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란 “전자책과 종이책은 보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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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와 맥주는 경제학에서 보면 대체재입니다. 한쪽 수요가 증가하면 다른 쪽은 감소한다는 건데요. 사실은 굉장히 밀접한 보완재입니다. 저는 종이책을 소주로 보고, 전자책을 맥주로 보는데요. 술 마실 때 1차에서 끝내는 사람이 있나요. 1차에서 소주 마셨으면, 2차에서는 맥주 마시고, 때론 섞어도 마십니다. 책 많이 읽는 사람은 종이책도 보고 전자책도 보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책은 지성을, 술은 주량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는데 둘을 비교하니 그럴듯한 이론이 나왔다. 이 흥미로운 이론은 한승일 오란 출판사 대표가 떠올렸다. 한승일 대표는 전자책 전문 1인출판사 ‘오란’을 차리고, 이달에 두 번째 책 ‘랭킹 도쿄’라는 여행 서적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한승일 오란출판사 대표

▲한승일 오란 대표

# 전자책과 종이책은 만드는 과정도 독자가 받아들이는 법도 같다.

한승일 대표는 혼자 기획하고, 글을 쓰고, 편집하고, 디자인, 영업을 맡는다. 1인출판사를 차렸으니 당연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은 출판사에서는 여러 사람이 나눠 하는 업무와 같다. 다시 말하면, 전자책 전문 출판사가 하는 일과 종이책을 출간하는 기존 출판사의 일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도 된다. 종이책에 중간 유통상인 총판이 있는데 오란은 한국출판콘텐츠(KPC)를 통해 전자책을 팔 계획이란다.

“책을 만들 때 전자책과 종이책이 다른 점은 종이에 인쇄하느냐, 스크린에 뿌려주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죠. 종이책은 전문 편집인이 기획하는데 전자책은 아무렇게나 하진 않을 거예요. 편집할 때 전자책이라고 오타를 그냥 넘어가나요?”

책이 안 팔린다는 이야기는 두 시장 모두 같이 해당하고, 책값 비싸다는 말은 전자책뿐 아니라 종이책을 두고도 나오는 말이라고 한승일 대표는 덧붙였다. 종이책을 두고 ‘종이 아깝다’, ‘나무한테 미안하지 않니’란 말이 있단다. 의미 없거나 팔리지 않는 책을 두고 하는 말이는데 전자책이라고 어디 다르랴. 누구도 읽지 않을 전자책은 서버, 랙, 인터넷 망을 낭비하게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오란의 첫 책 ‘직장인 인도 여행’

# 1인출판, 책 기획·집필·편집·디자인·마케팅·영업·관리 모두 할 수 있나.

그런데 한승일 대표 혼자 기획, 글쓰기, 편집, 디자인, 영업 등을 맡는다니, 사장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한승일 대표는 1인출판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1인출판은 혼자 사업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실 출판이 혼자서 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창업한 사람들이 주로 많은데요. 대개 보면 편집자 출신은 출판사를 차리곤 기획·편집만 하고, 마케터 출신은 마케팅만 하고 있어요. 나머지 과정은 전부 외부에 의뢰하고요.”

책 한 권이 서점 진열대에 오르는 데에 이런 과정을 거친다. 일단 어떤 책을 낼지 기획을 하고, 그에 맞는 작가를 섭외한다. 원고를 받고 나면 편집을 하고, 디자인 과정을 거쳐 인쇄한다. 이 사이에 교정과 교열 작업이 있고, 디자인은 내지와 표지 디자인으로 나뉜다. 그리고 총판을 통해 서점에 가는데 책을 팔기 위해 홍보·마케팅도 필요하다. 1인출판사 대표가 이 과정 중 하나만 할 줄 안다면 나머지는 전부 외부 업체에 비용을 들여 의뢰해야 한다.

결국, 1인출판도 돈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한승일 대표는 10년간 편집자로 일했지만 창업을 앞두고 출판학교에 다니며 저작권 관리나 인디자인 등을 배웠다. 지금 한승일 대표의 꿈은 1인출판이 아니라 자본에서 자유로운 독립출판이다.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면서 한승일 대표는 왜 출판사를 차렸을까. 그것도 전자책 전문 출판사를 말이다. ‘전자책 시장이 뜬다’라는 말이 나오지만 출판사나 서점은 전자책이 전체 매출의 1~2% 정도 규모라고 말한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같이 출간하는 출판사는 종이책으로 사업을 꾸릴 수 있겠지만, 전자책 전문 출판사는 매출을 올리기 어려운 것 아닐까.

한승일 대표는 ‘배운 게 출판’이라며 입을 뗐다. 한승일 대표는 북하우스를 비롯해 출판사에서 10년을 일했다. 책을 좋아해 발을 들였는데 아무리 안 팔리는 책도 10권 정도는 누군가가 사갔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번 산 책은 버리지 않는 습관이 있으니, 그 책을 사간 사람은 최소 10년 책장에 꽂아둔다고 한승일 대표는 말했다.

“내가 만든 책을 10년간 누군가 손에 들고 반복해 읽는다는 것, 자료로 남는다는 것은 책임이 굉장히 막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론 제가 멋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란 기분도 들었고요.”

오란 랭킹 도쿄

오란 랭킹 도쿄

▲오란의 두 번째 책 ‘랭킹 도쿄’

# 전자책 출간 수 부족한 지금이 기회다.

전자책 출판사를 차리며 한승일 대표는 실용서적에 주목했다. 각국의 상황에 따라 여행 정보가 시시각각 변하는 여행서적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첫 책을 인도 여행서적으로 출간했고, 곧 일본 여행서적도 출간할 계획이다.

“요리책을 사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서점 웹사이트에서 ‘요리’라고 검색하거나 요리 카테고리를 찾아가겠지요. 그리고 값이 싸거나 경품을 주는 책을 고를 겁니다. 사실 실용서 시장에서 경품은 구매력을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전자책 시장은 아직 요리 카테고리조차 없어요. 여행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지금 시장은 광고보다 검색에 노출돼야 하는데요. 그래서 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책 카테고리가 없어 기회조차 없는 것 아닌가 싶은데 도리어 틈새를 파고들겠단 생각이다. 물론, 전자책 시장에 콘텐츠 수가 부족한 건 아쉽다고 한승일 대표는 말했다.

“전자책 출판사를 차린다고 하니 주위에서 ‘그건 뭘로 봐?’, ‘어디에서 사?’란 질문을 받았어요. 스마트폰이 2천만대가 넘게 보급됐다는데 전자책은 누구나 다 아는 시장은 아닌 것 같아요. 손으로 써서 우편으로 부치는 편지가 있고 e메일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책은 전자책도 있고, 종이책도 있다고 느끼는 때가 와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