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정부의 실현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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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정부의 역할도 바꾼다

인터넷은 분산적인 정보의 생산과 분배의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새로운 질서의 확장을 통해서 기존 사회의 풍경을 바꿔나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원의 생산과 분배 활동에 다수의 참여를 보장한 경우가 드물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놀라운 변화다. 예를 들어, 지난 사회의 핵심적 자원이었던 토지나 자본도 모두 극히 일부에게 혈통으로, 신분으로, 계급으로 제한된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급진적으로 다른 출발점을 가졌다. 시작부터 인터넷은 모두에게 개방된 비차별적인 소통의 장이었고, 그 오픈 인터넷은 새로운 혁신과 창조의 플랫폼으로서 수많은 새로운 서비스와 사회적 변화의 원동력이 돼 왔다.

그 같은 맥락에서 지난 2월 29일  ‘열린 정부 만들기'(Open Government)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이 ‘웹2.0’이란 말을 만든 팀 오라일리 외의 다수 유명 저자가 공저했고, 인터넷의 힘이 기존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주장만 놓고 보면 크게 새로울 것이 없으며, 앞서 살펴본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기존의 통찰에서 사실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부2.0에 대한 이론을 넘어선 사례에 근거한 주장

이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이 책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의 생생함 때문이다. 이 책은 공염불이 아니다. 막연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현실로 입증된 사례들을 통해서 정부가 오픈 인터넷에 개방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새로운 행정 서비스를 개발하여 정부의 투명성과 책임성, 효율성을 높이는 열린 정부가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오늘 여기의 현실임을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사례만 여기 제시하면 다니엘 뉴먼의 ‘맵라이트‘(MAPlight.org)와 페르난다 비에가스, 마틴 워텐버그의 ‘매니아이즈닷컴’(Many-Eyes.com)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맵라이트는 ‘세아이아캔’이란 음성인식 회사를 만든 기업가이자 시민운동가인 다니엘 뉴만이 공동 설립한 시민단체로 미국 의회를 움직이는 로비스트들의 정치 자금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금권정치의 타락상을 공개하여 시민들의 집단 행동을 촉구하기로 목표를 세우고, 맵라이트 사이트를 통해 돈과 정치의 연결고리를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위에서 보이는 맵라이트 사이트를 통해서 시민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 특정 법안에 대해 어느 의원이 투표했고, 그 의원에게 정치 자금을 가장 많이 가져다준 사람은 누구인지
  • 의원들이 자신에게 정치자금을 준 집단과 관계된 집단의 법안에 어떻게 투표했는지
  • 특정한 이익단체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대되는 법안 통과를 막은 적이 있는지

물론 설립자 다니엘 뉴만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투명성이 모든 정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사람들이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변화를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부패한 현실은 잔존한다. 그러나 적어도 맵라이트가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의 감긴 눈을 열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IBM 시각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의 연구원인 페르난다 비에가스와 마틴 워텐버그가 만든 ‘매니아이즈닷컴’도 비슷한 사례다.  매니아이즈닷컴은 “누구나 데이터를 업로드하고 시각화할 수 있도록”하는 공공 웹 사이트로 시민들이 공공 데이터를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장을 마련해준다.

구체적으로 해당 사이트는 2007년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알베르토 곤잘레스가 인사청문회에서 자기 책임을 변명했던 사건이나 빌 클린턴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증언 사건 등을 시각화하여 분석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회피성 증언이 당파를 불문하고” 만연한 문제란 걸 만인하에 드러냈다.

나아가, 이 사이트는 정보 활용 능력의 민주화에도 기여한다. 이런 시각화 사이트가 만들어지면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에 능숙한 일부 얼리어답터만 사용할 것 같은 편견이 있기 쉽다. 개발자들이 매니아이즈닷컴의 사용자를 상대로 한 인터뷰 결과를 놓고 보면, 가장 활발한 서비스 이용자들 중에는 스프레드쉬트조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포함돼있다.

열린 정부의 실현 조건

위에서 살펴보았듯, 정부의 데이터를 공개하고 공유하며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웹에 기반한 도구들을 제3자의 도움을 통해 개발함으로써 정부의 투명성,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버드 로스쿨의 로렌스 레식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로, “정부가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지난 수년동안 정부와 각종 행정단체들은 소셜 미디어 활용을 통해 소통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 결과 오히려 나쁜 평판만 높여진 사례도 많았다. 달리 말해, 플랫폼으로서의 정부와 개발자, 사용자로서의 국민이 협업하는 열린 정부로의 패러다임 전환없이 눈 앞의 새로운 도구에만 집착하면 소셜 미디어 남용을 통한 역효과만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열린 정부가 기술에 기반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IT 트렌드의 정부 영역 적용을 통해 자동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실현을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다.

국내에서 이 책의 번역을 담당한 것은 개방적 저작권 문화운동, 콘텐츠 나눔 등을 실현하는 단체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의 활동가 6명이다. 크레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는 이번 책 출판 작업 이전에도 정부2.0과 열린 정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부2.0 그룹을 조직해 호주정부에서 만든 모범적 정부2.0 보고서를 번역, 출간해 온라인에 공개했고, 이를 100인의 공무원에게 보내는 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2010년부터 위키피디아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가며, 없는 시간을 쪼개어 번역을 진행했다.

나 또한 이 책의 번역과 관련된 토론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던 만큼 과연 이 책의 내용이 국내에 적용될 여지가 있는지, 그리고 그렇다면 이 책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전제가 필요한 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보았고, 그 내용은 다음의 3가지로 정리가 됐다.

  • FTA 법안 통과와 발효를 둘러싼 정부와 국민의 갈등에서 보듯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정보의 공개와 공유는 주요한 정책 논의의 진행을 막고,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의 벽만 높인다. 따라서 단순히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실제 국민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 나아가 국민이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공할 것이 아니라, 정부는 플랫폼으로서 데이터란 마당을 깔고, 그 위에 ‘서울버스’ 사례처럼 시민들이 스스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개발해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높여야 한다. 이런 관점을 국내 상황에 적용시켜보면, 오픈웹이나 다른 국제 표준에 맞지 않는 국내 인터넷 환경은 개발 환경을 더 열악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으며, 그 원인이 되는 각종 무리한 규제와 법은 대폭 수정이 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액티브X와 함께 잔존해있는 국민스트레스 공인인증제나 공직선거법을 통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개인정보악법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생각해보자.)
  • 열린 정부를 만드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을 질을 공공영역에 참여함으로써 제고하고자 하는 다수의 시민들이지만, 그 같은 개인들뿐만이 아니라  주도적인 단체들의 활동,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깨끗한 돈을 대주는 공익 재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별히, 앨런 밀러가 공동 설립한 초당파적, 비영리기관인 ‘선라이트 재단’과 같은 재단의 존재는 이 책에 소개된 각종 사례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해당 단체들이 정부나 산업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정부의 책임성, 투명성을 높이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금적 기반을 이 단체가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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