려 10여 시간을 고문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순 ‘IT’ 이야기로 말이다. 그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아 재미나게 수다떨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며칠 전 그런 기회를 만들어 봤다. 그것도 아줌마들과 말이다. 일부러 아줌마들을 만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영림원소프트랩이라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솔루션 개발 업체에 여성 개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더니 연락이 왔다.
여성 개발자들과 처음 만난 것은 올 3월 말이었다. 여자개발자모임터(http://cafe.naver.com/womendevel)가 마련한 제 2회 릴레이 세미나인 ‘Women in Technology - IT여성으로서의 커리어 관리와 리더십 함양에 대한 간담회’ 자리였었다. 이번은 여성 개발자들과의 두번째 만남인 셈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가 세명의 여성 개발자를 만났다. 40대의 양춘혁 지원본부 이사(사진 가운데)와 30대인 품질팀 홍기화 팀장(왼쪽), 20대인 기술개발실 이미연 대리(오른쪽)다.
이미연 대리는 만 나이로 서른이안되서 우린 그녀를 20대 대표주자라 칭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유부녀’들이었다. 우리말로 ‘아줌마’말이다.
상투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여성으로서 차별을 느끼지는 않는가.’ 남자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 개발자들에게는 의례 이 얘기부터 묻는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내 아내가 느끼는 고민은 무엇인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심도 들어 있었다.
막상 ‘수다의 선수’들을 만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 수다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맏언니인 양춘혁 이사가 먼저 불을 댕겼다. 양이사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여자가 승진해서 남자 직원들을 이끌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금이야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런 문제는 상존하죠. 그런 면에서 영림원은 나은 편이죠. 여직원 비율이 30%나 됩니다.”
이사 아니랄까 봐 회사 자랑을 먼저 한다. 양 이사는 “영림원으로 자리를 옮겨 혼자 프로젝트 나갔을 때 휴대폰 모듈을 만드는 회사나 LCD 업체를 가 보면 젊은 사장분들이 있어서 그런지 남녀 차별이 거의 없었죠. 이제는 고객들도 남녀 차별을 거의 두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직장 생활 14년차인 홍기화 팀장은 영림원에선 남녀 차별이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여자들만의 모임도 없단다. 공식 인터뷰 자리여서 그런지 회사 자랑이 먼저 나온다. “볼링 동아리가 그나마 여성 위주로 운영됐었는데 오히려 남자 사원들을 흡수 통합했죠”라면서 웃는다.
홍 팀장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영림원소프트랩 권영범 사장이 ‘셋째를 낳는 직원에게 500만원을 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입양을 해도 낳은 것과 똑같이 적용된다. 헉, 나라가 할 일을 회사가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화제는 자연스럽게 맞벌이 생활과 육아로 이어졌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모두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장 큰 고민은 ‘육아’였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가 의례 그렇듯, 야근이 잦은 편이다. 고객에게 제공한 모든 제품에 대한 버전 관리부터 업그레이드 될 때 별도로 개발했던 제품들을 연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든다.
신혼초인 막내 개발자 이미연 대리는 “육아가 제일 걱정이죠. 아이를 낳으면 친정 어머니에게 맡길 생각입니다”라고 전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막연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시부모나 친정부모에게 자녀를 맡기는 경우는 국내 직장인들이라면 다들 경험하고 공감하는 내용이다. 양춘혁 이사는 시부모에게 자녀를 맡기고 있다. 양 이사는 “시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있는데 도우미도 부르고 있어요. 그게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은 커가지만 부모들은 늙어간다. 힘에 부치기 마련이다. 양 이사는 “저희 부모 세대들은 자신들의 살림을 남에게 맡기는 데 익숙치 않죠. 하지만, 육아와 회사일을 모두 자기 손으로 잘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라며 도우미에 손을 내미는 것을 적극 찬성했다. 이제는 부모들도 모두 좋아하고 있다는 것.
직장을 그만 둘 생각은 없었을까. “저는 일을 안하면 아픈 체질입니다. 약간 긴장을 해야 하는 체질 같습니다. 오히려 집에서 쉴 때 몸이 안좋은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홍 팀장의 대답에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홍 팀장도 시부모에게 두 자녀를 맡기고 있다.
홍팀장은 소프트웨어 품질관리를 담당하고 있지만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시 아키텍처 설계에도 참여하고 있다. “주위에서 사장님이 항상 찾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한다”면서 “일복은 타고난 것 같다”며 웃었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전업 주부의 길을 고민하지 않은 이들은 없었다. 양춘혁 이사는 “전업 주부가 된다고 해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아요. 아이들과 보내는 절대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보니 아이들과 놀아도 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집에 있을 때도 살림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해요”라고 말했다.
당연히 남편들과 가사일을 놓고 어떻게 타협하고 협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쏟아졌다.
막내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이미연 대리는 “모든 일을 50대 50으로 나눌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남편은 요리만 빼고는 다 잘 해요”라며?웃는다. 역시 젊은 세대답다.
맏언니인 양 이사는 “남편은 3형제인데 우린 딸이 둘이예요. 처음에는 집안 일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결혼 15년차 되고 딸들이 커가니까 이제는 조금씩 바뀌고 있죠”라며 웃었다. 양 이사는 “서로 자신이 편한 걸 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라고 한다. 역시 인생의 무게가…
홍기화 팀장의 대답은. “아들이 둘인데, 남편은 아이들과 노는 걸 전담해요. 아이들도 놀 때 아빠를 찾더라구요.”
듣고 있다가 모처럼 끼어들었다. 나도 아들이 둘 인데 집안 일로 아내와 항상 티격태격한다. 왜 남자들은 집안을 ‘도와준다’라고 생각하느냐고 아내가 자주 묻곤 한다. 자기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곤 내가 자란 환경을 탓한다. ‘20년간 부엌 근처에는 가지 말라는 부모님 밑에서 컸으니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라면서.
내가 인정할 건 인정한다. 그래서 ‘엄마들이 좀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아들을 둔 엄마들 말이다. 어릴 때 부터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하지 않으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했더니 맞장구가 나온다.
직장인들이면 항상 고민하는 분야로 수다의 주제를 바꿔봤다. 자기 계발은 어떻게 하는 가. 이들은 한결 같이 관련된 책을 읽고, 교육을 받고, 세미나를 찾아가고, 경쟁사를 분석하는 등 개발자로서 기본으로 갖춰야 될 분야에 투자를 한다고 밝혔다.
양춘혁 이사는 “이건 남자나 여자의 문제가 아니지요. 나와 가족, 직장 이 세가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일궈갈지 누구나 고민하는데 시간 배정을 잘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일시적으로 하나에 소홀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세가지 중 하나도 포기하면 안된다고 봅니다”라고 조언했다.
야근이 많은 개발자들이 자기 계발에 투자를 하기란 여간 쉬운 문제가 아니다. 막내인 이미연 대리는 “야근이 많아 시간이 많지 않다”며 하소연했다.
품질팀 홍기화 팀장은 “저는 품질팀이지만 개발도 전체적으로 맡고 있어요. 일복이 터진 것이죠. 일을 마다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경향도 있구요. 물론 저희 원장님(영립원소프트랩에선 사장을 원장이라고 부른다)이 일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죠. 버전이 바뀌면 또 기술이 바뀌죠. 기술이 바뀌면 다시 이를 제품에 반영해야 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하나씩 배워가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맏언니이자 지원본부를 담당하고 있는 양춘혁 이사가 나섰다. 이 대목에선 맏언니보다 이사님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아직은 영림원이 작은 회사죠. 개인들에게 돌아가는 일이 많습니다.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이고 성장하고 있어서 그렇죠. 일상적인 업무 처리하면서 연구 개발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조금 더 크고 체계가 잡히면 자기 계발에 쏟을 시간이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막내인 이미연 대리가 양 이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과연 사장님이 그러실까요?”라고 반문하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일 만들어 내는 권 사장의 스타일은 언제쯤 바뀔 수 있을지 기자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양춘혁 이사는 지원본부를 담당하고 있다. 400여곳의 고객들을 담당한다. 개발도 했고, 컨설팅도 했다가 이제는 그 고객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제품을 사용하고, 새로나온 버전들을 매끄럽게 연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발자와 컨설턴트. 어느 길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양이사는 말한다. “개발 분야에 전문적으로 매진할 수 있고, 컨설팅으로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는 것이죠. 서로가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희망하는 것과 회사가 원하는 것이 잘 맞아서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아요. 개발이 잘 맞았죠”라고 웃는다.
홍기화 팀장은 “제가 하는 일은 제품을 관리하고 수정 사항과 오류 사항을 관리하는 것이예요. 고객사별로 개발한 것을 검수하고 유지보수를 하고 있어요. 패키지가 버전에 맞게 제공돼야 하거든요. 저희는 고객가치전략 회의를 한 달에 한번씩 하면서 고객들이 최신 버전을 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하고 있어요. 이 업무가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했다. 품질팀 팀장다운 답변이다.
끝으로 경쟁사들과의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지 물어봤다. 사장님들을 만나면 항상 묻던 말이다. 내부 구성원들이 느끼는 경쟁업체들에 대한 평은 그래서 궁금했었다.
그렇지만 역시 공적인 만남의 자리였다. 기자가 듣고 싶은 그런 얘기는 없었다. 수다를 떨다보면 실언을 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 회사의 장점만을 강조했다.
“영림원이 현재와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소프트웨어 버전 관리를 잘 해왔기 때문입니다. 품질팀을 두고 철저히 관리해왔죠. 외산 업체에 비해 규모와 역사가 일천하고 부족하지만 국내 업체들에 비해서는 앞서 있다고 자신합니다. 프로세스가 잘 잡혀 있습니다. 고객들도 이런 점을 높이 쳐줍니다.”
여성 개발자들과의 대화가 끝나갈 즈음 홍기화 팀장은 “남자는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잘 파는 것 같고, 여자는 전체를 아우르는 것을 잘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니 맞을 확율이 높아 보인다.
수다가 끝나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장님 덕분에 한 사람은 일찍 자리를 떠야 했다. 여성 개발자, 그들의 당당함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즐거운 수다자리였다.
[관련 글] : IT 분야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건?






2008-08-05 at 10:13 오전
ERP를 만드는 ‘아줌마들’…
기자의 필명은 ‘IT수다떨기’다. 수다떨기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문제는 너무 일방향이라는 것이다. 미국 여행길에 올랐던 한 동료는 내 옆에 앉는 불운(!)으로 인해 무려 10여 시간을 고문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순 ‘IT’ 이야기로 말이다. 그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아 재미나게 수다떨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며칠 전 그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