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의 시대에서 콘텐트의 시대로(2008 미국 케이블 방송 산업 연수기)
글 : 김신희(방송과 콘텐츠 2008 겨울호)
2008년 10월, 한국은 뉴미디어 플랫폼인 IPTV 사업자의 선정으로 방송통신계의 큰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플랫폼에 비해 영상콘텐츠의 수요공급 시장은 갈수록 침체위기에 놓여있다. 이러한 시기에 마련된 이번 연수프로그램은 미국 방송 산업의 실태를 돌아보고 우리나라의 콘텐츠 제공사업자(이하 PP)가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1)규제와 자율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미 연방통신위원회(이하 FCC)는 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따른 아날로그 주파수 대역을 무선 인터넷으로 사용하는 안건이 승인 처리되었다. 이것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방송분야가 아닌 정보통신(IT)분야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구글은 UCC 미디어 채널인 유튜브(youtube.com)를 인수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양대 산맥인 페이스북(facebook.com)을 인수하며 융합 환경에서의 뉴미디어 시장 진출을 준비해 왔다. 반면 최근 한국에서는 망 임차형 IPTV를 준비해 오던 ‘다음 오픈IPTV’가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이후 사업포기를 결정한 바 있다. 국내에서 플랫폼 망을 가지지 않고, 확보된 콘텐트를 기반으로 한 IPTV사업의 첫 시도가 그 충분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사장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의 현재 인터넷망을 이용한 방송 시장(IP를 이용한 혹은 IPTV의)은 한국과 다소 비슷한 상황으로 전화통신망 사업자(AT&T, Verizon 등)와 케이블TV망 사업자(컴캐스트, 타임워너케이블 등)간의 경쟁 구도가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FCC는 이와 관련해 새로운 법을 제정하지 않고 기존의 케이블TV 방송법을 적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IPTV를 준비하고 있는 전화통신망 사업자는 케이블TV 방송사업자로서의 승인을 득하고 그에 관한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IPTV법을 제정하여 결과적으로 특정 통신망 사업자들에게 플랫폼 독점을 보장하는 형태로 추진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케이블TV 사업에서 검증된 기존의 규제방식을 가지고 접근하되 플랫폼, 콘텐츠, 소비자(시청자) 세 주체를 통한 자율적인 시장흐름을 좀 더 두고 본다는 방식이다. 그것은 동등한 기회를 주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시킨다.
(2)뉴미디어와 콘텐트
FCC 임원들과의 미디어 관련 정책, 규제 등의 현황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 웹 혹은 무선 웹을 기반으로 한 독립 뉴미디어에 대한 정책이 있는지 질문을 해 보았다. 인터넷 관련 정책수립을 맡고 있는 로버트 캐넌은 대표적으로 팟캐스팅(podcasting)을 예로 들면서 FCC는 그러한 독립미디어의 출현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어느 누구나 방송을 시작할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또한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타임워너케이블(SO, Time Warner Cable)사도 이와 관련하여 큰 관심을 보였다. 전략 기획업무를 맡고 있는 애덤 메이어는 전화통신사업자가 준비하고 있는 IPTV 사업보다 웹 네트워크를 이용한 독립 미디어 사업자의 행보에 더욱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실례로 2006년 미국에서는 P2P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인 주스트닷컴(http://joost.com)이 메이저급 콘텐트 제공사와의 계약 체결로부터 일반인이 제작한 콘텐트까지 다양성 있는 웹TV 서비스를 선보이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타임워너 케이블사는 한국의 초고속 네트워크 인프라와 그를 이용한 VOD서비스 산업 현황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이 글의 처음에서 인용한 아날로그 대역의 무선인터넷 사용에 대한 FCC의 이번 승인은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융합시기의 전 세계 플랫폼과 콘텐트 산업에 큰 시사점을 남긴 것이라 할 수 있다.
(3)콘텐트의 시대는 오는가?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중요한 인자가 있다. 그것은 망 기술과 콘텐트이다. 망 기술과 콘텐트는 영상미디어 산업을 이끌어 가는 바퀴와 바퀴축의 관계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케이블 방송시장은 두 인자 모두 대규모 자본에 잠식되어 가는 형국이다. 망 기술은 MSO(Multi System Operator)라는 형태로 권력화 되어 가고 있고, 콘텐트는 MPP(Multi Program Provider)라는 개념으로 단일 거대화 되어 가고 있다. 또한 MSO가 MPP를 중복하여 운영할 수 있는 것에 아무런 규제가 없는 상태이다. 자율 시장 경제 논리에서 보면 이렇게 되는 현상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으로 방송이 가진 공익적 성격을 배제한 콘텐트 내용의 선정적 획일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제작(외주제작) 기피, 특정 채널에 대한 독점 계약 등의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감지하고 제제와 행정지도를 펼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근본적으로 규제할 법령이 없다는 점은 공감하고 있었다.
미국도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번 FCC방문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프로그램 동등 시청권 보장1)과 프로그램 동등 전송권 보장2)이었다. 이 두 가지 룰은 필자가 듣기에는 산업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이야기였고, 이것들이 얼마나 실무적으로 잘 적용되고 있는지 알아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연수 기간이었다. 그러나 현지의 몇 몇 PP들과 SO를 방문하면서 규제와 자율 아래 상업성과 공익성 추구가 공존하는 느낌을 받았다면 혼자만의 느낌이었을까?
(4)Welcome to Content Era!
2009년은 한국에서 IPTV가 상용화 되는 원년이다. IPTV가 방송플랫폼의 이동(케이블에서 위성으로, 위성에서 IP망으로의)정도로 논의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폐막한 2008 국제방송통신 컨퍼런스에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봉태 본부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IPTV사업 영역을 열린 IP네트워크를 이용한 다양성 있는 콘텐트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영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점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은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곳이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웹사이트에는 이런 문구가 제일 먼저 나온다.
Inspiring People to Care About the Planet!
지구와 지구촌 문화를 기록, 보존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이 회사는 최근 세계음악을 다루는 채널을 개국했다고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생생한 자연다큐멘터리 제작과 출판 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다. 이런 회사에서 수익성 낮은 세계음악채널을 왜 개국하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그것은 우리의 미션(사명)이다’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수익성이 낮은 콘텐트의 제작과 방송채널의 운영은 자칫 모험일 수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이미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정도의 규모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션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결과는 늘 긍정적이라는 것을 이 회사는 이미 보여주고 있다.
IP를 이용한 방송영역은 가치 있는 콘텐트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많은 제작자들에게 기회의 땅이다. 또한 기존의 PP들도 개성을 살린 콘텐트 제작에 투자함으로써 콘텐트를 통한 광고수익 창출에 새로운 활로가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IPTV기술의 궁극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음악 채널처럼 수익성이 없어도 고유의 미션을 가진 콘텐트 제작자가 양질의 콘텐트를 제작하고, 송출하고, 필요로 하는 소비자(시청자)에게 쌍방향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저렴한 네트워크 플랫폼이 제공되어 질 때 가능해 진다. 이 부분이 간과된다면 결국 IPTV도 케이블TV가 경험했던 부작용들(콘텐트의 획일화 등)을 재방송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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