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포럼] 절름발이 인터넷 규제는 그만

가 +
가 -

기술 발전 속도를 법이 쫓아가기란 쉽지 않다. 최근 사례만 봐도 그렇다. KT스카이라이프는 위성 신호를 IP로 전환해서 보내주는 DCS를 도입했지만, 역무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방송통신회와 갈등을 빚는 중이다. 5년간 대체 뭘 하려 했는지 알 수 없는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판결로 역사의 흔적이 됐다. 지도를 해외 서버에 두지 못하도록 하는 위치정보법 때문에 구글과 애플의 지도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우리나라는 스마트폰을 쓰기에 가장 불편한 나라 중 하나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규제 대상인 기업들도 입이 한창 나와 있다. 해외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낀다. 다른 나라에는 없지만 국내에서만 챙겨야 할 규제가 많고, 물리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도 많다. 그렇다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도 아닌가보다. 국내 기업들은 그들대로 서운한 게 많다. 해외 사업자들은 한 발 빼면 그만이지만, 국내 사업자들은 어디 갈 곳도 없다. 국경 없는 인터넷 이용자들은 흘러흘러 비슷한 해외 서비스를 찾아 망명길에 올랐다. 이른바 역차별이다.

이런 규제들을 만든 입법자들이나 정부도 존재감을 위해 모두를 괴롭히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닐 게다. 사회적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시작했겠지만, 모두가 이 땅에서만 괴로워하고 있다. 어떤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곱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과 기술들이 어디에서, 왜 충돌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가능하다면 건설적인 해결책까지 찾아보고자 자리를 마련했다.

  • 일시 : 2012년9월6일
  • 장소 : 광화문 달개비
  • 참석자 : 김기창 고려대 법학과 교수, 정재훈 변호사 구글코리아 선임정책자문, 정혜승 다음커뮤니케이션 대외협력실장, 최호섭 블로터닷넷 기자

 

 

최호섭 블로터닷넷 기자 : 인터넷, 스마트폰 등으로 사회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카카오톡의 역무 문제부터 인터넷 실명제, 지도 서비스 등 온갖 인터넷 서비스가 오래된 법과 마주치면서 온갖 마찰을 빚어내고 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지금 문제가 되는 내용들이 대체로 어제까지 없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들이 아니다. 정부나 입법 기관 등에서 기술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선행해서 이뤄지지 않는가?

김기창 고려대 법학과 교수 : 선행해서 연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내막을 보자. 어떤 기술의 개발이 시작되면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보다도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기를 원하는 것 같다.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시장에서 인정받고 승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통해 수익을 내려고 하는 것이다. 쉽게 돈 벌려는 것 아닌가. 공무원들 역시 누군가가 찾아와 ‘이런 좋은 기술이 있다’고 소개하는 상황에 흔히 처한다. 공무원들도 뭔가 일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다보니 투자자처럼 대하게 된다. ‘그 좋은 기술, 시장에서 열심히 팔아서 장사하라’는 공무원은 지극히 드물 것이다.

최호섭 : 문제는 해외에서 선행된 게 국내에 들어오면서 기존 법규에서 모순과 충돌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남들 다 문제 없이 쓰는데 국내법으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상당히 많다.

김기창 : 해외 선행된 게 국내에 그대로 들어오도록 두면 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그대로 들여오고 국내 기업들과 자유롭게 경쟁하고 쓸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여기에까지 인터넷 실명제 등의 잣대를 들이대고 싶어했지만 결국 실패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를 손대고 변질시키려 하는 것이 문제다. 단적인 예가 인터넷뱅킹과 공인인증서다.

공인인증서는 우리나라 독자 기술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이건 한국이 직접 개발한 기술이 아니다. 원래 미국의 암호학 전문가가 만든 기술이다. 대칭 암호와 비대칭 암호를 섞어 쓰는 것이다. 암호 기술은 보내는 쪽과 받는 쪽이 쓰는 키가 같아야 한다. 인터넷상에서 이 키를 어떻게 안전하게 전달하느냐가 가장 골치 아픈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웹브라우저 암호화 기술이 좋아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드시 이 기술을 쓰도록 한 규제 때문에 금융 및 본인 인증 시스템에서 혼자 갇혀 있게 됐다.

▲본인을 확인하는 데 쓰는 공인 인증서의 의무화로 국내 쇼핑몰은 해외에 물건을 팔 수 없고 해외 쇼핑몰은 국내 진출이 어렵다.

 최호섭 : 뭐든 국내 자체 기술로 갖고 싶어하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산업 육성적인 측면에서 좋은 것 아닌가?

김기창 : 그런 모습이 기술 없어서 사업 못하는 것 같은 열등감으로 보인다. 기존에 있던, 그리고 세계적으로 통하고 있는 기술들에 좋은 아이디어를 붙여 무대를 국제로 넓혀야 하지 않겠는가. 한 번 표준으로 개발하기로 하면 정부 차원에서 모든 것들을 밀어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듯하다.

정재훈 변호사 : 최근의 샵(#)메일도 세계 최초라고 얘기했다. 이름에 ‘메일’이라는 말을 빼야 한다. 이건 플랫폼으로서, 서비스로서 e메일이 아니다. 그런 이름조차 붙이면 곤란하다.

김기창 : 표준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 내에서 자율적으로 협상이나 고려를 거쳐 다져지는 것이다. 정부가 끼어들어 ‘표준’이라고 해주는 것은 표준이 아니다. 이는 통상법으로서의 이슈도 될 수 있다. 무역 방해라는 측면에서 WTO에도 어긋날 수 있다.

ePUB가 됐든 e메일 혹은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이 됐든, 정부는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것이 낫다. 60~70년대 개발경제의 경험이 아직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HWP다. 이를 밀어주어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하나는 살았지만 세계적인 솔루션으로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표준문서인 DOCX나 PDF를 쓰면 더 자유롭고 유연한 사업 기회들이 생겨난다. 표준이라고 해도 HWP를 한컴 외에 누가 쓸 수 있나. 국내에서 이제 누가 오피스 관련 사업을 새로 시작해 부가가치를 낼 수 있겠는가. 나라가 밀어주고 애국주의 마케팅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최호섭 : 국내 IT 관련 법이 결국 해외 사업자들에게는 크나큰 장벽이 된 반면, 국내 기업들은 역차별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정재훈 : 정부가 너무 빠르게 시장에 개입하는 대신 뒷짐지고 시장에 맡길 필요가 있다. 기술 중립성이라는 시각을 갖고 보면 좋겠다. 산업이 정부의 지원을 바라면서 만든 것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시장 초기에 개입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기술이 발전하는 단계에 있고 어디로 갈 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빨리 개입해 표준안을 세운다. 이렇게 특정 기술을 법에 박아넣어 기술이 뻗어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 성장을 멈춘다. 대표적인 것이 위피(WIPI)와 액티브X다. 90년대 말 이 두 가지 못을 박는 순간 인터넷뱅킹을 비롯해 IT의 많은 부분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웹브라우저의 선택권을 빼앗긴 건 덤이다.

HWP를 국내 표준 기술이라고 볼 것인가. 사실상 이는 한컴이라는 회사의 사적 표준이다. 오픈 표준이 아니다. 한국정부가 이를 공용 문서 포맷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국내 문서 포맷 시장은 여기에 묶여버렸다. 이걸 과연 좋게만 볼 일인가. 특정 기술에 얽매이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과연 나라가 할 일인가.

이런 것들이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국내 시장에 발을 들일 수 없게 하는 일이다. 한국은 아이폰이 85번째도 들어온 나라다. IT 강국이 뭔가. 이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섣부른 기술 중립성을 해하는 정책은 해외 사업자가 국내에 들어오는데, 국내 업체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데 진입 장벽이 된다. 물론 최종 피해는 소비자다.

정혜승 : 정부의 산업 정책은 잘 되자고 하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느냐가 핵심이다.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 산업으로 성공 사례를 갖고 있는 나라다. 자동차나 중화학, 반도체 등이 이렇게 나온 결과물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건 좀 다르다. 기본적으로 개방성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중심이다. 누군가 깃발을 꽂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주도해서 될 것은 아니다.

기술 속도가 빠르고 이를 정책이 따라잡지 못하게 되면서 자꾸 ‘전봇대’가 되어버린다. 정책을 만드는 이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고민했지만 실행 단계에서 다른 결과물을 내게 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정부가 직접 지원해서 성공한 ICT는 흔치 않다. 미국이 구글, 애플을, 페이스북을 키운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 박힌 전봇대는 쉽게 뽑히지 않는다. 해외 사업자들은 진입 장벽으로 보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에게도 곤란한 일이다.

▲위헌 판결이 난 인터넷 실명제의 영향으로 구글은 유튜브의 한국지역 게시판 서비스를 중단했다. 규제가 사라지자 국내 이용자도 동영상과 댓글을 달 수 있게 됐다.

최호섭 : 국내 기업으로서는 해외 업체의 진입 장벽을 만들어준 것 아닌가. 역차별로 작용되는 부분인 건가?

정혜승 : 실명제를 예로 들어보자. 2009년 유튜브가 실명제를 이유로 국내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고 하자 오히려 이용자들이 유튜브로 몰렸다. 다음 TV팟, 판도라TV는 급감했고 유튜브는 접속량이 10배가 늘었다. 여기에 저작권법이 개정되면서 삼진아웃제까지 더해졌다. 기업으로서는 불안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유튜브에서 지역 설정만 바꾸면 똑같은 서비스가 그대로 전해지고, 그 서비스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편하게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인터넷 망명이라는 그럴싸한 말까지 나왔다. 법을 지키려다 보니 해외 업체들과 경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청와대조차 동영상을 등록할 때 ‘전세계’로 설정한 사건까지 일어나자 다시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방송통신위원장과 인터넷 업계 CEO가 한 자리에 모여 뭔가 잘못됐다는 인식을 나누었다. 정부는 산업을 잘 키우자는 것인데 이를 방해하는 요소를 치우자고 2010년 규제개선 TFT를 꾸렸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한 번 박힌 실명제의 전봇대는 위헌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뽑히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런 전봇대를 뽑으려면 헌재를 들락거려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토로하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도 인터넷 서비스는 규제를 하지 않는다. 시장 특성과 산업 속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행태부터 기술까지 모든 것에 차이가 있다. 인터넷 규제의 목적이 무엇인지 걱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인터넷을 너무 걱정하고 있다. 쓰레기 정보, 허위사실, 비방이 난무하다는 걱정이 심하다. 한국적 인터넷 규제는 이런 걱정과 불안, 사회적 우려속에서 비롯됐다.

실명제도 염려하는 마음에서 생겨났지만 지금에 와서는 옳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청소년들을 염려하는 셧다운제도 부모의 마음으로 시행됐다. 이게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기업만 역차별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투명하게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제는 염려하는 마음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 사회가 걱정한다고 대책만 세우고 있는 것은 곤란하지만, 어떤 사건이 터지면 정부는 왜 가만히 손 놓고 있느냐는 이야기부터 나온다. 규제의 주체와 목적이 명확했으면 좋겠다.

정재훈 : 정혜승 실장 말에 동의한다. 부연하자면 인터넷은 국경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규제하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국내 업체가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다. 국경 없는 시장에서, 서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구글같은 해외 기업은 진입장벽이 생긴다. 국내 기업은 규제에 맞추느라 힘들다. 국내 기업의 피해도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호섭 : 안드로이드나 아이폰의 경우 국내에선 안 되는 기능이 굉장히 많다. 예를들어 지도 서비스가 있다. 한국 소비자만 쓰지 못하는 구글나우가 있고, 내비게이션 등 지도와 위치에 기반한 것은 대체로 잘 작동하지 않는다. 구글이 한국에서만 법 때문에 도입하지 못한 서비스는 얼마나 있나?

정재훈 :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게 지도 서비스다. 구글맵스에선 현재 내비게이션 서비스가 안 되고 있다. 측량법에 따라 지도데이터를 국외로 가져가려면 국토해양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국토해양부는 5년째 허가를 안 해주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국가 안보다.

지도가 해외에 나간다고 해서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지도 데이터를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서버에 두면 문제가 되지만 네이버와 다음의 지도 서비스는 세계 어디서나 열어볼 수 있다. 우리가 반출해 서버에 두려는 데이터는 네이버와 다음이 쓰는 것과 같은 데이터다. 그걸 서버 위치만 다르게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김기창 : 그럼 현재 구글 지도는 국내에선 어떻게 서비스되는 것인가?

정재훈 : SK M&C에 빌려서 국내에 서버를 뒀다. 하지만 이미지만 가지고 보여주는 껍데기에 가깝다. 지도 그림 서비스 뿐이다. 같은 데이터를 두고 서버가 외국에 있다고 막는 것은 불합리하다.

정혜승 : 지도 하나로도 입장이 달라진다. 다음에서 청와대 검색하면 청와대가 안 나온다. 산으로 덮인 채 지워져 있다. 하지만 구글에서 청와대 검색하면 좌표까지 뜬다. 이게 대체 실효성 있는 규제인가 하는 고민이 저절로 따른다. 자원을 들여 조건을 맞춰도 그 결과물 자체가 다르다면 이 규제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해상도에 제한도 최근에서야 약간 완화했다.

 

▲구글어스(왼쪽)에는 청와대와 상세 정보까지 뜨지만 정작 다음 지도(오른쪽)에는 청와대가 지워져 있다.

김기창 : 공포와 보안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합리적인 생각을 못하게 한다. 클라우드 세상에 서버의 위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버가 제주도에 있으면 해킹에서 안전한가? 위치정보를 이용해서 앱을 만들려면 신고해야 하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정혜승 : 클라우드 환경에 대한 염려가 또 다른 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용자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클라우드 컴퓨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입법 예고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클라우드를 서비스하려면 새로 서비스를 신고하고, 인증받고, 국외저장 정보 공개하고, 보증보험에까지 가입해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클라우드라는 서비스의 범위로 e메일, 카페, 블로그까지 모두 포함될 수 있어 걱정이다.

김기창 : 시큐리티, 보안…… 이런 게 들어가니 괴상망측한 법안이 들어갔다. 물리적으로 서버를 하나 두고 서비스하는 것이 안전한가, 클라우드로 하는 게 안전한가를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보안 이야기가 나오면 생각과 사고가 멈춰버린다. 과장된 위험을 팔아서, 위험 장사를 하는 거다.

정혜승 : 클라우드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고심해서 나온 정책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법제화가되면 구글은 국내에서 서비스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이용자는 유튜브때처럼 외국 서비스 그냥 쓰면 되지 않나? 이용자들이 쓰는 덴 전혀 문제가 없는데 다음, 네이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우스개소리로 전문가는 해외로 옮기라는 말을 한다.

서비스 업체들은 고민을 엄청나게 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정책들이 물만 건너면 해결된다는 것이 허무하다. 이 규제 자체가 보편적이고 모두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좋겠다. 구글과 다음이 똑같은 조건으로 경쟁하고 같이 법규를 지켜나갈 수 있길 바란다.

최호섭 : 같은 내용을 두고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가 모두 갈등을 겪는 사례가 또 있는가?

정혜승 : 당장은 게임이 큰 고민이다. 실명제는 위헌이 났는데 게임은 여전히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 법을 지키려면 본인 인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호섭 : 본인 확인은 어떻게 이뤄지나?

정혜승 : 이게 재미있다. 일단은 정부가 지정하는 본인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신용평가회사와 공인인증서를 이용하면 되는데 범용 공인인증서 설치율은 7~8% 밖에 안 된다. 신용평가는 기본적으로 금융 거래를 해야 한다. 청소년은 주민등록증도 없고 금융거래 내역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어떻게든 본인 인증을 하려고 했는데 그 와중에 주민등록번호 수집은 금지됐다. 다시금 법을 지키기 위해 입력하는 동시에 신용평가사로 갔다가 오는데 이것도 안 된다는 유권해석이 나왔다.

최호섭 :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뭔가 매우 모순덩어리같다. 기업들이 끼어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정부는 인지하고 있는가.

정재훈 :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혜승 : 사업자들은 법을 지키려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다. ‘앵그리버드’나 징가는 안 지켜도 되니, 이것 역시 국내 기업만 겪는 전형적인 역차별이다. 실명제, 인증 등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고 게임 시장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진입장벽이기도 하다. 그나마도 자금력이 있는 포털들은 할 수 있다. 규제가 나올수록 신규 업체들은 따라올 수 없다.

김기창 : 학부형들은 그러다 게임업체들이 쓰러지면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사업자들만 답답한 일이다. 그러니 규제 자체가 말이 안되고 엉망이어도 아무도 나서서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들에겐 게임 사업이 어려워지는 것이 잘 된 일인 것이다.

정혜승 : 이것도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커서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영리하다. 게임은 표면적으로 막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주민번호를 도용해서 게임하는 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10명 중 4명이 도용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셧다운제 이후 ‘메이플스토리’에 40~50대 이용자가 급증했다는 게 뭘 말하겠는가. 여야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지긴 했는데 여러가지 부작용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했었다.

김기창 :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 기반으로 물건을 판매하려는 이들에게도 장벽이 있다. 한국에서는 아마존이나 아이튠즈 같은 곳에서 결제가 아주 쉽게 이뤄진다. 공인인증서도 필요 없다. 카드 정보만 입력하면 아주 손쉽게 콘텐츠와 재화를 구입할 수 있지만 사고나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외국인이 한국에서 뭔가 사려면 일단 공인 인증서가 필요하다. 외국인이 국내 공인 인증서를 어떻게 받겠는가?

정재훈 : 결국 보안 문제로 국내 사용자들이 혜택을 못 보는 게 구글의 지급결제대행업 등록 문제가 있다. 일명 PG라이선스다. 구글월렛이 안되고, 아마존이나 애플도 마찬가지고 페이팔도 안된다. 가장 큰 이유가 지급결제대행업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 요건이 까다롭다. 이 등록 없으면 국내 소비자가 국내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튠즈나 구글플레이에서 결제할 때 비자나 마스터같은 해외 카드로 승인되면서 원화 결제를 못하는 것이다.

최호섭 :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비스하기로 작정했다면 국내법을 따르면서 서비스할 수는 없나?

정재훈 : 한국에 회사를 세우고 그 회사 밑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구글 월렛은 본사에 시스템이 있다. 그 시스템과 같은 걸 한국에 갖다놔야 한다. 그러면 등록을 해주겠다고 한다. 구글을 비롯해 글로벌 회사들이 한국만을 위해 그런 서비스를 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결국 서비스하지 말라는 얘기와 똑같은 것이다. 이 문제도 무역장벽으로 느낄 수 밖에 없다. 글로벌 서비스는 결국 못 들어왔고, 국내 소비자는 편리한 걸 못 누린다.

최호섭 :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정재훈 : 구글만의 입장이 아니라 우리나라 인터넷 서비스 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겠다. 국내에서 인터넷 관련한 정책과 법을 만들 때 글로벌 표준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달라. 그래야 국내외 업체가 동등하고 자유롭게 경쟁해 이용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그래야 혁신이 일어난다. 지금 인터넷상의 규제가 굉장히 많지만 실명제처럼 문제가 있는 규제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는 단계라고 판단한다. 구글도 빨리 국내에서 자유롭게 모든 서비스를 꺼내 보여주고 다음, 네이버와 동등하게 경쟁하고 싶다.

정혜승 : 구글이 1등이 아닌 나라가 러시아, 중국, 한국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도 같이 잘 해보고 싶기도 하고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해보고 싶다. 구글에게 진입장벽으로 느껴지는 것이 우리에겐 굉장한 족쇄로 느껴진다.

김기창 : 되짚어보면 양날의 검 같다. 양쪽이 모두 아파하고 있는데, 누구를 위한 법인가. 실적주의로 무장하고 칼을 쥔 국회의원과 공무원들만을 위한 규제가 아니기를 바란다. 공무원 관료 조직이 마치 사업자인 것처럼 사업 아이템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기술을 밥그릇으로 보지 않고,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진흥책이다. 온갖 진흥책, 육성책으로 골병 들어 있는 것이 한국 시장이다.

정혜승 : 일이 하나 터지면 대책을 세우고 누구를 처벌하고 정부에게 대책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아주 잘 갖춰져 있는 법들이 있다. 아동 음란물을 따로 규제하는 법을 만들지 않아도 이미 우리 법에 음란물을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뭘 만드는 것보다 있는 법부터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인터넷은 자율규제로 풀 수 있는 것은 자율로 풀고 사회적 합의 사안으로, 그리고 교육으로 풀어야 할 부분도 있다. 이를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걱정 덜 하면 아름다운 인터넷 세상이 되지 않을까.

김기창 : IT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 없다. 혹시라도 필요하다면 그 인력들은 어떻게 하면 인터넷상의 규제를 없애는지 연구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인 결단이 따라주어야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IT 체질이 강해질 것이다. 한국 벤처들이 해외로 나가려는 것 자체가 지금 우리나라 IT 환경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최호섭 : 규제가 우리 IT 환경을 얼마나 가로막고 있는지 정도로 가볍게 시작한 자리였지만 생각보다 골이 깊고 사회 전반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인터넷은 느리지만 꾸준히 자생력을 가져 왔고 점차 사회적인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정혜승 실장 이야기처럼 사회가 너무 색안경을 끼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지 않는 것부터가 인터넷 규제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것 같다.

이 자리는 한 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몇 달 뒤 다시 모여 그 동안 달라진 점이 있는지, 단단히 고착돼 바뀌지 않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짚어보겠다.

네티즌의견(총 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