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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조주의 눈으로 세상 들여다보니

| 2012.07.13

언어도 생소한 나라에 가서 최고급 식당에 앉아 차림표를 받아들었다고 생각해보자. 그 나라의 생소한 재료로 만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리 이름이 가득한데, 설상가상으로 차림표의 두께가 전화번호부만큼 두껍다. 과연 음식을 제대로 주문이나 할 수 있을까.

이때는 차림표와 요리에 대해 친절한 해설을 곁들여줄 사람을 불러야 한다. 우치다 타츠루 일본 고베 여학원대학 교수가 해설가로는 제격이다. 여기서 식당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요, 우치다 타츠루 교수가 해설을 붙여줄 요리는 구조주의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는 구조주의 요리를 주문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구조주의는 삶의 방식을 가장 광범위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다. 각 나라에서 발생한 언어나 문화, 생활방식 등 사회의 모든 요소에 구조주의가 끼어들 틈이 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일, 혹은 상식이라고 치부하는 것들에 대한 학술적 토론이다.

자명한 것에 토론이 필요할까. 왜 그런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면 토론할 가치가 있다. 구조주의는 자연스러운 것이나 자명한 것, 상식, 심지어 언어 사용 습관까지 ‘민족적 편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사람이 속한 사회집단이나 문화권이 발생시키는 고유한 사상이 편견을 굳힌다는 얘기다. 구조주의 앞에서는 상식이 편견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미쉘 푸코가 인간의 ‘광기’에 관해 진행한 연구가 재미있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신병자를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정신병자를 환자로 분류하지 않던 시대도 있었다. 의학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광인, 혹은 주술사로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광기’를 질병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푸코는 17세기 유럽에서 기원을 찾는다. 푸코는 이 시대를 일컬어 ‘대 감금시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신병자뿐만이 아니다. 인간 ‘표준’에 어울리지 않는 기형인이나 부랑자, 실업자, 빈민 등 다양한 비표준 인간이 이때부터 분류되기 시작했다. 분류는 배척과 따돌림의 근거가 됐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 무엇이 표준인지 감히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표준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표준에 어울리지 않는 온갖 것은 비정상 내지는 비표준으로 돌팔매를 맞는다.

왜 17세기 유럽인들은 광인을 격리시켰을까. 당시 유럽사회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때 유럽은 한창 도시화가 진행 중이었다. 이에 따른 소규모 가족화도 유럽 전역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신과 악마에 대해 논의하고, 종교적인 믿음으로 광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전통 유럽사회와 달리 소규모 집단이 산업시설의 노동자가 돼야 하는 사회에선 ‘잉여인간’이 됐을 뿐이다. 변한 것은 광인이 아니라 사회다. 광인은 이렇게 정상 범주에서 비정상 범주로 편입된다. 그것도 다른 이들의 의지에 의해.

당시 광인을 판가름하는 기관이 어디였나를 살펴보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처음으로 광인을 사회에서 배제해야야 한다고 주장했던 기관은 의료기관이 아니었다. 뜻밖에 사법기관이 조직적으로 광인을 격리시키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중세 이전 지배층이 휘두른 칼의 권력이 중세 산업화 이후 사법과 의료 분야로 넘어와 사람을 나누고 정의하고 배제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바뀌었을 뿐이 아닌가.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는 칼 마르크스의 사상부터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니체를 거쳐 페르디낭 드 소쉬르, 미쉘 푸코,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에 이르기까지 구조주의의 기틀을 쌓아 올린 철학의 대가를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한 학자가 쓴 책 한 권이 수백 페이지 이르지만,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는 불과 220여페이지에 불과하다는 점도 구조주의에 쉽게 다가가도록 한다.

보통 이 같은 학자들은 대학에서 인문학이나 사회학, 심리학을 공부할 때나 만날 수 있는 이들이다. “구조주의가 뭔데?” 하며 어안이 벙벙할 때 마침 누군가 옆에 다가와 “내 생각에 구조주의란…” 식의 어법으로 나긋나긋한 해석을 들려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우치다 타츠루 교수도 책 머리에 이렇게 밝혔다. “이 책은 어느 시민강좌에서 사용했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시민강좌 수강생들은 프랑스의 현대 사상이나 철학사에 예비지식이 거의 없는 시민들로, 평균 연령은 60세였고, 강의는 단 한 차례로 끝났으며, 강의 시간은 90분이었습니다.”

구조주의 철학으로 생각해보면, ‘세상은 이렇게 구성됐다’는 구조주의적인 믿음조차 구조주의적 사고에 비친 거울일 뿐이다. 구조주의 이전 시대를 구조주의 이후 시대가 나눈 것 처럼 언제든 깨지고 다른 거울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구조주의의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대다수 학자는 아직 구조주의 이외의 틀로 세상을 설명하는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눈치다. 구조주의가 아직도 유효한 이유 중 하나다. 기왕 읽을 거면 쉬운 말이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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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석 사진
오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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