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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왜 ‘벌거숭이 지도’를 서둘러 내놨나

2012.10.05

지난 10월2일 싱가포르로 출장을 떠났다. 출장 준비를 하며 아이폰 외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하나 더 챙겼다. 지도 때문이다. 출발 전에 아이폰 지도에서 호텔을 찾았더니 매끈한 지도 위에 핀을 하나 딱 박아 놓은 게 전부였다. 공교롭게도 떠나기 전날 팀 쿡 애플 CEO가 편지를 통해 애플 지도 문제에 대해 사과를 했다.

막상 싱가포르 지도를 보니 애플 지도가 원성을 듣는 것도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구글 지도 자체도 본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고 국내 포털들이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가 워낙 잘 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애플 지도 문제에 둔감한 편이다. 하지만 구글 지도를 잘 쓰고 있던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겪을 불편과 혼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와대를 ‘청화대’라고 표기하는 등 크고 작은 오류가 있어 정부에서 지도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야 말로 지도를 두고 ‘베타테스트’를 하는 상황이다.

애플의 지도는 이제 세계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애플 지도, 무엇이 문제고 애플은 왜 이런 불편과 불만을 끌어안으면서까지 지도 사업을 이끌어 가는 것일까.


▲합정동 근처의 애플 지도. 어딘가 비어 보인다.

지도 데이터 보완, 이용자 손에 맡겨

이런 불편을 애플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지도를 시작한 이유는 명확하다. 지리 정보는 앞으로 모바일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 분야 중 하나다. 그 지도를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서비스를 오픈하는 것이다.

애플은 그동안 구글 지도를 썼지만 안드로이드와 점차 첨예한 날을 세우는 구도가 될수록 지도를 독립할 필요성이 커졌다. 구글 지도를 언제까지 쓸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언제 해도 해야 할 일이라면 앞당겨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완벽한 제품만을 내놓던 애플에 새 지도는 충격적이다. 애플 지도가 처음 공개된 iOS6의 베타테스트 초기, 한국을 비롯해 적잖은 지역의 지도가 ‘백지도’ 수준으로 뜨기도 했다. 빠르게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구글 지도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럼 지도 정보를 사서라도 채울 수 있던 것 아닐까. 애플이 만들려는 것은 벡터 방식 지도다. 구글 외에는 사실 이 벡터 지도 데이터를 세계적으로 갖고 있는 기업은 흔치 않다. 벡터 방식 지도는 이미지 방식으로 처리하는 래스터 방식 지도보다 더 정밀하고 세세한 정보를 품을 수 있다. 둥근 지구의 특성을 그대로 담아 오류가 적고, 확대해도 길이나 지형이 깨지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이나 거리 측정 등에서 더 정확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구글 역시 벡터 지도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3D 지도를 만들기도 유리하다. 래스터 지도를 쓰려고 했으면 지도를 사서라도 덮을 수 있었을 게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백지도에 지리 정보를 채우는 것은 제 아무리 애플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구글 지도는 오래 전부터 데이터를 축적해 왔기 때문에 상당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구글 검색과 합쳐져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애플도 앞으로 지도 데이터를 빠르게 확충하겠지만 당분간 구글의 지도와 웹 검색이 합쳐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애플에 ‘지도를 얼마나 빨리 채우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과제다.

불편을 겪는 것은 이용자들만은 아니다. 그간 구글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었던 앱 개발사들도 새 지도는 악재다. 좌표나 지명 검색 등 지도 데이터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이용하는 앱들은 한번씩 손을 봐야 한다. 게다가 그 지도에 불만이 많다보니 앱의 수준이 갑자기 떨어진 것 같은 효과까지 낳는다.

▲런던처럼 잘 만들어진 지역도 있다. 올림픽 때문인지 런던의 3D 지도는 사진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도 일부 지역에 한한다.

구글이 아이폰용 지도 앱 안 내놓는 까닭

구글은 애플이 iOS6에서 유튜브와 지도를 삭제했음에도 따로 지도 앱은 내놓지 않았다. 유튜브는 iOS6 발표 직전에 앱스토어에 등록하기는 했지만 지도는 감감 무소식이다. 아니,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아이폰용 구글 지도 앱을 만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아이폰에서 구글 지도를 쓰려면 사파리 웹브라우저에서 접속하는 수밖에 없다.

두 회사는 이를 두고 서로간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역시 지난 넥서스7의 한국 발표를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애플과 매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애플로서는 현재 지도를 빨리 완성하려면 구글 지도에 의존하는 부분을 빨리 덜어낼 필요가 있다. 두 지도가 공존하면 지금으로서는 마냥 부족한 애플 지도는 퇴출될 게 뻔하다. 구글로서도 안드로이드가 아이폰보다 뛰어난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지도를 들기에 유리한 상황이다. 지도는 운영체제나 플랫폼을 고민할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정보다.

한편으로는 유튜브같은 효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 유튜브는 별도 앱으로 분리되면서 오히려 좋아진 점이 많아졌다. 안드로이드만큼 기능이 많아졌고 iOS의 판올림과 별개로 업데이트를 기대해볼 수 있다. 지도 역시 구글과 애플이 마음먹기에 달렸지만 일단 앱이 나온다고 하면 그간 안드로이드 지도보다 제한이 많았던 아이폰의 구글 지도가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오프라인 지도 저장이나 스트리트뷰, 3D 지도 등이 더해진다면 더 쓸 데가 많아질 것이다.

팀 쿡 스타일, “당분간 다른 지도 써라”

그러던 차에 팀 쿡 애플 CEO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미안하다’는 것이다. 애플도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는 ‘직접적인 정보 수집’으로 짐작된다. 많은 이들이 쓸수록 정확해지는 것이 지도 정보의 특성인데, 단기간에 구글 지도를 따라잡으려면 지도 정보를 가진 기업을 인수하거나 서비스를 강행해 데이터를 얻는 것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다. 아마 스티브 잡스였다면 사과는 커녕 애플 지도의 런칭 자체를 막지 않았을까. 이번 사과는 팀 쿡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단적인 예다.

심지어 당분간 다른 지도를 병행해서 쓰라는 주문도 했다. 빙, 노키아 등의 지도를 써 불편을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애플은 앱스토어에 지도 앱을 모아 둔 기획 페이지를 만드는 대신, 쓸만한 지도 앱들을 모았다. 국내에서는 구글맵의 기능이나 정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를 쓰는 편이 낫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통해 각 나라에서 대신 쓸 수 있는 지도 앱들을 내려받을 수 있는 페이지를 열었다.

이 지도는 iOS6의 일부지만 공교롭게도 아이폰5와 맞물려 거친 과도기를 겪고 있다. 아이폰5 역시 화면 비율을 바꾸고 10여년 동안 써 오던 커넥터 모양도 바꾸었다. 지도까지 빠졌으니 이용자들로서는 당장 골탕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커넥터도 마찬가지지만 지도는 독립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다. 완벽한 제품을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빨리 개선되기를 바랄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진행 과정이 썩 나쁘지 않아 보인다. 팀 쿡은 사과문을 통해 iOS6 발표 이후 1주일만에 5억건의 위치가 검색됐다고 밝힌 바 있다. 지도 정보는 시리가 말을 익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검색과 오류 신고 등이 따라줄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 애플이 지도 개선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도 이런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기반을 다져 놓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단적인 예가 독도다. 독도는 아이폰 설정을 일본으로 했을 때는 ‘다케시마’로 뜨지만 한글을 비롯해 영어, 독일어 등 다른 언어로 바꾸면 ‘독도’로 뜬다. 베타테스트를 거치면서 상당수의 한국 이용자들이 독도의 위치정보를 애플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한국 지도, 개선 가능성 기대

현재 한국 지도는 국내 사업자들이 만든 다음 지도나 네이버 지도가 절대적으로 낫다. 꽤 오랫동안 정보를 쌓아 왔고 지도 관련 법규들의 제약이 심해 해외 기업들보다 더 나은 지도 정보를 보여준다. 애플이 국내 지도에도 세밀한 정보를 입력한다거나 3D 지도를 넣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로서는 3D 지도는 요원해 보인다. 3D 지도를 입히려면 비행기를 띄워 지리 정보를 촬영해야 한다. 애플이 우리나라의 지도 측량을 위해 항공 촬영을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지도 그 자체는 개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도까지 정보를 채우고 골목길을 그려낼 것인가가 문제지만 애플이 한국 지도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iOS6의 첫번째 베타테스트를 열어본 뒤로 한국 지도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현재 지도 정보는 상당히 많이 나아졌다.

현재 안드로이드의 구글 지도가 법 때문에 국내에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과 다른 양상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엿보인다. 구글은 국내 지도 데이터를 구입해서 미국의 구글 서버에 넣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법률적인 문제에 얽혀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구글 지도를 제대로 쓰기는 쉽지 않다.

이와 달리 애플은 백지도 상태에서 직접 지도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태생 자체가 애플의 손에 쥐어져 있다. 만약 이 지도가 완성 단계에 올라선다면 모든 정보가 애플 서버에서 통합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에 턴바이턴 내비게이션이나 시리 연동 등을 통해 운영체제가 지원하는 지도 기능들을 원활하게 쓸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애플 지도의 성장은 국내에서 구글 지도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 기업들이 직접 운영체제를 만들지 않는 한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다.

▲옐프(yelp)등을 통해 지역 정보와 리뷰 등을 더했다. 애플이라 해도 구글 지도에서 독립하는 일이 녹록하진 않다.

휴전중인 국가의 지리 정보가 해외 기업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다음 지도나 네이버 지도는 누구나 내려받아 볼 수 있다. 이제 지도 정보는 숨긴다고 숨겨지는 정보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애플이 몇 달 안에 지도 서비스에 대한 결론을 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애플은 지도 관련 인력을 상당히 많이 충원 중이고 애플스토어 직원들을 통해 각 지역의 지도 정보를 검토하도록 하는 등 물심양면 투자하고 있다. 그럼에도 애플 지도는 현재로서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지도 정보는 시간 싸움인 만큼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해외에 여행을 갈 때나 출장을 떠날 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필수가 될 것 같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