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유피플] 민세희 “세상을 데이터로 그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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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디자이너가 환경 문제를 다룬 ‘불편한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나은 세상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멀리 남극에서 벌어지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이 변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여주지? 그 순간, 그녀는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기로 마음 먹었다.

데이터 시각화 디자이너이자, 미디어 아티스트 민세희님을 만나기로 했다. 합정에 위치한 랜덤웍스 스튜디오의 사무실 근처에는 상수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단촐한 공간에는 지난 작업과 관련된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고, 작업에 사용하는 각종 장비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현재 스튜디오에 소속된 인원은 3명. 각각 영상 및 비주얼, 조형 및 미디어 아트, 데이터 시각화 및 프로그래밍을 담당한다고 한다. 상근자 3명 외에도 작업 방향과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이고 흩어진다고 한다. 공사 소음이 시끄러웠다.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됐다.

데이터 시각화 작업은 무엇일까. 올해 초 미국의 오바마 정부의 예산안 때문에 이슈가 된 인포그래픽과는 무엇이 다를까. “사실, 차트, 그래프, 인포그래픽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에요. 틀린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것들도 데이터 시각화는 맞지만, 일부분에 불과해요. 데이터 시각화는 데이터를 만들고, 유통하고, 보고, 소비하는 사람간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에요. 정보들을 수치로 둘 수 없으니 전달하기 좋게 다른 매체를 활용하는 것인데, 그 매체는 프린트물도 될 수 있고 영상이 될 수도 있고 애플리케이션이 될 수도 있지요. 인포그래픽이 이미 데이터에서 인포메이션으로 바뀐 형태라면, 반대로 데이터 시각화는 이용자 입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데이터를 묶어서 인포메이션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에요. 이렇게 묶으면 이 정보가 되고, 저렇게 모으면 저런 정보가 되고 내용이 바뀌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시각화’라는 단어에 집중하느라, 데이터 시각화 작업 본연의 목적을 잊는 경우가 많다. 민세희님은 사람들에게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최근 랜덤웍스가 SK텔레콤과 함께 2012 여수 세계 박람회에 보여줄 ‘SKT 트래픽 데이터’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보자.

“기본적으로는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에 사람들의 데이터 소비량이 얼마나 바뀌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요. 네트워킹 환경을 가지고 관련된 주체들의 다양한 이슈들이 존재해요. 통신사는 충분히 네트워크 기반을 만들었다고 하고, 이용자들은 우리가 돈을 내는 만큼 쾌적한 환경을 받고 싶다고 얘기하고, 개발자들은 판매한 애플리케이션 구동을 위한 인프라를 요구하고, 다시 통신사는 애플리케이션 때문에 네트워크에 무리가 간다고 얘기하고. 누가 책임이냐는 얘기를 하기 전에 어떤 상황인지 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마포구 같은 곳에서는 밤새도록 3G 네트워크로 영화를 받는 몇 몇의 헤비 이용자들이 같은 동네의 트래픽을 전부 사용하는 일도 있더라고요. 일반 이용자들은 네트워킹에서의 관계를 본인과 통신사와의 관계로만 보고 있어요.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중요한 것이에요. 네트워크는 공유재적인 성격도 있기 때문이에요.” 즉, 개개인이 네트워크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결국 사회 전체적인 인프라를 낭비한다는 점을 시각 작품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개인들이 자신의 네트워크 사용 습관에 대해서 돌아보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녀의 혁신적인 방법과 사회적인 가치는 외국에서 먼저 주목 받았다. 2011년 세계적인 혁신가들에게만 주어진다는 ‘TED 펠로우‘에 선정되고, 2012년에는 ‘TED 시니어 펠로우’에 선정된 것이다. “TED 펠로우는 메인 TED에서 20명, TED 글로벌에서 20명을 뽑아요. 그 40명 가운데 10명만 시니어가 돼요. 나머지 30명은 다음 번에 시니어에 지원할 수 있는데, 계속 누적이 되니 경쟁률이 치열한 셈이지요.”

민세희님은 MIT 랩에서 일할 때, 동료 중 한 명이 TED 펠로우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도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펠로우가 되면 무조건 첫 해 컨퍼런스에 참여해 4분간 발표를 해야 합니다.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발표를 해봤어요. 펠로우라서 그런지, 리허설 때 고쳐야 할 점을 가르쳐줘요. 한국에서 영어 스크립트를 외어 갔는데, 고치라고 하니 이틀 밤 꼬박 새서 다시 외웠죠. 청심환 먹고 정신 없이 발표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TED 펠로우로 활동하기 시작하자 국내에서도 자연스레 민세희님과 랜덤웍스, 데이터 시각화 작업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주요 언론에서 인터뷰도 잇따랐다.

다만 그녀는 TED 활동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교조화되거나 브랜드화되는 점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저에게 TED 펠로우라는 타이틀이 의미가 있긴 하지만 제 전부는 아니에요.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에게 자극이 되었던 점은 좋았어요. 국내에서도 지나치게 TED 행사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때로 본질이 흐려진 것 같아요. 우리끼리만 나누기 아까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TED는 단순히 그걸 내보내기 위한 채널이라고 봐요.”

외국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인 정부2.0과 공공 데이터 개방에 대해 국내의 움직임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데이터를 개방해서 활용도 할 수 있구나 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정도에요. 선진국에서 하니까 우리도 하자거나, 좋으니까 해야 된다는 식으로 너무 강요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에요. 왜 해야 되는지, 하는 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대해서 설득해가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얼마 전 프로그래머, 공무원, 비영리단체 활동가, 대학 교수 등 다양한 직업으로 구성된 사람들과 함께 공공 정부 데이터 오픈에 대한 스터디를 마쳤다. 앞으로도 데이터 공개에 대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과 모아서 지속적으로 활동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녀의 꿈은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데이터가 순환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해보고 싶은 건, 어떤 주체에 의해서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그 데이터가 보여지고, 그 시각화에 의해 촉발된 행동에 의해서 다시 어떻게 주체에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면, 개인에게 병원에 있는 건강 데이터로 시작해서, 거기에 식습관과 생활 환경 등에 대한 데이터가 추가되고, 그것이 시각화돼 내 습관과 환경을 변화시키게 되고, 다시 건강 데이터로 돌아가는 거예요. 여러 데이터를 다양하게 섞고 활용해야 하는 작업인데, 쉽지는 않겠지요.”

데이터 시각화 작업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말을 덧붙였다. “예전보다 관심은 많아졌는데, 여전히 모르겠다는 곳이 더 많아요. 너무 관심이 확 일었다가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꾸준히 천천히 갔으면 좋겠어요.”

글쓴이 고두현(@godugodu)은 CC코리아 자원활동가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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