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특허 소송과 ‘혁신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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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 전쟁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88년, 미국에서는 IT 업계의 판도를 가를 세기의 소송, 이른바 룩앤필(look and feel) 소송이 시작된다. 애플이 MS와 HP를 상대로 5.5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배상을 구한 저작권 침해소송이다. 1980년대 초반 애플은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갖춘 리사와 매킨토시라는 획기적인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한 거물급 기업이었고, MS는 IBM 호환 PC의 OS인 DOS를 출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기업이었다. 당시 MS는 애플에 맥용 액셀과 같은 응용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면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문제는 MS가 1983년에 GUI를 갖춘 윈도우 개발을 발표하고 2년 후에 ‘윈도우1.0’을 내놓으면서 시작된다. 안 그래도 MS를 경계하고 있었던 애플은 윈도우1.0이 나오자 리사와 매킨토시의 GUI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협상 끝에 애플은 MS에 GUI 사용에 대한 라이선스를 주고 MS는 응용프로그램 공급을 계속하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윈도우2.0과 3.0이 출시되면서 다시 저작권 침해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애플이 MS와 그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HP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소송이 바로 룩앤필 소송이다. 1994년이 되서야 항소심 판결이 나왔을 정도로 오랫동안 치열한 공방을 벌인 사건이다.

결론은 애플의 완패였다. 사실 애초부터 애플의 승리는 쉽지 않았다. 애플이 저작권 침해로 주장한 건 작성된 코드가 아닌 화면에 보여지는 GUI 였는데, 당시 소프트웨어의 저작권 침해는 텍스트 저작물인 소스코드 자체에 대한 것이 일반적(지금도 대체로 그렇다)이었지, 보여지는 화면 자체를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표현에 대한 것인데, GUI 화면은 기능 저작물인 소프트웨어를 작동하기 위한 방법에 관한 것으로 표현과 아이디어의 구별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애플에겐 결정적인 불리함이 있었다. 윈도우 GUI에 구현된 상당 부분이 애플이 라이선스를 주었던 1.0 버전에 포함된 것들이었다. 애플은 라이선스를 준 것은 윈도우1.0의 인터페이스 자체이지 그 GUI에 사용된 요소들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계약 내용은 애플에 불리하게 해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주장하던 저작권 침해의 논거는 ‘화면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유사성이 인정된다(substantial similarity)’는 것이었다. 보면 느껴지는 것, 바로 룩앤필(look and feel)이 애플의 주장하는 저작권 침해의 근거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GUI가 저작물인 건 맞지만 GUI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저작권에 의해서 보호받을 수 없는 부분, 애플이 라이선스를 줬던 부분, 애플이 원저작자가 아닌 부분(뒤에서 다시 이야기가 나온다) 들을 비교 대상에서 제외한 후 나머지에 한해서 표현 사이의 실질적 동일성(virtual indentity)이 인정되어야 침해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밖에 아이디어와 표현의 합체이론, 표준적 삽화의 원칙 등 소프트웨어의 기능성에 의해서 저작권의 보호 범위가 상당히 제한된다고 판시하였다. 다시 말해 저작권은 표현에 한정되는 것인 만큼 자칫 소프트웨어의 동작 원리라는 아이디어가 보호의 대상이 되어버리거나 보호되어서는 안되는 표현이 보호되어서는 안 되므로 이를 하나하나 분석하여 제외시키고 남는 부분에 한해 표현이 같은 것인지 판단해야 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고, 그냥 화면 전체를 놓고 봐서 실질적으로 유사성이 인정되면 된다는 게 애플의 주장이었다.

결국 애플의 모든 주장은 배척되었고 위 판결은 대법원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MS는 날개를 달았고, 가뜩이나 침체의 길을 걷던 애플은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2년 후 잘 알려진대로 애플은 10년 전에 내쫓은 스티브 잡스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제록스의 반격 

그런데 당시 또 하나의 아주 의미심장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제록스가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소송이다. 이 소송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애플이 MS를 상대로 소를 제기한 지 1년 후 제기되어 1994년 같은 해에 종료되었다. 제록스와 애플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숱하게 회자된 바 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서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고, 그가 항상 열변을 토하며 자신의 차별적인 혁신성의 사례로 주장하기도 했지만 애플을 비난하는 주요한 근거로 자주 원용되기도 한다. 가뜩이나 전설로 남아있는 이야기라 많이 각색되고 잘못된 주장도 많았던 만큼,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가장 객관적이라 할 수 있는 판결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과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기초로 간략하게 복기하면 다음과 같다.

1979년께 애플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던 투자 대상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의 투자를 허락하는 대신 제록스로부터 ‘신기술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신기술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라는게 도대체 어떤 의미이고, 제록스는 어떤 생각을 갖고 이를 허용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스티브 잡스는 ‘윌리윙카의 초콜릿 공장‘에 들어갈 수 있는 골드티켓을 얻게 된 것이다.

제록스는 1970년대 후반 이미 애플의 리사나 매킨토시처럼 마우스 조작 아이콘 등 그래픽 인터페이스, 비트맵으로 구현된 매력적인 화면을 갖춘 스타(Star)를 개발한 상태였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마우스 조작을 구현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스몰톡(Smalltak)의 시범과 함께 스타의 화면을 접하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애플은 스몰톡의 하드웨어 이식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는 하였지만 스타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라이선스도 얻은 바 없는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해, 스타의 GUI보다 개선된 GUI를 갖춘 리사와 매킨토시를 출시하였다. 스타가 정식으로 시장에 출시된 지 2년 후인 1983년의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MS와 HP를 상대로 리사와 매킨토시의 GUI가 자신의 저작물임을 주장하면서 소를 제기하자 제록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제의 그 GUI는 원래 자신의 제품인 스타를 베낀 것이라며 애플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다. GUI의 원조가 GUI 전쟁에 참전한 셈이다. 제록스의 개입으로 애플과 MS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했다.

그런데 제록스는 이상한 소송을 제기하였다. 애플이 구현한 GUI가 자신의 스타를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애플이 리사와 매킨토시를 오리지널로 속이고 스타와 스몰톡의 기능과 겹치는 중요 부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제록스가 스타를 다른 곳에 라이선스 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니, 제록스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확인판결을 해달라는 청구를 한 것이다. 그러면서 애플이 스타의 일부분을 불법으로 카피하고 고의적으로 리사와 매킨토시가 스타와 스몰톡의 2차적 저작물임을 알리지 않았으므로 애플의 저작권의 무효확인과 함께 애플의 저작권 등록을 무효로 해달라고 청구하였다.

결론은 당연히 제록스의 패소였다. 그 이유는 쉽게 말해서 법에 정해진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법에도 없는 이상한 소송을 제기하였다는 것이었다. 결국 6년에 걸친 역사적인 GUI 패권 전쟁은 모두 원고들의 패소로 종결되었고, 당사자들은 각자 그대로의 길을 갔으며, PC는 본격적인 대중화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완벽한 데자뷰, iOS vs. 안드로이드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또 다시 IT 업계를 흔드는 세기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다만 당시 적이었던 MS는 오히려 애플과 전략적 동맹 관계에 있고, 지금의 적은 당시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어도 애플과 부딪칠 일이 없었던 회사들이다. 애플은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한국 삼성전자, 대만 HTC, 미국 모토로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최종 타깃은 그 회사들 뒤에 있는 안드로이드라는 모바일 OS를 만든 구글이다. 애플은 위 회사들의 제품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모바일 기기의 GUI 또는 제품의 외관을 배꼈다고 주장하면서 거액의 손해배상과 판매 중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소송 대상이 마우스에 의한 PC 조작 GUI에서 손가락에 의한 스마트폰 조작 GUI로 바뀌었을 뿐, 전체적인 맥락은 20년 전의 사건과 유사하다. 리사와 매킨토시를 탄생시켰던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후 다시 혁신의 에너지를 서서히 충전해온 애플은 다시 한번 새로운 사용자경험을 세상에 선보인다. 멀티터치 GUI를 갖추고 매력적인 화면과 외관을 구비한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모바일 기기가 제공하는 사용자경험은 마우스 GUI를 갖추고 역시 매력적인 화면과 외관을 구비한 리사와 매킨토시가 제공던 사용자 경험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고 새로운 세대의 도래를 알린다.

애플은 여전히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합한 폐쇄 전략을 고집하면서 자신이 세상에 선보인 혁신을 후발 업체가 모방하였다면서 소송을 제기한다. 그 상대방은 같은 사용자경험을 제공하는 범용 OS에 기반한 업체들이다. 그들은 애플의 혁신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역시 그 이전의 것들을 모방한 것이라고 다툰다.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사용자경험과 화면, 외관은 기존의 모바일폰과 PDA 등이 구현하고자 했던 콘셉트와 기능, 인터페이스 및 그들의 외관에 기초한 것이며, 아이패드라는 태블릿 역시 이전의 태블릿 PC 등의 휴대기기, 심지어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이미 선보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애플은 다시 한번 룩앤필(look and feel)을 소리높여 외친다. 완벽한 데자뷰다.

20년전의 설욕을 원하는 애플 

그러나 지금의 사건과 20년 전의 사건에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애플의 사업적인 전략에 있어서도 변화가 발견된다. 외부의 혁신을 활용하기 위해 MS와 어설프게 맺은 라이선스 때문에 겪었던 낭패와, 독자적인 폐쇄적인 생태계를 고집하다 외부의 혁신을 유인하여 폭발적인 성공을 얻은 윈도우에 밀렸던 경험 때문일까. 애플은 폐쇄적 생태계에 대한 통제권은 여전히 공고히 하면서도 정교한 플랫폼 전략으로 외부 개발자와 콘텐츠 생산자로부터 혁신을 끌어내는 대신 개별적인 라이선스 전략은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차이점은 구체적인 법적 전략에 있다. 바로 ‘특허’이다.

20년 전 룩앤필을 주장하며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던 애플은 여전히 룩앤필을 주장하지만 저작권 대신 특허권 침해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삼성과의 소송에서는 GUI의 전체적 또는 부분적 외관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자체의 외관에 대해서도 권리 침해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 권리가 디자인 특허권이다.

미국과 달리 국내법에서는 특허법과 별개의 법률인 디자인보호법에서 규정하는 디자인권이지만 같은 산업적 지적재산권이고 심사와 등록을 거쳐 배타적 권리가 보호되는 등 특허법적인 법리에 따르고 있고 그 요건도 큰 차이가 없다. 디자인 특허 또는 디자인권(이하 디자인권리라고만 한다)은 특허로 분류될 수 있지만 일반적인 특허권이 기술적 사상의 창작물, 즉 발명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하여 부여되는 권리인 점에 반해 물품의 형상, 모양, 색채 또는 이들의 결합인 물품의 외관에 부여되는 권리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특허보다는 표현을 보호하는 저작권과 오히려 유사한 면이 있다. 따라서 저작권과 보호의 영역이 일부 겹칠 수도 있는데, 물품을 전제로 하지 않고 등록이나 아무런 요건을 요구하지 않으며 남의 것을 베끼지 않았다는 창작성(originality)만 있으면 보호되는 저작권과 달리 공업상 이용가능한, 즉 물품을 전제로 하고 심사를 거쳐 등록을 요하며 단순한 창작성이 아니라 이미 잘 알려진 형상이 아니어야 하고 잘 알려진 형상으로부터 용이하게 창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야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디자인권을 선택한 애플의 전략은 일견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권은 저작권과 같이 표현 즉 외관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그 보호범위에 있어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애초 텍스트 저작물의 보호로부터 출발한 저작권은 구성요소들을 추상화해서 걸러내고 비교(abstraction-filtration-comparison)함으로써 유사성을 비교하는 분석적 비교가 우세하다 그것이 앞서 본 20년 전 소송의 결론이다. 이에 반해 물품의 외관이라는 일체의 표현을 보호대상으로 하는 디자인권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유사성을 판단하는 방식이 우세하다.

국내 판례도 디자인의 유사 여부는 이를 구성하는 각 요소를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대비할 것이 아니라 외관을 전체적으로 대비·관찰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심미감을 느끼게 하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그 구성요소 중 물품의 기능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형상 또는 공지의 형상 즉 디자인권의 대상이 아닌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하여도 그것이 특별한 심미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한 그것까지 포함하여 전체로서 관찰하여 느껴지는 심미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다만 공지의 형상까지 배타적인 권리를 줄 수는 없으므로 비록 공지 부분을 제외하고 비교하지는 못하더라도 유사성 판단시 중요도에 있어서는 그 부분을 낮게 평가하여야 한다는 정도로 제한을 가한다. 이러한 접근이 룩앤필을 주장하는 애플에게 유리함은 당연하다. 룩앤필이 바로 ‘전체로서의 심미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심미감의 판단은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경우 룩앤필에 더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저작권법의 분석적 방법에 비해 룩앤필이 좀더 판단하기 쉬운 직관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룩앤필은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전체로서 느껴지는 심미감이라는 그 개념 자체가 감성적이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에 있어 미국과 한국의 재판 결과는 아주 다른 결과를 보인다. 특히 디자인권의 경우 미국의 배심원들은 삼성 제품이 애플의 디자인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지만 한국 재판부는 디자인권의 침해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결과를 일반인과 전문가의 차이로 단순화시키기 어렵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우리나라 판결(두 개의 판결이 나왔는데 각 305페이지, 205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판결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보도자료1, 보도자료2를 참조하기 바란다)을 읽어보면 대부분 외관에 포함된 공지의 형상을 찾아낸 다음 그 중요도를 낮게 고려하는 분석적 방법으로 디자인의 유사 여부를 판단하여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미국의 재판에서도 법적 판단에 필요한 지침(instruction)을 내렸을 것이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법적 분석은 익숙하지 않은 작업이다.

또한 애플 쪽에서는 고의적인 모방이라는 것을 전략적으로 강조한 듯한데, 사실 특허권 침해에서 고의성 여부는 손해배상액에 영향을 미칠 뿐 침해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즉 고의건 아니건 특허권의 범위 내의 것이면 모두 특허 침해가 된다. 이것이 저작권과 다른 것이고, 그래서 특허가 더 위력적이다. 하지만 고의적 모방 주장의 감성적 효과는 상당히 크다. 이것이 심미감의 유사성을 전체적으로 판단함에 있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흡사한 광고사진은 디자인권 침해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심미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재임이 틀림없다.

이 사건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허가 있다. 멀티터치  GUI의 조작에 관한 특허이다. 즉 잠금해제를 위한 조작, 스크롤하다 문서 가장자리로 넘어갔을 때 다시 끝부분으로 튕기는 동작, 아이콘을 일정시간 터치했을 때 재구성모드로 진입하게 하는 조작 등 멀티터치 GUI의 조작에 관한 특허가 애플의 강력한 무기로 등장한다. 미국법상 유틸리티 특허에 해당하고 우리법에서는 특허법이 보호하는 본래의 특허에 해당한다.

여기서 20년 전으로 돌아가, 제록스가 했던 주장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제록스는 스타와 스몰톡의 기능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그 확인을 구하는 한편, 애플의 권리를 무효화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제록스는 리사가 처음 소개한 마우스와 GUI 조작이라는 혁신적인 콘셉트를 스티브 잡스가 멋지게 상업적으로 실현한 것을 보고 당시 연구소를 둘러보게 한 자신의 실수에 땅을 쳤을 것이다. GUI 화면 자체를 그대로 베꼈다고 주장하기는 좀 그렇지만 자신이 구현한 아이디어에 기반한 것은 명확했는데, 애플이 MS를 상대로 GUI의 권리자임을 주장하면서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듯하다. 제록스가 원래부터 애플을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이미 산업에서 표준처럼 되어버린 자신의 아이디어를 애플이 뻔뻔하게 독점하려는 처사를 그대로 둘 수 없어서 나섰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무튼 제록스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스타와 리사의 GUI가 표현에 실질적 동일성이 있음을 증명하기가 어려운 것은 애플의 처지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제록스가 통상적인 저작권 침해 소송을 하지 않고 그와 같이 이례적인 청구를 한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자신의 손해를 배상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애플의 소송을 멈추게 하려는 큰 뜻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변호사가 검토해보니 저작권 침해 소송은 도저히 불가능해서 다른 방법을 모색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여튼 제록스는 애플 때문에 자신의 저작권이 피해를 입으니 애플의 저작권을 무효로 해달라는 상당히 어색한 청구를 하게 된다. 제록스의 청구가 어색해 보이는 이유는 제록스가 표면적으로는 저작권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특허 소송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애플이 무단으로 실시해서 제품을 만들었으니 그에 대한 자신의 권리 확인을 구하고 애플의 권리를 무효로 해달라는 취지인 것이다. 그러면 왜 처음부터 특허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일까. 제록스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제록스는 스타의 GUI에 대한 특허가 없었다.

제록스가 그토록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특허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또 여러 전설들이 전해져 온다.  당시  FTC의 반독점조치에 의한 동의명령(Consent Decree)을 받고 있어서 운신의 폭이 적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담당 변호사가 다른 업무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제일 가능성 있는 이유는 당시는 그러한 기술, 즉 컴퓨터 UI 관련 기술,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에 특허를 받는 것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는 수학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 하여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인 발명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유력했었다. 그러다 1980년대에 들어와 미국연방특허청이 널리 특허권을 부여하게 되었고 연방법원도 특허능력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서 특허로 보호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니 스타가 출시된 1970년대는 소프트웨어 특허는 생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고 1980년대에는 이미 공지의 기술이 돼버렸으니 뒤늦게 특허를 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제록스가 뽑은 칼이 무뎠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변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친특허정책으로 특허의 외연이 급격히 늘어나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특허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까지 등장하게 된다. 소프트웨어에 특허를 부여할 수 있는지는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여전히 특허가 주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특허를 부여하는데 신중론이 힘을 받고 있지만 1998년 State Street Bank 사건 이래 영업방법모델 마저 특허의 대상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특허가 없었기 때문에 제록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애플은 이제 특허로 무장하고 후발 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물론 애플의 위협이 성공을 거둘지는 아직 모른다. 애플과 삼성 사건에서 이 부분 특허권 침해에 대한 판단 역시 미국와 우리나라의 재판 결과가 대부분 갈리고 있다. 특허가 부여되기는 했지만 특허 요건인 신규성과 진보성의 충족 여부, 그리고 특허권의 권리범위의 해석에서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장문의 판결에서 알 수 있듯이 쟁점이 복잡하며 그 법적 판단 역시 상당히 전문성을 요하고 까다롭다. 따라서 이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혹은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치열한 공방이 계속될 것이고, 그 결과를 함부로 단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게다가 역으로 삼성이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권 침해 소송의 쟁점인 이른바 FRAND 특허 관계의 해석과 특허 소진론 역시 치열하게 다투어지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글로 미룬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애플은 20여년전 패배의 설욕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플은 20여년전의 쓰라린 패배에서 많은 학습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해 왔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과연 계획대로 최종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유사한 전쟁을 치룬 백전노장의 전략은 현재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혁신의 비용

제록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복합적이다.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1970년 설립된 팔로알토연구소(PARC)가 이뤄낸 혁신들은 정말 경탄할 만하다. PARC를 빼놓고는 지금의 디지털 기술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GUI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제록스는 바보가 된다. 회사의 최고 핵심기술을 스티브 잡스 같은 영악한 천재에게 보여준 경영진의 아무 생각 없는 결정은 지금도 조롱거리다. 게다가 스티브 잡스마저도 제록스는 컴퓨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고 최고의 기술을 손에 쥐고도 성공을 놓친 바보라고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린 바 있다. 제록스는 바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록스가 바보인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특허의 원래 목적은 세상에 유익한 아이디어의 공개를 유도하는 데에 있다. 즉 발명가에게 일정기간 독점권을 주는 대신 그의 발명을 세상에 공개토록 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모든 이가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혁신의 촉진과 혜택의 확산을 꾀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에 따르면 제록스는 혁신적인 GUI를 개발해놓고도 그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뭉개고 있었던 것인데, 그와 같은 처사로 세상이 위대한 혁신의 가치를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정말 불합리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혁신을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발명가가 스스로 공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의사에 반해서 공개시켜버리는 것이다. 전자를 위한 것이 특허이고, 후자의 예가 스티브 잡스 스스로 위대한 도둑질이라고 말한 GUI 사례이다.

그럼 20여년 전 제록스가 적극적으로 GUI에 특허를 취득한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모든 이가 GUI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고 수많은 스티브 잡스들이 어렵게 어렵게 PARC에 들어가 신기한 거 보여달라고 조를 필요 없이 GUI로부터 영감을 받고 이를 멋지게 실현하려는 결의를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문제가 있다. 혁신의 공개를 대가로 세상이 부여한 독점권이다. 특허권은 배타적인 독점권이다. 즉 한시적이긴 하지만 혁신에 대한 모든 처분을 권리자의 손에 맡긴다. 다시 말해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았을 수도 있지만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제록스가 지금은 다른 게 급하고 GUI는 나중에 여유가 나면 직접 멋지게 실용화할 거라며(사실 그랬다) 라이선스를 안 주었을 수도 있다. 라이선스를 주더라도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바람에 좌절될 수도 있다. 성질 급한 스티브 잡스가 이를 참지 못하고 허락 없이 GUI를 구현해서 리사와 매킨토시를 만들자 뒤늦게 특허 침해로 리사와 매킨토시의 판매금지와 폐기를 요구했을 수도 있다. 앞서 본 소송에서 제록스가 특허권이 있었다면 했었을 그 청구이고, 그 청구는 받아졌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혁신의 공개를 위해 고안한 특허 제도가 주는 어두운 면이다. 물론 특허권이 한시적이니만큼 혁신이 영원히 묻히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실 적절한 대가를 주고 라이선스를 받아 정식으로 리사를 개발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혁신에 부과되는 비용이다. 특허권자에게 독점을 줌으로써 유익한 아이디어가 생산되고 공개되는 사회적 이득과 그 아이디어를 사용하는데 발생하는 추가적인 사회적인 비용의 트레이드오프(trade-off). 이것이 특허 제도를 두고 우리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이다.

이미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영원한 혁신의 아이콘으로 남을 것임이 틀림없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성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트렌드를 창조하고 차세대 핵심기술을 가장 우아한 스타일로 가장 먼저 업계에 소개하며 선구적으로 비즈니스를 재정의.” 이런 면에서 스티브 잡스의 혁신성은 탁월하다. 모든 발명이나 혁신이 그렇겠지만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다는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서 자신의 제품에 멋지게 구현하고 이를 현실적인 가격으로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트렌드와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스스로 말했듯이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치는 법이다. 훔친 아이디어는 전체 그림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고 이를 멋지게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가의 위대함인 것이다.

애플이 20년의 간극을 두고 벌어진 소송에서 모두 룩앤필을 주장했던 것은 바로 이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나하나 분석하여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한번에 보고 새로움을 발견해야 된다는 것은 바로 애플이 만들어 낸 혁신성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스스로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스티브 잡스와 특허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특허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가에게 비용을 부과할 가능성이 크다. 제록스가 제기한 소송에서 애플의 변호사는 ‘제록스의 주장은 비버가 후버댐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주장하는 것만큼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게 특허이다. 특허는 극히 일부부분에 불과한 아이디어로 그림 전체를 폐기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삼성과 애플 소송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판결에서 재판부는 애플의 수개의 디자인권과 특허권 침해 주장을 거의 다 배척하고 딱 하나의 특허권, 그것도 그 중 일부 청구항의 침해만 인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든 침해를 인정한 미국의 판결과 똑같이 대상 제품의 판매금지와 폐기였다.

특허로 인한 사회적 이득과 사회적 비용의 트레이드오프는 계속 논란이 되어 왔지만 이번 모바일 특허 전쟁을 계기로 더욱 주목을 받는 듯하다. 미국의 포스너 판사는 최근 특허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한 바 있는데, 그가 지적한 것 역시 이 부분이다. 과연 그만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할 만큼 특허로 인한 사회적 이득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는 취지이다. 물론 모든 특허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많은 특허, 특히 소프트웨어 특허나 이번 소송에서 볼 수 있듯이 극히 사소하게 보이는 조작 하나하나에 부과되는 특허들은 과연 특허가 부여되어야 하는지부터 특허기간, 특허의 효력등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한다.

특히 공통된 감성과 표준화되는 행위에 과도한 독점을 주게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곤란하다. 먼저 움직이고 사업화함으로써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부분도 모든 혁신과 똑같이 20년간의 독점권을 줘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배끼기와 혁신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과 다른 평가를 굳이 원용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특허 제도가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은 혁신 자체를 위해서도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은 점점 삼성이나 애플같은 대기업들에 국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이번 소송에 관해 다양한 분석이 올라오고 비판과 논쟁 역시 뜨겁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표적인 IT 기업의 싸움인지라 보호무역주의의 강화이니 국익을 고려한 판결이니 하면서 엉뚱한 분석을 하는 의견이나 기사들도 눈에 많이 띈다(매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하는 것이지만, 재판은 치밀한 사실관계 확정과 법적 판단을 거쳐 나오는 것이다. 간혹 틀린 판단이 내려질 수 있을 지언정, 그처럼 음모론적인 고려하에 결론이 내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혁신과 특허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본격적인 논의는 잘 보이지 않는다. 특허가 혁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특허 제도의 변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이어지고 이는 현실적으로 너무 막연하거나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는 회의 때문일까. 오히려 그 보다는 디자인의 가치와 사소한 발명의 가치도 놓치지 않는 권리보호 전략의 중요성을 따지는게 더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삼성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에 대한 비난 때문일까.

특허와 혁신에 대한 논란은 쉽지 않은 논쟁임이 틀림없다. 더구나 국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구축되고 현실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시스템과 관련돼 있는 만큼 우리만 다른 태도를 갖는다고 해서 쉽게 달라질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정당성에 계속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번 소송에서 엉뚱한 학습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혁신성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난 스티브 잡스가 20여년 전 소송에서 어떤 학습을 했는지 잘 모른다. 그냥 추측을 할 뿐이다. 어쨌든 그는 다시 한번 혁신에 성공하였고, 한판 소송을 거대하게 벌여놓고는 세상을 떠났다. 이제 우리가 학습할 차례다. 우리가 여기서 어떤 학습을 하느냐에 따라 스티브 잡스가 벌여놓은 이 한판 소동이 우리의 혁신에 미치는 결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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