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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법] 시민단체 “여성부, 게임 이해 부족해”

2012.09.27

게이머와 게임업계가 지난 9월11일,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청소년인터넷게임건전이용제도 고시 제정안 행정예고(이하 평가계획)’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청소년을 게임과몰입으로 내모는 게임에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여성가족부와 게임을 즐길 기본적인 권리조차 빼앗는 처사는 아니냐는 게이머와 게임업계 사이의 대립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평가계획은 인터넷 게임을 종류별로 나누고, 게임에 대한 건전성과 유해성을 평가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011년 공포된 청소년보호법개정안의 유예 기간은 2년이었고, 오는 2013년 5월19일 유예기간이 끝난다. 여성가족부는 지금부터 게임 평가 준비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평가계획에는 게임을 평가할 지표도 들어있다. ‘강박적 상호작용’이나 ‘과도한 보상구조’, ‘우월감 경쟁심 유발’ 등 항목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게임이 가진 기초적인 속성을 판단 근거로 삼겠다는 의지다. 평가지표에 따른 평가 결과에 따라 제도 적용의 유예기간을 연장할지 혹은 당장 청소년보호법 적용 대상이 될지 결정하겠다는 게 여성가족부의 설명이다.

여성가족부의 평가계획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게이머와 게임업계가 강하게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평가지표를 보면 이용할 수 있는 게임이 없다”라거나 “할 수 있는 게임이 연애시뮬레이션뿐이다”, “애니팡도 못 하게 되는 건 아닌가”하는 식의 조롱과 우려가 뒤섞였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게이머가 직접 판단해야 할 때다.

여성가족부와 이에 반발하고 나선 시민단체에 직접 의견을 물으면 이 같은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동연 문화연대 정책연구소 소장을 직접 찾아가 이번 게임물 평가계획에 관한 견해를 물었다. 인터뷰는 각각 따로 마련했다. 두 가지 인터뷰를 비교해 읽어볼 것을 권장한다.

김성벽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환경과 과장 인터뷰 보러가기

게임 콘텐츠에 대한 이해 부족

“기본적으로 이번 평가계획 연구를 진행하신 분께서 게임에 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번 평가계획, 특히 평가지표를 마련한 분들은 대학에서 교육상담이나 매체연구를 진행하시던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게임 콘텐츠에 관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연 소장은 이번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평가계획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평가계획을 작성한 이들과 평가지표를 꾸민 이들이 게임 콘텐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견해를 내놨다. 평가지표를 살펴보면, 세 가지 항목이 들어 있다. ‘강박적 상호작용’과 ‘과도한 보상구조’, ‘우월감, 경쟁심 유발’ 등이다. 각각의 항목은 서너가지의 세부 문항으로 구성돼 있고, 이 세부문항의 정도를 특정해 게임물을 평가하는 식이다.

이동연 소장이 문제로 삼은 부분은 바로 평가지표 문항 자체다. 문항이 모두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게 이동연 소장의 설명이다.

“예를들어 상호작용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 게임 속에 마련된 상호작용 구조를 평가할 때 상호작용의 정도가 심하면 나쁘다는 식으로 항목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번 평가계획의 평지표를 보면, ‘강박적 상호작용’이라고 명시를 하고 있죠. 게임 속에서 게이머들끼리 주고받는 상호작용 자체를 부정적인 요소로 단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게임 콘텐츠를 기본적으로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동연 소장은 “그렇지 않고서는 이 같은 평가지표가 나올 수 있었겠느냐”라며 반문했다. 여성가족부의 게임물 평가지표는 하나같이 부정적인 문항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강박적 상호작용’과 ‘과도한 보상구조’, ‘우월감, 경쟁심 유발’ 등 항목의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평가지표가 되기 위해서는 ‘강박적 상호작용’이라는 말 대신 ‘상호작용’이라는 항목이 들어가야 하고, ‘과도한 보상구조’라는 문항 대신 ‘보상구조’라는 평가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이동연 소장의 설명이다. ‘강박적 상호작용’의 정도를 ‘그렇지 않다’, 혹은 ‘매우 그렇다’라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자체에 대한 정도를 평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게임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이 평가계획의 취지는 청소년들로부터 나쁜 속성을 가진 게임을 걸러내자는 식으로 시작된 것인데, 게임 자체가 나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죠. 지금 여성가족부는 나쁜 게임을 청소년이 나쁘게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강박이라는 말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말이다. 강박이라는 말은 정신병리학에서 나왔다. 흔히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평가할 때 쓰는 개념이다. 상호작용을 강박적으로 맺고 있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게임 속에서는 상호작용이 강박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이를 평가하려는 여성가족부의 논리에 쉽게 수긍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평가방식·기관 납득할 수 없어

이동연 소장은 여성가족부의 게임평가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의 평가지표 세부사항을 보면 다음과 같은 항목을 발견할 수 있다. ‘게임을 하면서 같이 하는 팀원들과 함께 무엇을 해나간다는 뿌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구조’, ‘마우스나 키보드를 통해 게임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임구조’ 등이다.

여성가족부는 각 세부항목의 척도를 ‘전혀 그렇지 않다’와 ‘별로 그렇지 않다’, ‘보통이다’, ‘대체로 그렇다’, ‘매우 그렇다’ 5가지로 나눠 게임이 가진 중독성을 평가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팀원과 함께 무엇을 해나가고 있다는 뿌듯한 감정을 느끼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는 식이다.

“이 같은 평가 기준은 심사위원이 ‘청소년이라면 이렇게 느끼겠거니’ 하는 식으로 판단하겠다는 겁니다. 이 같은 평가는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이미 어른 심사위원이 구성돼 청소년의 느낌을 평가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셧다운제 시행을 위한 주관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죠.”

이동연 소장은 “국가 기관이 공식적으로 제출한 문건, 특히 평가지표에 각종 형용사와 불명확한 표현이 이렇게 난무한 것은 처음 본다”라고 꼬집었다. 사회통계학에서는 지표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꾸미는 것이 상식이다. 이번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평가계획의 지표는 객관성을 잃었다는 평가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바탕에 깔려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제대로 된 지표가 완성된다 하더라도 누가 평가할 것이냐도 문제다. 여성가족부는 평가계획을 짜고, 평가지표를 완성한 이후 심사위원을 꾸려 게임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동연 소장은 이 부분에 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 큰 문제는 담당 기관입니다. 청소년 상담개발원에서 이번 평가계획을 실행할 예정인데, 이는 전문성도 결여된 기관에 청소년의 게임과몰입 문제를 맡기는 꼴입니다.”

청소년 상담개발원에서 주로 하는 일은 가출 청소년을 상담하는 일이다. 인터넷 중독 치료 프로그램이 청소년 상담개발원에 있기는 하지만, 게임 콘텐츠를 분류하고 평가하는 일은 청소년 상담개발원의 전문분야가 아니다. 게다가 인터넷 중독과 게임과몰입 문제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게 시민단체의 설명이다.

“인터넷 중독과 게임과물입 문제는 같은 얘기가 아닙니다. 여성가족부가 객관적인 평가를 할 의지가 있다면, 이 문제를 맡길 더 적절한 기관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성 갖춘 계획 짜고, 독립기구 구성해야

이동연 소장은 계획 철회를 주장했다. 처음부터 객관성도 유지하지 못했고, 평가기관과 평가방법에 대한 신뢰성을 잃은 이번 여성가족부의 계획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동연 소장은 게임의 중독성을 평가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할 것과 납득할 수 있는 평가지표를 주문했다.

“청소년의 게임 이용 습관이나 게임물의 중독성 여부를 가릴 기관이 없습니다. 여성가족부와도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중립적인 기구가 필요합니다. 또, 평가위원이 먼저 구성된 후 평가위원 스스로 지표를 만들고 그에 따라 게임물 평가가 이뤄져야 합니다. 남이 만든 지표로 평가를 진행한다는 것은 모순이죠.”

현재 국내에는 게임이 가진 중독성을 구분할 기관이 없다.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게임물등급위원회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적정 나이대가 어느 정도인지 구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평가위원과 지표가 서로 분리돼 있다는 점도 현재 여성가족부가 들고 나온 평가계획이 가진 문제점이다. 평가위원이 먼저 구성되고, 평가위원이 만든 객관적 지표에 따라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여성가족부가 급하게 계획표를 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임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획이 이뤄져야 합니다. 더불어 법적 규제를 만드는 노력 이상으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게임을 건전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죠.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등장했는데, 지금 청소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과정이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법에 의존하기보다는 사회적 합의와 노력을 통해 해결하는 모습이 더 절실합니다.”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게임물 평가계획 평가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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