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뛰는SW](25)조영철 파이오링크 대표 “철저한 시장조사가 관건”

가 +
가 -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 국내외 네트워크 장비 업체와 인연을 맺었다. 그런데 취재가 쉽지 않았다. 라우터, 스위치라는 용어부터 생소했고 레이어7 계층을 이해해야 했다. 업체도 많고 장비 이름들은 서로 다르고, 또 닷컴 버블이 끝나가던 시기라서 다들 어려워했다. 특히 국내 시장 위주로 사업을 하던 국산 장비 업체들은 외산 업체들에 비해 더 고전하고 있었다. 좋은 시절 다 갔다는 냉소도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몇몇 기업들은 시장에서 사라졌고, 서울 강남구 테헤란밸리에 사무실을 뒀던 곳들은 경기도로 회사를 옮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화가 안 되는 곳들도 나왔다. 이 때문이었는지 고객들은 국산 네트워크 기업들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보기 시작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기업의 제품을 도입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고스란히 그 책임을 자신들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유독 외산 벤더들이 힘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네트워크 업계에서는 ‘신데렐라와 일곱 난장이’로 관련 시장 구도를 설명한다. 시스코를 뺀 나머지 고만고만한 외산 업체들이 시장에 존재한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나마 그 일곱 난장이에 국산 네트워크 장비 업체는 없었다. 기존 네트워크 업체들도 하나둘 합병이 되고 HP나 IBM, 델 같은 회사들은 직접 업체를 인수하거나 시스코 경쟁회사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고객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시스코와 경쟁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이제는 적이 아닌 곳도 적이 되는 상황이다.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딱히 이런 상황이 크게 변한 건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는 곳들이 있다. 파이오링크도 그런 업체 중 하나다. 이 업체는 ADC(Application Delivery Controller) 전문업체로 불리며 통상 L4/7 장비를 제공한다. 최근엔 VoIP 보안 장비와 L2 보안 스위치도 만들면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L4/7 기술을 활용해 웹방화벽 시장에 뛰어든지도 5년이 넘었다.

다시뛰는SW 꼭지로 조영철 파이오링크 대표를 찾았더니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데 왜 소프트웨어 인터뷰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겉은 하드웨어지만 두뇌는 SW 아닌가요. 시스코도 자기가 소프트웨어회사라고 이야기합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하긴 우리 내부 엔지니어들 대부분이 시스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말했다.

강남에 위치했던 파이오링크가 서울 가산디지털 단지로 이사한 후 처음 찾았다. 찾은 날은 사무실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파이오링크의 네트워크 장비가 조립되는 곳도 보여줬다. 자신들이 설계해서 전문 파트너들에게 의뢰해 받은 부품들을 회사 내부에서 조립하면서 하나 하나 테스트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인텔이 대대적인 CPU 성능 개선과 저전력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용 네트워크 칩을 사용하던 장비 업체들은 인텔 CPU를 자사 장비에 탑재시키고 있다. 이는 파이오링크도 마찬가지다.

초기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이나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유닉스 머신에 자체 보안 혹은 네트워크 소프트웨어를 개발, 고객에게 제공했다가 전용 네트워크 칩을 탑재한 어플라이언스를 제공하다가 다시 범용 칩을 사용하는 사이클로 돌아왔다.

파이오링크를 찾는 이유는 네트워크 분야에 뛰어들어 10년 넘게 시장에서 버텨내고 새로운 시장에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비결이 궁금해서였다. 외산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확실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도 물어보고 싶었다. 파이오링크는 올해 23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안 L2스위치와 VoIP 파이어월도 출시했고, 일본과 중국 시장에 대한 도전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최근 시장조사기관인 프로스트앤설리번으로부터 ‘2012년 한국 ADC 성장 리더십 어워드(2012 Frost & Sullivan South Korea Growth Leadership Award in the Application Delivery Controller Market)’를 수상했어요. 지난해에도 그랬죠. 기타에 속해 있다가 이제는 리더에 위치해 있을 정도로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아 기쁩니다”라고 밝혔다.

12년 전 해외 장비 업체들이 장악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나서 받은 것이라 더 의미도 커 보였다. 국산 장비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국내 고객들은 물론 해외 고객들에게 다가서기에도 한결 나아졌다.

파이오링크는 기업 경영에서도 조금은 독특한 면이 있다 . 그는 세 번째 대표이사다. 설립 멤버 중 한 명이지만 파이오링크는 초창기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회사를 이끌도록 부탁했다. 엔지니어들이다보니 경영을 도맡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전문경영인이 물러서고 창업 멤버 중 조 대표가 총대를 메었다. 조영철 대표는 “저는 오래 갈 것 같습니다”라고 웃었다.

설립자들이 회사 내부에 중책을 맡으면서 전문경영인을 초빙해 일을 맡기는 형태였다. 해외 벤처기업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국내는 이런 실험을 하는 기업들이 많지는 않다.

그는 “쉽지 않은 시도였고, 전문 경영인과 설립자들간 의견 충돌이 나면 모든 구성원들도 힘들어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이제는 그런 실험은 당분간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조영철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 230억원의 매출 목표를 마련했다. 완전히 시장에 안착했다는 자신감인가.

= 기존 사업에 보안 스위치와 VoIP 방화벽 같은 신규 제품들이 결합돼 있어서 그렇게 잡았습니다. 일본과 중국 시장도 성장세에 있습니다. 상반기 매출을 보면 예상한 대로 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예전에는 상반기와 하반기 매출이 3대7 정도였는데 최근엔 4.5대 5.5 정도입니다. 올해 선보인 제품들은 하반기를 견인할 수 있을 겁니다. L4 분야의 경우에는 프로스트앤설리번에서 ADC(Application Delivery Controller) 분야 리더로 선정했습니다. 2년 연속입니다.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진 것이죠. 국내외적으로 고객들을 만날 때도 유리합니다. 국내서는 대략 30~35% 가량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쉬운 영역이 하나도 없기는 하지만 네트워크 분야는 정말 만만치 않다. 이 분야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다.

= 전공이 네트워크였습니다.(웃음). 관련 공부를 했고, 그리고 창업자들도 모두 네트워크에 관심이 많았죠. 잘하는 분야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전송부터 단말단까지 알고 있습니다. 너무 진입 장벽이 낮고 기술이 쉬우면 안되는 분야를 찾다보니 L4 스위치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창업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 기업에 들어가도 내가 1만명은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오버인가요?(웃음). 내 밥벌이만 해서는 공헌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그런 일이 대기업보다는 내가 회사를 만들었을 때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만들자고 결심했죠. 물론 혼자서는 도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친구들과 같이 사업을 하게 되어 도전을 한 것이죠.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망하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실력있고 좋은 친구들입니다.

– 조영철 대표는 파이오링크의 세번째 대표다. 조금은 이례적으로 이전 두명의 CEO가 전문 경영인이었다. 벤처에서는 흔하지 않다.

= 창업자인 3명이 기획이사, 연구소장, 제품 생산을 담당하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했습니다. 회사를 잘 키워주셨어요. 그런데 초기 3년 가량 지나서 대표가 몸이 많이 안좋아지셨습니다. 내부적으로 창업자 중 한명이 대표를 맡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있었는데, 전 CEO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고사했습니다. 다시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습니다. 2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그 땐 정말 회사가 많이 안좋을 때였습니다.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강남 사무실을 정리하고 가산디지털단지로 이사를 왔죠. 직원들도 떠날 사람들은 떠났습니다.

2006년 가을께 결국 회사는 창업자들이 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제가 나서게 됐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2인 3각 경기 같습니다. 마음이 맞으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조금 의견 충돌이 나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구조더라구요. 대기업에서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작은 벤처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 같습니다. 창업자들이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지도 못하는 미묘한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 CTO 출신이기도 한데 기업 경영은 잘 맞았나.

= 잘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CTO를 초기에 했지만 실제는 연구소에서 개발을 잘 못하는 축이었습니다. 시스템을 설계하고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죠. 전 5일 동안 개발하는데 밑에 있는 친구는 금세 하더라구요. 지금 60명의 연구 인력 중 50명 정도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입니다. 다들 실력이 뛰어나죠. 다만 전 두루두루 이런 저런 사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팀워크 관리나 돈관리, 시장조사 같은 것도 재밌고 그랬어요.

전문 기술 기업에서 제품을 잘 만드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어떻게 고객과 시장에 어필할 수 있을지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고객들에게 제품에 대한 평을 들을 때 불편해 하는 기능이나 추가되었으면 하는 기능을 듣고 그대로 하면 발전도 없고 시장을 이끌지도 못합니다. 그 이상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죠. 고객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트렌드가 보입니다.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보이는 것이죠. 그런 것을 기획해서 빠르게 대응하면 기회가 옵니다.

어쩌면 박사과정을 하면서 논문을 썼던 것이 시장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논문을 쓰려고 하면 인용할 논문도 엄청 많거든요. 제가 쓸 논문이 관련 분야에서 어느 수준에 있는지도 알아야 하고요. 경쟁사와 시장을 꾸준히 읽어내는 분야에서 조금 자신이 있습니다.

– 시장 조사 후 많은 기능을 한꺼번에 넣기는 쉽지 않을텐데.

= 큰 조직은 수요조사 같은 걸 아주 잘하죠. 그런데 벤처는 그렇지 않죠. 제한된 인력과 시간으로 시장에 뭔가를 보여주려면 집중해야 합니다. 잘 하는 곳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포기를 해야 합니다. 그 포기란 것이 영원한 포기는 아니거든요. 미루는 거죠. 다만 집중할 한두 가지에 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거죠. 기업을 경영하다보니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결국은 책임의 문제가 나오거든요. 대표는 그런 책임을 지는 자리죠. 누군가가 총대를 메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대표죠. 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잘해보라고 하면 차별성 없는 제품으로 나옵니다. 돈과 시간은 그대로 들어가고요. 오히려 책임은 위에서 지고 일을 맡겨야 되는 것 같습니다.

– 클라우드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국내 시장 확산은 더디다.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번 것인가.

= 클라우드가 대세인 것은 맞지만 이런 환경을 구축한 곳들은 정말 많지 않죠. 기존 환경처럼 운영을 해도 문제가 없는 시스템들이 존재를 하죠. 클라우드라는 건 기술 측면에서만 보면 안됩니다. 조직의 운영 측면에서도 봐야 됩니다. 클라우드 환경이 되면 관리가 무척 중요해지죠. 엄청나게 정교해야 합니다. 최적화가 그냥 되는 게 아니거든요. 고객들이 이런 분야의 전문가를 더 많이 육성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장비업체 입장에서 이런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습니다. 트래픽을 지능적으로 분산하고 가상화된 환경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도 앞서 말씀한대로 고객 요구를 파악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시장을 선점하지는 않더라도 차근차근 대응하는 전략입니다.

– 많은 국산 네트워크 업체들이 닷컴 붐이 붕괴된 후 사라졌다. 이 때문에 고객들도 국산 네트워크 장비 업체에 대한 신뢰가 없는 듯하다. 어떻게 생존했나.

= 단기적인 회사 성장을 위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네트워크 장비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잘 만들면 언젠간 쓰일 것으로 봤죠.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업을 시작할 때 단기적 목표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생존하고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를 키워 한몫 단단히 챙기자는 생각들을 못하고 사업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강남을 떠나 가산디지털 단지로 옮긴 것도 생존의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임대료가 장난이 아니데도 닷컴 업체가 그런데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이사를 오니 임대료를 내던 돈이 그래도 절감되더라구요.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잘 한 결정이 바로 이사라고 봅니다. 작은 회사가 고정 비용을 줄이고 이걸 내부적인 연구개발과 복지에 투자하고 제품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지금은 일본이나 중국에 진출했다. 해외 진출을 위해 염두에 둬야하는 사항이나 글로벌 조직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

= 해외 진출을 위해 1~2년안에 조급히 단기적인 실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 나라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보다, 특정 나라를 타게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일본과 중국에 집중하는 전략처럼요. 주로 현지인을 많이 활용하고, 한국적인 성공사례보다는 그 나라 현지 마케팅 방식을 참고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 수 많은 기능 업데이트 중 우선 순위를 선정하는 기준들은 무엇인가.

= 고객에게 정말로 가치를 제공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쟁사와  차별성을 이루고 우리만의 색깔을 낼수 있는가 그 방향을 결정하면, 여러 기능 중 자연스럽게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 클라우드나 모바일 분야가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 클라우드나 모바일의 등장으로 더욱 애플리케션의 트래픽이 증대되고, 가용성과 보안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교한 애플리케이션의 트래픽 제어가 필요하고 관리의 편의성이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뿐 아니라 ADC 사업의 기회가 더 많이 증대되는 상황입니다.

– 스타트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후배 창업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 하나의 일자리를 내가 차지했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포부와 비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대박을 꿈꾸기보다는 내가 하려는 사명과 비전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철두철미한 전략을 짜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네티즌의견(총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