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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주의 꺼풀 벗고 애플-삼성 소송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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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삼성의 소송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시장은 시끌시끌해지고 있다. 소송의 규모가 세계적으로 커졌고 피해보상액도 조 단위로 넘어갈 만큼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연달아 판결이 나면서 판결 내용에 대해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향도 나타난다. 애플은 이미 세계적인 회사고 삼성전자 역시 이제 더 이상 한국만의 기업은 아니다. 이미 두 기업 모두 국경 없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하는 글로벌 기업인 만큼 각 지역의 소송 결과를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각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송의 내용이 전부 다르고 그 결과도 다르다. 그러니 단순히 애플의 디자인, 삼성의 통신 기술이라고 분류해서 ‘몇 대 몇’처럼 결판을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장에는 삼성 동정론이 펼쳐지며 애플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미국 시장의 텃세,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에 대한 어려움으로 연결되고 있다. 애플과 삼성의 미국 판결을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간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차분히 짚어보자.

오해① “귀퉁이가 둥근 사각형 모양의 스마트폰은 만들 수 없다”

애플은 네 귀퉁이가 둥근 직사각형을 애플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는다. 코카콜라의 병 모양, 미키마우스 실루엣처럼 만들고 싶어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트레이드 드레스’가 적용되는지는 가장 큰 관심사였다. 이번 평결로 귀퉁이 둥근 사각형 스마트폰은 만들지 못하게 됐다는 것은 거의 괴담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인정된 제품은 갤럭시S 뿐이었다.

이 특허를 자세히 보면 ‘귀퉁이의 둥글기’, ‘스피커가 화면 끝단과 제품 끝단의 중간 지점에 놓이는 점’ 등이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이런 점들이 거의 유사하게 침해됐다고 인지된 것이 갤럭시S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심미적으로 유사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국내에서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트레이드 드레스는 특허를 판단하는 장치 중 하나다. 배심원들은 다른 삼성 제품에 대해서는 일부가 닮았다는 점은 판단했지만 외관 전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나머지 문제는 갤럭시 시리즈에 적용한 터치위즈 인터페이스로 들어가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귀퉁이가 둥글다고 해서 모든 스마트폰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해② “애플 홈그라운드에서 일방적인 텃세”

어쨌거나 국내 분위기는 삼성이 애플의 홈 그라운드에서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미국 판결 이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 미국의 국수주의, 보호무역주의 등의 이야기다. 일단 새너제이 법원부터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거리와 판결 결과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새너제이 법원이 미국과, 특히 애플의 본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지역 경제를 위해 편파적인 판단을 했다는 것인데, 여기에 애플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새너제이에는 구글, 인텔을 비롯해 어도비, 시스코, 이베이 등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과 LG도 산호세에 터를 잡고 있다. 이른바 실리콘밸리 기업이라고 하면 소송을 위해 새너제이 법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가까운 법원에서 팔이 안으로 굽는 평결을 내렸다고 한다면, 미국인들이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에서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편파 판결이었다고 하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무엇보다 애플이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삼성, 모토로라, HTC에 대한 소송의 칼끝은 결국 구글로 통한다. 구글은 미국을 대표하는 회사 중 하나다. 단순히 결과만 두고 국가간의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은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특허를 어떻게 침해했느냐라는 사실 확인이다.

오해③ “배심원들이 편파적”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배심원들이 편파적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먼저 배심원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부터 살펴보자. 미국 법정의 배심원은 무작위로 선정된 수십명의 후보자들을 두고 소송의 당사자인 두 기업의 합의를 통해 선정된다. 각자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유리한 인물을 배심원으로 세우기 위해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진다.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평결이 끝날 때까지 지정 호텔과 법원에 격리되고 신문과 TV도 접할 수 없다. 증거 또한 판사가 지정한 것만 볼 수 있다. 판사의 역할은 이 배심원들이 쉽고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판단 범위를 만든다.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만 판단하면 된다. 평결 이후 공개된 배심원 평결문이 이런 정황을 잘 보여준다. 애초부터 애플에 편파적이었다면 삼성전자의 변호사들이 이것부터 문제 삼았을 것이다. 게다가 배심원 중 아이폰을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다수는 피처폰 이용자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애플은 배심원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오히려 배심원들이 애플에 손을 들어준 것은 배심원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각각의 증거들보다도 이 내용들이 만들어가는 스토리와 개연성을 입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 말이다. 애플은 배심원들에게 비교적 명확한 스토리를 제시했다. 애플이 법원에 주장한 스토리를 살펴보자.

①아이폰이 출시되자 삼성은 이를 연구했고 내부자료에서도 ‘쉽게 모방(easy imitation)’이라고 분석했다. ②신종균 사장이 2010년 2월 ‘디자인의 위기(Crisis of design)’라고 하며 “아이폰 같은 걸 만들자(Let’s make something like the iPhone)”이라고 강조했다. ③내부 분석 자료를 통해 아이폰과 하나하나 비교분석과 따라할 점을 명시했고, ④구글조차 이메일을 통해 제품이 아이폰과 비슷하다고 지적했고 변화를 주문했다. ⑤애플은 3년 동안 노력해서 만든 것을 삼성은 단 3개월만에 비슷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러니 이는 모방일 뿐 아니라 명백한 잘못이라는 스토리가 갖춰진다.

각 항목에 대해서는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쉽게 모방할 수 있다고 한 부분은 하드웨어적인 특성들 하드웨어UI, 해상도, 멀티미디어, 센서 등이다. UI는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두 번째 내용과 맞물려 ‘애플처럼 (좋은 제품을) 만들자’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내 짝처럼 열심히 공부해야지’라고 다짐하는 우리네 정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새 스마트폰의 목표가 아이폰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비춰볼 수 있다는 것이 배심원의 입장이다. 이후의 스토리 진행은 이런 의도를 아주 명확하게 뒷받침될 수 있다.

반면 삼성은 이런 디자인이 다른 휴대폰에서 이미 있었다는 선행 기술에 대해서만 강조했고 제품을 3개월만에 어떤 목적을 두고 만들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겼었다. 배심원들의 판단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표준 특허 문제

이 문제는 비슷한 통신 특허를 두고 한국과 미국의 법원이 크게 다른 해석을 내놓은 부분이다. 삼성은 이 기술을 인텔에 라이선스했지만 인텔은 이 칩을 자회사인 IMC를 통해 생산해 애플에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이 IMC에까지 모뎀을 만드는 기술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플이 구입한 칩 자체가 무효일 수 있다.

아직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미국 법원은 이 부분을 단순하게 봤을 가능성이 있다. 인텔은 삼성에서 기술을 샀고, 애플은 인텔에 그 칩을 샀다는 것이 명확하다고 봤을 수 있다. 게다가 표준 특허로 경쟁사에 위협을 주는 것은 특허 보호보다 독점에 무게가 실리기에 충분하다. 독점을 위한 권한 남용은 미국 상법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엄하게 다스려진다. 이 문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국가에서 무효 판정을 받은 바 있다.

특허 전쟁의 어두운 이면

판결의 결과가 하나씩 나오고 있지만 특허 문제는 그 깊이를 더해갈수록 그 어느 쪽도 고운 시선을 받을 수 없다. 특허는 곧 독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최&정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정우성 변리사는 “이번 특허 전쟁의 분위기는 애초부터 애플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한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중요시되고 있는 반독점법과 지적재산권 때문이다. 애플과 삼성이 도마 위에 올려 놓은 소재 자체가 삼성은 3G 휴대폰에 대한 통신 특허를, 애플은 디자인이다.

특히 삼성이 통신 표준 특허로 애플은 공격한 것은 대안의 여지가 없이 시장에서 쫒아내려는 이야기로 비칠 수 있다. 이는 핵심 기술을 시장의 진입장벽으로 쓰는 것을 엄중하게 다루는 무서운 법안이다. 반면 애플의 디자인은 얼마든지 다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귀퉁이 둥근 직사각형’처럼 애매한 것을 미국 법원에서도 트레이드드레스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귀퉁이가 둥근 사각형을 가진 HTC나 소니, 모토로라 등은 이를 통해 전혀 다른 심미감을 만들어낸다. 삼성 스스로도 갤럭시S의 3세대에 와서는 획기적인 디자인을 가져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 이를 설명한다.

한국과 미국에서도 애플의 디자인 특허가 문제시 된 부분은 대체로 인터페이스와 경험이다. 하드웨어와 이용자가 대화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저 화면을 두 번 터치하고 스크롤의 끝을 알려주는 단순한 조각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기술 없이 스마트폰을 어떻게 만드냐는 이야기는 귀퉁이 둥근 직사각형보다 이 부분에 더 맞을 수 있겠다. 두 손가락을 벌리고 오무려서 화면 크기를 조절하고 두 번 두드려 줌을 당기는 등의 기술은 이미 모든 스마트폰 이용자가 손에 익어 있는 인터페이스다. 그리고 이것이 애플의 것이다. 이는 삼성 뿐 아니라 구글도 피해가기 어려운 문제다. 어떻게 보면 이 입력 방법이 현재 iOS와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익숙해진 것은 안드로이드에 들어갔기 때문이지만, 그 자체가 특허에 걸린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거나 애플에게 특허 이용료를 내는 방법밖에 없다.

이처럼 각자의 특허 권리를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시장의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목소리가 최근들어 커지고 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강정수 박사는 “제품의 혁신으로 승부하던 애플이 특허로 승부하려는 움직임은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한다. 정우성 변리사는 “특허는 자그마한 것이라도 지켜져야 하지만 이를 다르게 이용하는 것에 대해 미국을 비롯해 세계 특허법에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하게 흐르고 있다. 애플은 지난 8월31일 미국에서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 등도 소송에서 평결을 받은 제품들과 함께 인터페이스 관련 특허를 침해하고 있다고 제소했다. 기존 소송에 제품을 더하는 식으로 온전히 새로운 재판이 새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애플로서는 이미 어느 정도 인정받은 특허를 신제품까지 확대해 삼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겠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에 영향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이제 감성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다.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훌륭한 기술을 모방하고 배워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시장으로서도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오해든, 누명이든 적어도 대놓고 베꼈다는 판단을 받지 않을 정도로 상대방의 제품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시장에 필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좋은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고르는 재미를 더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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