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인모션도 뒤바뀐 판을 어쩌지 못하는 것일까?
리서치인모션(RIM)이 블랙베리를 혼자만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RIM의 CEO인 손스텐 헤인즈(Thorsten Heins)가 내년에 출시 예정인 블랙베리10 OS를 라이선스 형태로도 판매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헤인즈 CEO는 텔레그래프와 인터뷰를 통해 블랙베리가 기술력은 갖고 있지만 규모의 경제를 이겨낼 수 없어 라이선스 판매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용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가능성 자체를 직접 언급하지 않던 것에 비하면 많은 전략 변화가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RIM은 플랫폼과 레퍼런스 디자인을 만들고 삼성이나 소니 등 단말기 전문 제조업체들이 블랙베리10 단말기를 개발하고 유통하는 구조를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헤인즈 CEO는 ‘RIM은 아직도 단일 모델로 4500만 대씩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외부 단말기 제조사들이 라이선스해서 공급하면 플랫폼의 보급을 더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전까지 아이폰과 비슷한 폐쇄적인 단일 제품 판매구도에서 ‘규모의 경제’라는 안드로이드의 강점을 덧입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구도는 10여년 전 팜의 모습을 떠올린다. 당시 PDA 시장을 꽉 잡고 있던 팜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CE, 포켓PC 등의 PDA용 운영체제를 라이선스 방식으로 판매하면서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포켓PC는 당시 PDA의 기능을 멀티미디어로 확장했고 샤프, HP 등 여러 제조사들이 다양한 제품을 내놓는 등 다양화를 무기로 가져갔다.
핸드스프링에만 제한적으로 운영체제를 판매했던 팜은 2000년부터 소니에도 운영체제를 제공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소니가 만든 ‘클리에’ PDA는 팜 보다 더 낫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후 팜은 하드웨어 사업부를 분사하고 라이선스 판매에 주력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결정에 시장은 냉정했다.
운영체제에도 팜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웹OS로 새 출발을 했지만 그 동안 가져온 수많은 애플리케이션과 최적화 등을 손에 쥐고도 블랙베리, 아이폰과 경쟁하기는 매우 버거웠다. 결국 팜은 2010년 HP에 인수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술력과 제품 완성도가 아무리 좋아도 한 번 흐름을 놓치면 쉽지 않은 것이 이 시장이다.
RIM이 블랙베리 10부터 이 결정을 확정짓는다면 시기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다만 방향성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안드로이드처럼 누구나 만들도록 하는 것보다는 파트너십을 체결해 어떤 제조사의 단말기를 쓰던 블랙베리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하는 편으로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OS를 개방하는 것으로 삼성이나 소니, HTC처럼 하드웨어 기술력과 디자인 노하우를 갖고 있는 기업들을 통해 더 좋은 블랙베리 단말기가 태어난다면 플랫폼으로서 블랙베리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다. 특히 블랙베리10에서 키보드를 떼어낸 터치 스마트폰을 처음 만드는 RIM으로서는 전문 제조업체들의 기술이 필요할 수 있다.
한편 RIM은 8월 9일 LTE 통신을 집어넣은 블랙베리 플레이북 태블릿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QNX의 운영체제를 비롯해 디자인, 하드웨어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Wi-Fi만 쓸 수 있던 기존 태블릿에 통신망을 더한 제품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