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방인의 펜으로 그린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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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사람 사이를 가르는 문제 중 종교만큼 강력한 것은 없는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이념의 총구는 더이상 불을 뿜지 않게 됐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아직도 종교 때문에 피를 흘린다. 종교는 한때 지구를 둘로 나눴던 이념보다 더 처절하고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분리해 왔다.

지금 예루살렘이 그렇다. 예루살렘은 세 개의 종교와 두 개의 민족이 뒤섞인 분쟁지역이다.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의 성지인 동시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중심을 잃은 지역이다.

캐나다 출신 만화가 기 들릴이 예루살렘에서 1년여 동안 거주하며 그린 ‘굿모닝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사람들의 삶을 이방인의 시각에서 보여준다. 종교학자나 인류학 학자였다면 쉽게 버릴 수 없었을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작가는 한 방울도 잉크에 섞지 않았다.

그렇다고 냉소적인 것은 아니다. 비아냥은 있을지언정 읽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도 없다. 의도적으로 갈등을 피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눈에 비치는 대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장벽은 그저 예루살렘에 서 있고, 예루살렘에서 휴일은 금요일(이슬람), 혹은 토요일(유대교)이나 일요일(기독교)일 뿐이다.

예루살렘 문제에 정통한 학자의 말보다 기 들릴이 그린 한 칸의 그림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작가의 판단이 제거됐으니 판단은 읽는 이들이 몫이다.

예루살렘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면 그려내기 어려웠을지도 모르는 예루살렘의 일상이 담겨 있다는 점도 ‘굿모닝 예루살렘’의 매력이다. 잠깐 스치는 여행객이 그린 그림이었다면, 예루살렘에서의 육아 이야기를 그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예수살렘이 안고 있는 모순이 더 잘 나타나 있다. 그 중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예루살렘에서 보낸 작가의 일화가 인상 깊다. 작가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자지구에서는 3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작가가 머물고 있는 동예루살렘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작가는 식료품점에서 폭격 장면을 비추는 뉴스를 보면서도 한 시간에 한 대밖에 없는 버스를 걱정했다고 한다. 예루살렘에서는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아이러니가 그림에 묻어있다.

작가는 1년여 동안 평양에서 그림을 그린 경험도 갖고 있다. 평양을 다녀온 이후엔 미얀마에서도 오랜 시간 머물며 만화를 그렸다. 평양에서의 경험은 ‘평양’이라는 만화로, 미얀마에서의 삶은 ‘버마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굿모닝 예루살렘’은 갈등에 익숙한 작가가 그린 심드렁한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