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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기] 애플-삼성 한국 소송 ‘긴박한 1시간’

2012.08.24

2012년 8월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법정동 3층은 아침부터 기자들로 붐볐다. 한국 시간으로 내일 있을 미국의 판결에 앞선 자리인 만큼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판결이었다. 비좁은 공판장은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떠올릴 만큼 붐볐고, 삼성전자 관계자들도 눈에 띄었다.

10시50분, 공보관이 앞에 나와 통신과 녹음 등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판사가 판결과 이를 해석하는 주문까지 모두 마친 뒤에 기사를 써줄 것을 당부했다. 법원도 판결 내용을 발표하기 전 긴장하는 눈치였다.

법정에는 미세하지만 삼성이 이기지 않겠느냐는 공기가 흘렀다. 판사들이 법정에 들어서고 첫 번째 판결은 삼성이 원고인 사건, 즉 애플이 삼성의 통신 특허를 침해했는지에 대한 판결이 시작됐다. 배준현 부장판사는 지난해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알몸사진을 찍은 고려대 의대생들에게 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 긴장감 속에 차분히 삼성이 문제를 제기한 5가지 특허 중 애플이 두 가지를 침해했다는 판결이 났다. 게다가 표준특허 4건 모두가 무단 특허 이용이었다. 이 표준특허들 없이는 3G 스마트폰을 만들기 어려운 기술이었고, 인텔과 그 자회사 IMC를 통한 칩 생산과 납품 과정에 분명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

표준 특허도 라이선스는 당연해

사건의 시작은 애플이 구입해서 쓴 모뎀칩부터다. 아이폰의 모뎀칩은 인텔의 자회사인 IMC가 만들었다. 인텔은 삼성에 라이선스를 구입했는데 이를 자회사에 위탁하고 판매까지 할 수 있는 권리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무단 특허 이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FRAND도 명료하다. 표준특허라고 해도 특허권자와 계약은 필수다. 이에 대해 양사가 미적거리고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애플은 계약 없이 기술을 가져다 쓴 셈이다.

사실상 칩 구입 경로에 문제가 없느냐는 것이 핵심이었던 만큼, 판결은 깔끔했다.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구매해 제작한 모뎀칩에는 로열티가 지불되기 때문에 저절로 특허 문제가 해결된다. 이를 특허소진이라고 부른다. 애플은 결국 이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기에 4개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판결문을 받게 됐다. 그 중 2건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한 것은 나머지 2건이 특허권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번 받은 특허라고 하더라도 이를 이용하려면 적합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미국에서 있을 판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특허에 무효사유에 대해서는 달라질 여지가 있다.

애플은 삼성에게 4천만원을 위약금으로 물고 현재 판매되는 아이폰3GS, 4, 아이패드 1,2의 3G 버전을 판매 중단하고 갖고 있는 재고도 모두 폐기처분하라고 명령했다. 애플이 삼성의 통신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결이 난 것이다. 장내가 잠시 술렁였지만 이내 다시 조용해지고 다음 판결이 시작됐다.

“유사하지만 다르다”에 술렁술렁

이번에는 애플이 원고인 건으로 삼성이 애플의 특허와 디자인을 침해했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변리사들도 기술 특허에 비해 디자인은 애매한 부분이 많고 주관적인 부분이 개입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판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한 바 있다. 배준현 판사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가 아이폰이 디자인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운을 뗐다. 디자인이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신규성과 용이창작성이 증명돼야 한다. 판사는 이에 대해 아이폰 출시 이전부터 소니와 LG의 스마트폰을 통해 소비자들이 이미 경험했던 디자인, 그러니까 법률 용어로 ‘이미 공지된 디자인’이라는 데 초점을 두었다.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을 토대로 갤럭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테두리 안에 화면과 홈 버튼을 집어넣은 풀터치 휴대폰의 전례가 있기 때문에 애플의 것을 베꼈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두 제품이 닮은 이유는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을 차용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디자인 형식을 가지고 애플과 삼성이 각자 해석해서 만든 제품이라는 게 법원의 해석이다.

아이콘도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차이가 있다는 판결이다. 특히 전화 아이콘은 테두리를 둥글게 깎아내는 창의성까지 보였다고 설명한다. 아이폰의 테두리를 둥글게 만든 것은 창의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갤럭시 아이콘의 테두리를 둥글게 한 것은 창의성을 인정받았다. 책을 넘기는 인터페이스도 특허라고 인정받지 못했다.

한국 재판부의 결론은 ‘두 제품이 비슷하긴 하지만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을 도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정리된다. 갤럭시 시리즈도 판매금지 및 폐기하도록 판결이 내려졌지만, 이전 네덜란드에서 판결이 난 바운스백을 침해했다는 게 이유다. 애플은 디자인을 침해당하지 않았고 삼성은 카피캣이라는 누명을 벗어내는 순간이었다.

닮았다 vs. 다르다

두 회사가 서로 물어줘야 할 손해배상액은 의외로 작다. 삼성은 특허 5건에 대해 1억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했고, 법원은 그 중 2건에 대해서만 인정된 만큼 4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애플이 원고인 재판도 4건의 논점에 대해 1억원을 청구했고 1건이 인정돼 250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됐다. 해외에서도 이를 두고 ‘각 회사 직원들의 점심값도 안되겠다’는 등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두 회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특허도 특허지만 애플의 디자인을 두고 어떤 판단이 내려지겠냐는 것에 관심이 쏠린다. 돈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다.

▲닮았나, 안 닮았나?

애플이 삼성의 특허 기술을 침해한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디자인에 대해서도 판결의 논리는 명확하다. 애플이 제시한 디자인 요소가 애매하고 사실상 풀터치 폰 디자인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디자인 변경으로도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판결은 흠 잡을 데가 없다. 법적으로는 두 제품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논리적으로, 법리적으로 해석됐다. 삼성은 자존심을 지켰고 애플은 억지를 부린 셈이 됐다. 하지만 한켠에선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이게 정말 안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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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