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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를 둥실 띄워 PC로 조작…MIT ‘제론’ 프로젝트

2012.05.18

물체를 공중에 띄우고, 마음대로 조작하는 장면은 영화나 게임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초능력이나 마법의 힘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술의 힘을 빌려 이 같은 시도를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이진하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 텐저블 미디어그룹 박사과정 연구원의 ‘제론(ZeroN)’ 프로젝트다.

“만약 물질을 중력과 관계없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조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뭘 할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이진하 연구원이 고안한 제론 프로젝트는 자기장의 힘을 빌어 물체를 공중에 띄우고, 이를 컴퓨터를 이용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장치다. 기술적으로는 자기부상과 적외선 센서가 이용됐다.

제론 프로젝트는 우선 물체를 자기장을 이용해 공중에 띄우는 기술로부터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오래전에 소개된 자기부상을 발전시킨 기술이다. 제론 프로젝트에는 물체의 위치에 따라 자기장의 크기를 바꾸며, 물체의 높이를 유지하는 기술이 추가됐다. 한 점뿐만이 아니라 3차원 공간 전체를 마치 무중력 공간인 것처럼 만들기 위함이다. 사용자가 물체를 어디에 둬도 그곳에 물체를 띄울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기계를 3차원 공간상에서 움직이도록 해 사용자가 물체를 어떤 지점으로 움직이든지 컴퓨터와 웹캠이 물체의 위치를 읽어내 물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마지막은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사람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장치다. 이진하 연구원은 웹캠을 이용해 3차원 공간을 읽어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제론 프로젝트에 더했다. 사람이 물체를 움직이면, 적외선 장치가 움직인 궤적을 파악하고, 스스로 물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제론 프로젝트는 이 같은 세 가지 기술을 한 상자에 담은 장치다. 기존 자기부상 기술이 물체를 단순히 한 지점에 띄우는 것에 불과했다면, 제론 프로젝트는 3차원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제론’이라는 이름도 없다는 뜻의 ‘제로(Zero)’와 물리적 힘의 단위 ‘뉴턴(Newton)’에서 따왔다.

“신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신화엔 흙이 움직이는 ‘골램’이 등장하기도 하죠. 고대 연금술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로웠고요. 이런 이야기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뭔가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물질을 어찌 해보려는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됐죠.”

물질을 조작하는 것은 어렵다. 중력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력을 벗어나는 우주선을 띄우고 의술을 발전시켜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중력은 만물을 지배하고 중력에 대한 인간의 저항은 계속된다. 이진하 연구원은 “신화나 이야기를 통해 물리적인 제약에서 물체를 해방시키려는 공통된 주제를 발견하고 그걸 실제로 구현해보고자 했다”라고 덧붙였다.

탄생 배경도, 구현 과정과 목적도 독특하다. MIT 엔지니어의 기술 프로젝트 결과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 엔지니어의 기술과 전위적인 설치예술가 기질이 제론 프로젝트라는 한 상자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제론 프로젝트’ 시연 장면

제론 프로젝트는 아직 실험실에서 연구가 진행 중인 단계다. 실제로 어떤 분야에서 쓰일 수 있을까. 이진하 연구원은 여기서 ‘소통’과 ‘공존’의 문제를 꺼냈다. 제론 프로젝트가 어떻게 소통과 공존에 도움이 될까. 이진하 연구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주공간의 천체나 물질의 원자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사람들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죠. 실제로 행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볼 수 없습니다. 우주의 움직임이나 원자의 운동은 컵에 물을 따르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과 규모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우주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망원경을 만들었다. 원자의 운동을 보려면 현미경을 써야 한다. 축구공이 어떻게 날아가는지를 관찰하는 일은 사람과 비슷한 규모의 영역에서 일어나지만, 우주와 원자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규모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관찰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는 경험과는 무관하다.

제론 프로젝트는 관찰 영역에 머물러 있는 현상을 실제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의 규모로 축소하거나 확대해줄 수 있다. 이진하 연구원은 다른 규모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체험하고 이해함으로써 사람이 자연과 소통하고 공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제론 프로젝트는 결국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기술인 셈이다.

제론 프로젝트는 이진하 연구원의 과거 이력만큼이나 흥미롭다. 어쩌면 이진하 연구원의 옛 경험이 제론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진하 연구원은 경기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에 진학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던 대학교 1학년 때 꿈은 예술가였다. 자동차 디자인업체와 건축 디자인 사무실을 기웃거린 것도 이때다. 결국 기웃거림으로 끝났지만, 예술가 기질은 동경대를 졸업하고 진학한 MIT까지 따라왔다. 이진하 연구원은 “‘예술가’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고, 이때를 “방황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MIT 미디어랩이 발표하는 프로젝트는 항상 사람을 향한다.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을 만들고, 본 적 없는 디자인을 발표한다.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술이 녹아 있을지라도 그 끝은 항상 사람이다. 이진하 연구원도 마찬가지다. 이진하 연구원의 눈은 항상 사람을 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리서치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발표했던 ‘시스루 3D 데스크톱’ 프로젝트도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모니터 속에 있는 컴퓨터 픽셀을 어떻게 3차원 공간에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MS 동작인식 센서 ‘키넥트’와 반투명 OLED 디스플레이의 도움을 받아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3차원 픽셀을 윈도우 운영체제에 구현할 수 있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휴머니티라는 개념 덕분에 우리가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 다른 생명과 동질성을 찾아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인문학적인 비전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로서 기술을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제론 프로젝트라는 상자에 기술과 사람, 소통의 문제가 함께 담기는 순간 핵심은 기술이 아니다. 이진하 연구원에게 기술은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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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론 프로젝트’ 시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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