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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장, 경쟁은 강자독식 싸움?

2012.09.10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사람과 겨우 걷는 사람을 두고 달리기 시합을 시키는 건 옳은 경쟁일까. 경쟁을 막는 원인을 제거하니, 시장 1위는 미소를 머금고 나머지 업체는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전자책 값이 내려갈 전망이다. 미국 법무부와 사이먼앤슈스터, 아셰트북그룹, 하퍼콜린스 등 3개 출판사는 올 4월 맺은 합의안에 관해 법원 승인을 9월6일 받았다.

합의안이 승인되고 3개 출판사는 앞으로 2년간 전자책 서점이 책값을 결정하는 데에 왈가왈부할 수 없게 됐다. 다른 서점과 더 좋은 조건에 계약을 맺지 못하게 하는 최혜국대우조항은 5년간 어느 곳과도 계약하지 못한다. 그리고 1주일 안에 그동안 다른 서점과 맺은 계약은 취소해야 한다.

이들이 애플과 맺은 계약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애플은 출판사가 정한 가격대로 전자책을 판매하고, 판매가의 70%를 출판사 몫으로 돌린다. 출판사는 다른 서점에 애플의 아이북스스토어에서 파는 책보다 더 싼 값에 팔지 않는다.

이 내용 때문에 미 법무부는 3개 출판사와 애플이 전자책 값을 담합했다고 판단해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 아이북스스토어 이외의 전자책 서점은 애플보다 더 싸게 팔지 못하게 하고, 책 판매가를 출판사가 정하면서 서점간 가격 경쟁을 막았다는 판단에서다. 미 법무부가 소송 절차를 밟자, 3개 출판사는 곧바로 합의하겠다고 나섰다. 문제의 발단이 된 애플과 피어스PLC펭귄그룹, 맥밀란은 미 법무부와 소송을 하기로 해, 내년 6월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사이먼앤슈스터와 아셰트북그룹, 하퍼콜린스는 이보다 1주일 앞서, 미국 49개주와 5개 지역이 제기한 같은 내용의 소송에도 합의하기로 했다. 합의금은 7천만달러에 이르렀다. 합의안이 법원 승인을 받자,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출판사와 서점은 “합의안은 전자책 시장을 아마존이 전체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다른 서점은 발판을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하던 몇 년 전 상황으로 되돌렸다”라며 비판했다.

무슨 이유에서 나온 얘기일까. 애플이 전자책 서비스인 아이북스와 아이북스스토어를 내놓을 무렵, 미국 전자책 시장은 아마존이 주름잡고 있었다. 애플은 아마존은 물론, 반스앤노블에도 뒤처진 터라 출판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전자책 콘텐츠를 확보하려 했다. 그 대신 다른 서점엔 애플이 파는 것보다 더 싸게 전자책을 팔게 해선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미 법무부는 이 대목에서 출판사가 책값 결정권을 휘둘러 서점간 경쟁을 해친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동안 미국에선 통상적으로 책은 서점이 총판을 통하거나 매절한 뒤 서점이 정한 값에 팔렸다. 책을 정가대로 파는 국내와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출판사가 서점에 공급하는 납품가뿐 아니라, 서점이 소비자에게 파는 판매가도 통제하려는 시도는 가격 경쟁을 막고, 전자책 값을 올리는 효과를 낳았다.

하지만 서점간 경쟁을 회복하려는 미 법무부의 노력을 싸늘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 반스앤노블과 미국서점연합을 비롯한 서점상은 미 법무부와 3개 출판사가 맺는 합의안에 이의를 제기했다. 책값을 정할 권리를 서점에 돌리겠다는데 되레 서점이 성을 내고 나선 격이다.

이 합의는 엉뚱하게도 미국 전자책 서점 중 가장 규모가 큰 아마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살림이 빠듯한 중소 서점과 미국 전자책 시장 1위인 아마존이 경쟁하면 누가 이길지는 뻔하지 않은가. 다른 서점을 견제하려 한 애플과 출판사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어낸 미 법무부의 시도는 결국 경쟁력이 없는 중소 서점엔 반갑지 않았다.

아마존이 전자책 값을 내릴 거란 기대는 벌써 등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3개 출판사와 미 법무부 합의안이 법원 승인을 받자, 가까운 시기에 전자책 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비자는 좀 더 싼 값에 책을 읽고, 가격 선택폭이 넓은 게 좋다. 반면 아마존보다 더 싸게 팔 자신이 없는 서점은 경쟁으로 내몰리는 게 썩 내키지 않다. 할인에 할인을 얹는 대형 마트가 소비자에겐 인기를 끌지만, 동네 상권에서 환영받지 못하듯 말이다.

플리커 경마 장면

http://www.flickr.com/photos/tedkerwin/2542989836/sizes/l/in/photostream/ (CC_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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