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는 TV 출력을 위한 미니 HDMI 커넥터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어느 순간 이 포트들이 모두 사라지고 MHL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미 전 세계에 깔린 TV, 모니터, 빔 프로젝터가 모두 HDMI를 표준으로 삼고 있는데 MHL은 왜 또 나타난 걸까. MHL과 HDMI 기술을 개발하고 콘트롤러 칩을 만드는 실리콘이미지를 만나 이 출력 규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고해상도 화면 출력을 위한 규격 다툼은 매우 치열하다. HDMI는 30억대 이상 기기에 적용됐을만큼 절대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시장에 맞서 PC 진영에서 디스플레이포트(DP)를 내놨고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위한 MHL이 가장 늦게 도전장을 꺼내들었다. 이 세 가지 디스플레이 전송 규격들은 모두 TV나 빔 프로젝트에 1080p, 그러니까 1920×1080 해상도의 화면을 뿌리는 것이 목적이다. 쓰는 입장에서는 HDMI나 MHL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더 궁금하다. ‘대체 왜 이런 규격을 또 만든 것일까?’
실리콘이미지의 데이비드 커 모바일 제품 담당 마케팅 이사는 MHL의 존재 이유를 ‘모바일’에 초점을 맞췄다. “HDMI의 시작은 블루레이, 게임기, 셋톱박스 등 가전의 필요에 의해 시작했지만 MHL은 스마트폰 업계의 요구 사항을 맞추기 위한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기존 미니 HDMI와 거의 같지 않을까? MHL은 충전과 설계의 유연성을 또 다른 특징으로 삼는다. 충전은 간단하다. 케이블 하나로 화면을 전송하면서 충전을 함께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설계의 유연성이다. MHL은 5개의 핀으로 작동한다. 케이블이 다섯 가닥만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19핀을 쓰는 HDMI에 비해 단자를 더 작게 만들 수 있다. 더 얇고 단순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긍정적인 요소다. 게다가 MHL은 표준 커넥터 규격도 없다. 어떻게 생긴 포트에든 핀 다섯 개만 연결할 수 있으면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는다. 당연히 디자인과 단가 면에서 유리하다. MHL이 주로 마이크로USB 단자에 통합되는 이유다. 이 안에 MHL핀을 배열할 수 있고 MHL 케이블로 충전도 할 수 있다.
커넥터를 정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3이 대표적인 사례다. 갤럭시S2를 비롯해 삼성의 스마트폰은 모두 마이크로USB 커넥터에 MHL을 넣었다. 갤럭시S3도 마찬가지지만 MHL을 쓰려면 전용 케이블을 구입해야 한다. 삼성이 MHL에 USB 연결이나 디바이스 제어 등 몇 가지 기술을 넣으면서 핀을 5개에서 11개로 늘렸는데, 이때 커넥터의 핀 배열이 바뀐 것이 이유다. 기존 케이블을 쓸 수 있도록 별도의 어댑터를 판매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안드로이드폰의 규격처럼 되어버린 마이크로USB 정도는 통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느 디스플레이 기술처럼 MHL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는 1080p 해상도에 초당 30프레임 화면을 출력하고 TV 리모컨을 이용해 스마트폰 기능 일부를 조작할 수 있다. 내년 초에 등장하는 2.0 기술에서는 1080p에 60프레임으로 늘어나 3D화면도 출력하고 외부 리모컨으로 디바이스를 더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최근 자동차 업계가 MHL 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실리콘이미지 문종찬 한국 지사장은 “MHL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휴대폰 관련 업체들보다 BMW가 가장 먼저 연락을 해 왔다”고 설명한다. 자동차에 아이폰, 아이팟용 커넥터가 기본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많았지만 안드로이드의 연결은 곤란했다. 이를 최근 마이크로 USB와 MHL로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다. 실리콘이미지는 현재 이를 위해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와 기술 도입에 대해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고해상도 출력 규격을 둔 주도권 다툼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덕분에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HDMI나 MHL모두 1080p 다음 세대로 점쳐지는 4k 해상도(4096×2160) 출력까지 준비 중이고 각각의 출발 분야인 가전, 모바일, PC를 넘어 서로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특히 MHL에는 홈시어터PC나 DivX플레이어가 맡고 있던 역할을 스마트폰으로 넘겨주는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슷한 역할의 포맷들이 하나로 통합돼 케이블 한 개만 있으면 어떤 장치에도 연결할 수 있도록 표준이 잡히길 바란다. 어댑터 하나면 서로 출력이 가능한 기술들이 아닌가. TV에 주렁주렁 각각의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도 지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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