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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이패드, 놀라움과 예측 가능함 사이

2012.03.09

애플이 3월7일(현지시간) 공개한 새 아이패드는 현존하는 최고의 모바일 디스플레이에 가장 빠른 4G LTE 네트워크를 결합한 최고의 태블릿PC였다. 이번에도 전작인 아이패드 1, 2 출시 당시와 동일한 가격에 최고의 제품을 선보인 애플은 2012년에도 전세계 태블릿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새 아이패드는 그 동안 제기된 각종 루머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매번 놀라움을 선사했던 애플 제품이 스티브 잡스가 떠난 이후 점점 예측 가능한 범위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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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이패드는 듀얼코어 A5X 프로세서(GPU는 쿼드코어)를 탑재했다. 수치만 따지면 최신 스마트폰에 탑재되고 있는 쿼드코어 프로세서에 뒤처져 보일 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서로 다른 운영체제가 경쟁하는 모바일 시장에서 다른 플랫폼끼리의 스펙 경쟁은 무의미한 숫자놀음일 뿐이다. 상세한 성능 비교는 제품이 출시돼야 할 수 있겠지만, 과거 iOS와 애플 하드웨어의 찰떡 궁합을 돌이켜보면 새 듀얼코어 아이패드는 쿼드코어 안드로이드 기기와 비교해 막상막하 혹은 그 이상의 성능을 뽐낼 것으로 예측된다.

직접 봐야 더 실감할 수 있겠지만 신문보다 더 높은 해상도를 자랑한다는 새 아이패드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체감상 아이폰4에 처음 탑재될 당시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아이폰의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작은 화면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했다면, 아이패드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아이패드를 그야말로 잡지나 신문으로 둔갑시킬 것이다. 더 이상 아이패드로 잡지나 신문, 전자책이나 만화책을 읽으면서 인쇄물의 선명한 화질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단지 인쇄물에 비해 오래 보면 눈이 부실 수 있다는 것을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기술적으로도 9.7인치의 아이패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3.5인치의 아이폰 레티나 디스플레이와 비교해 훨씬 큰 진보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AMOLED 기술로는 당분간 10인치급 화면에서 2048×1536 픽셀 수준의 고화질을 구현하기 쉽지 않다. “지금까지 출시된 제품 중에 가장 뛰어난 모바일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는 팀 쿡의 호언장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새롭게 후면에 탑재된 500만화소의 아이사이트(iSight) 카메라는 사실상 ‘무늬만 카메라’에 그쳤던 전작 아이패드2의 단점을 해소해준다. 이제 아이패드로도 1080p HD 비디오를 촬영하고 고화질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바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비록 시리의 모든 기능이 아이패드에 이식되지는 않았지만, 새로 추가된 음성 입력 기능은 터치 키보드의 불편함을 한결 해소해줄 것이다. 단,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를 능숙하게 하는 이용자에 한해서. (한국어 무시하냐!)

향상된 디스플레이와 프로세서, 게다가 4G LTE를 지원하면서도 배터리 사용시간은 전혀 줄지 않았다. 동영상 감상 시 10시간, LTE를 줄기차게 이용해도 9시간까지 버티는 새 아이패드는 충전의 압박에 시달리는 일부 LTE 기기와 다른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느껴질까 말까할 정도로 두께와 무게가 증가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가격도 전작인 아이패드2 가격에서 1달러도 오르지 않았다.(달러화 기준)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 아이패드2는 100달러 내린 399달러로 경쟁 태블릿PC를 압박할 것이다.

새 아이패드가 LTE를 지원한다는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일부 시장에서는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각국 통신사의 LTE 주파수가 표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아이패드가 북미 지역에 맞춰 700MHz와 2.1GHz 대역의 LTE를 지원하면서 다른 LTE 주파수를 이용하는 유럽 및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와이파이+4G 모델이 와이파이+3G 모델로 둔갑할 운명이다. 슬프지만 이 ‘일부 국가’에는 한국이 포함된다.

최고의 디스플레이와 성능을 갖춘 새 아이패드는 LTE까지 이용할 수 있는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날개돋힌 듯 팔려나갈 것이다. 일부 매체는 애플이 올해에만 무려 8천만대의 아이패드를 판매해 아이패드1과 아이패드2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지난 연말 시즌 홀로 안드로이드 진영의 판매량을 넘어섰던 아이폰4S에 이어 또 한 번 효자 노릇을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을 포함해 아직 태블릿이 대중화되지 않았으면서 상대적으로 현지 제조업체의 비중이 높은 일부 시장에서는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별도의 통신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와이파이 버전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통신사들은 결코 그럴 리가 없다. 현지 통신사에 맞춰 제작되는 경쟁 태블릿은 아이패드보다 다소 기능이 부족하더라도 LTE 마케팅에 혈안이 된 통신사들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특히 LTE 기기는 무조건 LTE 요금제로만 가입시키고자 국내 통신사들은 (적어도 올 하반기 IMEI 블랙리스트 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LTE 아이패드를 3G로 가입시켜야 하는 상황을 두고 고심하게 될 것이다. 제 아무리 아이패드라고 할 지라도 통신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빌리지 않고 폭발적으로 성장한 스마트폰 시장에 비해 아직 그렇다할 성장세가 보이지 않는 국내 태블릿 시장을 뒤흔들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서 아이패드의 성적표를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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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애플 CEO가 새 아이패드를 소개하고 있다(출처 : 애플 키노트 영상 캡쳐)

새 아이패드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팀 쿡 CEO의 키노트는 고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를 새삼 느끼게 했다. 연신 ‘amazing’을 연발하는 그의 화법은 스티브 잡스를 그대로 따랐지만, 사람을 현혹시키는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까지는 재현하지 못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애플 제품이 공개 전부터 항상 수많은 루머와 예측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스티브는 항상 그 이상을 보여주면서 전세계 애플 팬들을 열광케 했다.

사실 이번 키노트가 팀 쿡의 첫 키노트는 아니었지만,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로는 처음이다. 지난해 아이폰4S 발표 당시에도 실망감을 표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스티브의 마지막 선물로 분위기는 대반전됐다. “왜 아이폰5가 아니고 4S냐”며 실망했던 사람들이 “4S는 for Steve”라며 애플 스토어 앞에 줄을 섰다.

그러나 스티브의 선물은 이제 없다. 새 아이패드는 루머와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팀 쿡은 이번에도 어매이징을 외쳤지만, 애플 팬들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공개된 새 아이패드는 여전히 최고의 제품이었지만 과거 애플이 아이튠즈나 앱스토어, 아이클라우드나 시리를 처음 공개했을 때만큼 경이롭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공개된 아이패드의 이름이 왜 아이패드3가 아닌 ‘새 아이패드(The New iPad)’일까를 두고 궁금증을 제기하기도 했다. 키노트가 끝나고 필 쉴러 애플 글로벌 마케팅 부사장이 정답을 공개했다. “예측 가능하고 싶지 않기 때문(because we don’t want to be predictable)”이란다. 새 아이패드가 아이패드3가 아닌 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예측 가능했다는 점을 돌이켜봐야 한다.

애플은 CEO의 ‘amazing’뿐만 아니라 전세계 애플 팬의 ‘amazing’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기업이다. 와우-팩터 없이는 퍼스트-무버의 잇점이 점점 퇴색할 수 밖에 없다. 구글은 태블릿과 스마트폰 플랫폼을 통합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로 따라붙으려 혈안이다. MS도 ARM 칩셋을 지원하는 윈도우8을 출시하며 애플 따라잡기에 나설 것이다.

올해에도 최고의 태블릿 제조업체라는 애플의 지위는 변함 없겠지만, 적어도 경쟁자들을 더욱 따돌릴 것이냐 조금씩 추격을 허용할 것이냐, 포스트 PC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장기전의 판도를 가늠할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팀 쿡 CEO도 이러한 반응을 예상한 것일까? 여느 때와 달리 그는 ‘예고편’을 남기며 키노트를 마쳤다.

“올 한해를 걸쳐 어러분은 더 많은 혁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막 출발했을 뿐입니다.”

뭔가 회심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새 아이패드의 국내 출시를 고대하면서 팀 쿡 호의 다음 행선지에도 기대를 걸어본다.

팀 쿡의 예고편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ezoomin@bloter.net

블로터닷넷 기자. 모바일의 시대에 모두 다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 모바일, 스마트폰, 통신, 소통 / 따뜻한 시선으로 IT 세상의 곳곳을 '줌~인'하겠습니다. ezoomin@bloter.net / 트위터 @ezoo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