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 속 HP, “2만9천명 추가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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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오라클과 함께 IT업계를 호령했던 HP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마크 허드, 레오 아포테커 전 HP 회장이 물러난 뒤 새로운 수장으로 올라서 맥 휘트먼 최고경영자가 열심히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 분위기다.

HP는 9월10일(현지기준) 2014년까지 2만9천여명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HP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10-Q(분기보고서) 파일을 살펴보면, 지난 5월 밝힌 구조조정 계획 인원인 2만7천여명보다 더 많은 인원을 구조조정할 계획임이 드러났다. 이는 HP 전체 사원 중 약 8.5%에 해당하는 수치로, 삼성전자가 올해 사상 최대 채용을 하겠다며 밝힌 2만6천여명보다 많은 수치다. HP는 국내 기업의 신입사원보다 더 많은 인원을 해고하겠다고 밝힌 셈이다.

계속되는 실적 부진

블룸버그를 비롯한 현지 외신들은 HP가 PC 이후에 시대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여파를 고스란히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테크크런치는 HP가 이번 구조조정으로 인해 약 37억달러에 이르는 금액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HP를 살리는데 있어 크게 도움 될 것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시장 분위기도 좋지 않다. HP의 시가총액은 342억70만달러로 지난해 6월 728억달러에서 약 366억달러 감소했으며, 주식은 17.43 달러(9월10일 현지기준)에 거래되고 있다. EMC의 자회사인 VM웨어의 시가 총액이 400억5600만달러, 주식이 93.75달러로 거래되고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HP가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경쟁 기업의 자회사 정도보다 못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HP는 2011년 포브스가 선정한 100대 기업 중 42위에서 올해 67위로 추락했다. IBM과 MS가 각각 31위와 42위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HP는 지난 3분기 HP 순손실 88억5천만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5% 하락한 311억9천만달러를 기록했다. 당시 맥 휘트먼 HP 최고경영자는 “조직 개편 후 실적 개선 초기 상태를 지나고 있는 것”이라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암시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HP만의 ‘색깔’ 되찾아야

휘트먼 최고경영자는 구조조정이란 칼을 빼들었다. 허리끈을 조여, 어떻게든 HP를 과거로 되돌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구조조정으로 HP가 회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HP의 부진이 단순한 매출과 수익 악화에서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HP는 1999년 이후 13년 동안 7번이나 최고경영자가 교체됐다. 한 최고경영자당 평균 3년의 임기를 채 넘기지 못하고 회사를 운영했단 소리다. 최고경영자가 업무 파악을 위해 1년을 쓴다고 가정할 때, 2년 간 HP를 경영하고 사라진 셈이다. 같은 기간 IBM은 2명, 오라클은 1명의 최고경영자가 회사를 운영했다. 국내 한 HP 관계자는 “PC, 프린터, 서버 분야에서 HP의 경쟁력이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라며 “잦은 수장 교체로 인해 HP 전략에 혼선이 발생하면서 이게 곧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는 것 같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HP가 집중하고 있는 사업이 모호해지면서 매출 부진이 발생했다는 얘기도 있다. PC, 프린터 사업 모두 예전만큼의 매출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태블릿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PC 시장이 위축됐으며, 프린터 매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사업도 부진한다. 유닉스 사업은 IBM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썬을 합병한 오라클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한 어플라이언스 전략을 내밀며 HP를 위협하고 있다. 휘트먼 최고경영자가 올해 초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사업 부문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정확히 무엇을 강화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호하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재 유출도 무시할 수 없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HP가 생각 외로 빠르게 인재를 잃고 있다며, 회사에 필요한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결국 HP의 위기는 HP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하나의 문제에서 발생한다. 시장을 선도하고 경쟁업체를 무찌를만한 무기가 지금의 HP에게는 없다. 점점 더 좋은 솔루션과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HP가 안심하고 성장시킬 시장이 있는가. 빠른 시일 안에 답을 찾지 못한다면 HP가 걸을 길은 하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