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룸살롱’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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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직무유기를 범했다. 큰 과오다. 회사 금고도 약간의 손실을 입었다. 왜 그랬을까.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이건 시간 싸움의 문제이니까.

나는 어제 이른바 ‘핫이슈’를 놓쳤다. 8월21일, 온라인을 달궜던 ‘안철수 룸살롱’ 키워드 관련 논란 말이다. 논란의 뼈대만 추리면 이렇다. 아무개 매체가 ‘안철수씨가 룸살롱을 가봤으면서도 아니라고 방송에서 거짓말을 했다’란 요지로 기사를 썼는데, 이와 관련해 ‘안철수 룸살롱’을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성인 인증 절차 없이 검색 결과가 뜬다는 것이다. ‘룸살롱’은 성인 인증을 거쳐야 하는 단어인데, ‘박근혜 룸살롱’이나 ‘정우택 룸살롱’은 인증 절차를 거치면서 유독 ‘안철수 룸살롱’만 성인 인증을 거치지 않는 걸 보면 네이버가 의도적으로 검색어에 손을 대는 것 같다는 게 주된 의혹이었다.

NHN도 해명에 나섰다. 일정 수준 이상 검색이 이뤄지고 언론에 보도되는 키워드는 시사 이슈로 보고 인증 절차에서 제외한다는 설명이다. 재미있는 현상도 벌어졌다. ‘안철수 룸살롱’ 키워드와 대조해보기 위해 입력한 ‘박근혜 룸살롱’이나 ‘정우택 룸살롱’ 같은 키워드도 검색 유입이 덩달아 늘면서 성인 인증 대상에서 빠졌다. 급기야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어가 한동안 ‘○○○ 룸살롱’으로 도배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성인 인증 고삐가 풀린 룸살롱 ‘말’들이 네이버 들판을 미친듯이 헤집고 다녔다.

나는 모른다. 정말로 안철수 씨가 룸살롱에 가봤는지 여부는. 도대체 이런 걸 왜 기사로 준엄하게 따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네이버가 검색어 노출 절차를 부러 매만졌는지도 현재로선 진위를 확인할 길 없다. 내 눈길이 머무른 지점은 다른 곳이다.

이번 논란이 품은 키워드를 보자. 2012년 8월 현재 가장 뜨거운 뉴스메이커 가운데 하나인 ‘안철수’다. 또 하나는 ‘네이버’다. 인터넷 공간에선 안철수 못지 않은 화제어다. 이 둘을 잘 버무린 논란이라니, 이른바 ‘트래픽’으로 먹고 사는 언론으로선 놓칠 수 없는 기삿거리 아닌가.

논란이 불거진 지 4시간여 남짓 동안, 이와 관련해 쏟아진 언론사 기사만도 40여개가 넘는다. (그 뒤에 나온 기사까진 미처 세지 못했다.) 이들 기사는 논란의 중심지이자 뉴스의 최대 유통망인 네이버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 배후는 트래픽 보증수표로 불리는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어’가 든든히 받쳐줬다. 이슈메이커 안철수씨를 둘러싼 네이버의 검열 의혹은 기사로 대치되고→논란의 장본인인 네이버의 인기 키워드와 뉴스캐스트를 차지하고→합작으로 만들어낸 인기 키워드를 타고 이슈는 순식간에 매판되고→기사를 쓴 매체에 트래픽으로 되돌아오는 이 해괴망측한 순환고리.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네이버와 언론사의 불편한 동거 문제는 널리 알려진 사안이다. 언론사 입장에서 네이버는 야누스다. 거대 유통망으로서 견제해야 할 공공의 적인 동시에 수익을 챙겨주는 고마운 장터이다. 지난 7월12일 열린 ‘뉴스캐스트의 전망과 과제’ 토론회에선 한 언론사 관계자가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어를 모니터링하며 기사를 쓴다”고 제 입으로 실토하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졌다. 그만큼 네이버란 플랫폼은 언론사 입장에서 가장 확실한 트래픽 견인차다. 언론사에 트래픽은 곧 수익이다.

8월21일 하루 동안 쏟아진 기사들이 오롯이 트래픽을 염두에 두고 썼을까. 그럴 리는 없다. 이슈의 가장 뜨거운 지점을 한발 앞서 보도하는 직업의식의 충실한 발현일 게다. 안타까움은 다른 지점에서 발원한다. 네이버란 플랫폼 위에 가지런히 정렬되는 관심사 순위를 어떤 식으로든 요리할 수 밖에 없는 언론의 남루한 현실. 감시와 수익의 경계를 아슬아슬 달려야 하는 2012년 한국 언론의 아픈 자화상. 그 하이에나적 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심이 주는 통증 때문이다.

이번 논란을 굳이 기사화하지 않고도 조바심내지 않았더랬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뒤늦게 넋두리같은 글로 식어가는 논란의 광장에 어물쩍 입성했으니, 나도 밥값은 한 건가.

<덧>

‘안철수 룸살롱’ 키워드 관련 논란이 새삼 일깨워준 사실. 이 문제는 기술로 해결돼야 할 일을 정책으로 풀려다 보니 발생한 일. 이에 관한 NHN 대표이사의 해명은 기술력이 떨어짐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매만지는 검색 결과는 늘 왜곡과 조작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큐레이션이 개입되는 정보 시스템, 네이버의 가장 큰 잠재적 위협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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