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큐레이션 시대, 정보에서 관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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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의 시대는 현실이다

‘전자책의 충격’으로 유명한 일본의 IT 평론가 사사키 도시나오의 ‘큐레이션의 시대’가 지난 2012년 3월 30일 민음사에서 출판됐다. 일본에 비해 출판된 시기에 다소 지연된 감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책은 호기를 맞아 세상에 나온 듯하다. 지금은 포스트 페이스북으로 주목을 받는 관심사 공유 사이트인 핀터레스트가 세계 3위의 SNS로 등극을 하고, 직원 13명의 사진 공유 앱 회사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에 약 1조원에 인수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최대의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갖고 있는 카카오가 사진을 중심으로 한 일상 공유 SNS인 카카오스토리를 발표해 1천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한 상황이기도 하다. 큐레이션을 핵심 콘셉트로 한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들이 힘을 얻고 있으니, 큐레이션의 시대란 말이 시대적으로 어색하지 않다.

소셜 플랫폼 이전의 시대

책의 내용은 본문에선 명확하게 구분돼 있지 않아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소셜 플랫폼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구분돼 있다. 저자는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플랫폼이 사람들의 웹 사용을 오프라인과 연결시키고 극대화시킨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 시대로 나눈 뒤, 소셜 플랫폼 이전에는 매스를 대상으로 한 과시적 소비를 콘셉트로 한 마케팅이 주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사회가 집단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전엔 학교를 중심으로, 졸업 뒤엔 회사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것없는 우리의 지난 일상을 생각해보면 그 배경이 쉽게 이해가 된다. 이런 사회에선 소비역시 철저히 상하 위계가 나뉜 사회에서 자신의 신분적 위치와 열망을 반영해 이루어진다. 클래식 연주를 보러가면 상위 계급인 식이다. 지금도 가끔 보게 되는 사람들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교묘히 자극하는 상업 광고들이 이 같은 심리에 기초한다.

소셜 플랫폼 이후의 시대

그러나 그 같은 ‘국민영화’, ‘국민드라마’, ‘국민가수’와 같은 한 세대를 통일하는 보편적 트렌드의 시대는 이제 퇴색하기 시작했다. 보편적 트렌드를 지탱하던 집단 중심의 사회적 구조가 인터넷 혁명을 통해 누구나 정보의 수신자인 동시에 발신자가 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전과는 달리 이젠 누구 한 명, 한 집단이 정보가 흐르는 물줄기를 막고, 통제하고, 관리하기가 어려워졌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취향 자체도 이전처럼 임의적으로, 보편적으로 정의되지 않고 실제 그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하게 됐다. 소비 집단은 거대한 매스를 이루기보다는, 작지만 응집력이 강한 정보 생태계인 비오톱들의 연결로 재편성됐다.

이건 국내 상황을 생각해봐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된다. 1990년대 서태지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소녀시대가 시장과 사회에서 갖는 지위는 다르다. 비록 그들이 국제적인 인기를 얻고 있긴 하지만, 서태지가 갖고 있던 문화적, 정치적 트렌드 세팅 능력은 갖고 있지 못하다. 이것은 서태지와 소녀시대의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시대의 차이이기도 하다.

문화산업 전반을 통해서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더 명확해진다.  1990년대는 영화산업과 음악산업이 유통권력을 쥐고 있던 시대였다. 그들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DVD와 CD에 담아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관련 상업이 성장했다. 말 그대로 굴뚝 없는 공장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인터넷의 시대를 맞으면서 그 같은 버블은 폭락했다. 더 이상 정보는, 콘텐츠는 희소한 자원이 아니게 됐다. 사람들은 사방에 콘텐츠가 편재한 상황에서 DVD, CD를 사야 할 특별한 경제적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유통의 축은 공급자에서 플랫폼으로, 그리고 사용자에게로 이동했다.

새로운 콘텐츠 유통 흐름에 주목하라

도시나오는 이 시점에선 과시적 기호 소비가 아니라 두 가지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유통만이 살아남는다고 역설한다. 하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선두주자인 유니클로와 같은 신속하고 저렴하게 트렌드를 소비할 수 있는, 철저히 기능적 측면에서 극적으로 진화된 유통 구조다. 애플이 만든 아이튠즈나 앱스토어와 같은 생태계가 사실 그런 공간이다. 하루에도 팟캐스트와 앱들이 쏟아지고, 인기를 얻고, 곧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 같은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또하나는 ‘콘텐츠 + 콘텍스트’의 유통 구조다. 정보가 넘쳐나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에겐 이제 새로운 니즈가 발생한다. 그 콘텐츠의 옥석을 가리는 것이다.  다수의 학자나 정책가 집단들은 이럴 때, 시민들이 좀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정확한 정보, 도움이 되는 정보를 구분해서 수용하라고 말하지만, 이건 비현실적인 당위론이다.  기자나 연구자들은 특정 주제에 대해 사실 파악을 하는 것이 직업이지만, 일반인들에겐 그것은 사치이고, 무리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책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상대적으로 어떤 정보가 정확한 정보인 지는 몰라도, 누가 좀 더 신뢰가 가는 정보를 말하는 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더 필요한 정보,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큐레이터가, 큐레이팅을 해주는 서비스의 부가가치는 더 높아지게 된다.

포스퀘어와 구글의 차이

이렇게 보면, 기능 소비와 연결 소비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후자의 관점에서 큐레이션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분명하지만, 섣부른 큐레이션은 되레 된서리를 맞기도 한다. 큐레이션이 대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렇게나 큐레이션을 한다고 해서 대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관련해 저자가 제시하는 모범적 실패 사례는 사용자들의 위치 정보를 큐레이션하려 했다가 욕만 먹고 한발 물러나야 했던 ‘구글 래티튜드’다. 최근의 구글 통합 계정 정책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있는 곳의 위치 정보를 공유하는 래티튜드는 제도적인 관점에선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는 서비스다. 그러나 이 서비스가 인기를 얻지 못했고 오히려 구글의 평판에 악이 됐던 까닭은, 이 정보의 공개를 하는 과정에 사용자에게 가시적인 인센티브가 제시되지 않았고 그 선택이 본인의 것이란 점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정보의 결정권이 본인에게서 특정 기업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싫어한다. 그것이 현행법상 큰 하자가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사실 포스퀘어란 서비스가 하는 일도 이 구글 래티듀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다. 포스퀘어를 통해서도 내가 있는 위치 정보가 타인에게 공개되고 공유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과정이 나의 명성과 재미란 명백한 개인적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철저한 본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작은 차이지만, 사실은 크다. 서비스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법이 아니라 사용자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사람들을 데이터로 봤지만, 포스퀘어는 그 데이터를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보았다. 큐레이션의 시대에 접속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차이를 명심해야 한다.

정보에서 관점으로 권력 이동

사실 이 책의 미덕은 새로운 대세론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이젠 블로그 마케팅이다, 소셜 마케팅이다 하고 떠드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이런 ‘꾼’들은 본질을 모르고 단기적 전술에 치중하며, 중장기 전략 따윈 모르는 사람들이다.

대신에 책에 시종일관 담겨있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사람’과 ‘문화’ 중심의 시각이다. 일본 후쿠이(福井県) 시에서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있는 구석진 곳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지만 다수의 단골 고객을 확보한 명품 안경점의 주인 다나카 마사유키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 이색적인 안경점의 인기의 원인은 간명하다. 그것은 마사유키가 안경뿐 아니라 안경에 대한 정보, 지식, 문화를 파는 큐레이터이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면 어떤 안경이 좋은가 뿐만 아니라, 진정 안경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안경을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안경 제조 산업에 대한 세세한 정보와 자신의 제품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최고의 제품을 적합한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 강렬한 긍지와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은 고객들에게도 쉽게 전염되며, 다시 한번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그곳을 찾고 싶게 만든다.

이는 다시 말하면 소셜 플랫폼의 시대에서 한단계 진화한 큐레이션의 시대는 오타쿠의 시대란 것을 뜻한다. 웹2.0에선 위에서 시키지 않고, 돈을 주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창조하고 공유하는 아마추어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젠 그러한 아마추어들,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들이 넘쳐나는 시점에서, 콘텐츠의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있고 그것을 임팩트있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디자인할 때주요 고려 대상이 된다. 자기 분야에 대해서 정심한 이해를 갖고 있고, 그러한 열정을 나누는 것에 전문적인 오타쿠들이 콘텐츠에 콘텍스트를 제공하고, 서비스에 경쟁력을 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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