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人] 최윤석 전무 “음악에 빨렸어요”

가 +
가 -

‘음악에 빨리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종류별로 모두 사들이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음악 애호가 중 일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싹쓸이하는 경향이 있다. LP 표지가 맘에 들어서, ’10주년’ 같은 특집 앨범이 나와서, CD로 양질의 음질로 듣기 위해, 슈퍼 오디오 CD로 리마스터링돼 나와서…… 이유도 다양하다.

최윤석 한국오라클 기술총괄 전무도 음악에 빨려 본 적 있는, 아니 지금도 빨리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수집해 온 음반은 CD, LP를 포함해 약 4천장이 넘는다. 최근 9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관심이 쏠렸던 인기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감독판 OST가 3일 만에 3천장 팔렸다고 기사화됐는데, 이보다 1천장 더 많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을 수집했다고 할 수 있다.

“음악에 빨려 본 적 있으신가요? 전 여러 번 있습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나오면 항상 빨리는 식이지요. LP의 지지직거리는 소리도 좋지만, CD 음질로 듣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자연스레 한 아티스트의 음반을 다양한 종류로 구매하게 됐지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 중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은 LP부터 시작해 CD, 20주년 기념 LP, 슈퍼 오디오 CD 등 다양하게 구매해 듣고 있습니다. 그나마 제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약간 생소한 장르라 구매 비용이 적게 들어간 셈입니다. 인기 음반을 좋아해 전작을 모으기 시작했으면 끝이 없었을 겁니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록 음악의 한 장르로 1960년대 발생해 1970년대 인기를 얻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장르다. 일반적인 록 음악보다 곡 길이가 상당히 길며, 때론 앨범 전체가 하나의 주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 주제를 가진 곡이 여러 노래로 나뉘어 이어져 있는 형태라고 할까. 클래식과 재즈 등 다양한 음악 요소를 결합한 게 특징이다.

“한 노래가 여러 트랙에 걸쳐 계속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다 보니, 노래 한 곡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식이지요.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는 굉장히 심오한 아트워크를 표현합니다. 그래서인지 앨범 재킷도 단순히 LP를 보호하는 껍데기가 아니라, 음반을 표현하는 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최윤석 전무는 프로그레시브 록은 LP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우선 LP 재킷인 게이트 폴더가 음반 주제에 맞는 그림을 표현하는 식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래하는 밴드 모습이나 가수 얼굴이 담긴 LP 표지가 아니라, 음반을 표현하는 그림이 담겨 있다. 여기에 LP는 일반 검은색 레코드 판이 아니라, 음악을 표현하는 그림이 레코드 판에 입혀져 있다. 플레이 하는 LP면에 그림을 그리고 이 위해 투명한 플라스틱을 씌운 식이라고 할까. “음반 하나가 아니라 책 한 권, 또는 미술작품을 구매한 느낌입니다. 게이트 폴더를 보면서 음반 내용을 상상하는 게 묘미이지요.”

최윤석 전무가 음악에 심취하기까지는 아버지 영향이 컸다. 그의 아버지는 방송국 엔지니어로,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가끔 라디오 팝 프로그램 프로듀서들이 건네주는 음반을 집으로 갖고 왔다고 한다. 최윤석 전무는 자연스럽게 음악에 노출됐다. 취미로 듣던 음악에 더욱 빠지게 된 건 중학교 때는 누나들 덕에 빌보드 팝 차트에 있는 곡들을 주로 듣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조금씩 용돈을 모아 음반을 사던 최윤석 전무는 대학교 때,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에 눈 떴다.

“제 기억에 전 항상 전축 앞에 매달려 있던 것 같습니다. 집에 있으면 항상 오디오 앞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지요. 중학교 때는 월간 ‘팝송’을 사 밑줄을 치며, 관심 있는 곡을 찾아 듣는 탓에 친구들 사이에서 별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 뒤 인터넷이 등장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취미를 교류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음악 장르를 프로그레시브 록이라고 일컫는 걸 알게 되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빠져들었지요.”

포털 사이트에 ‘프로그레시브 록’이라고 치면 각종 검색 결과가 나오는 지금과 달리, 당시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다. 최윤석 전무는 텔넷을 통해 정보를 조회하고, 음반 목록이 정리된 텍스트 파일을 찾아 도트프린터로 인쇄한 뒤 꼼꼼히 정보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직접 해외로 주문해 음반을 사 모았다.

“학창 시절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식으로 용돈을 아껴 음반을 구입했습니다. 회사에 들어간 뒤에는 90년대 국내 록 음악 전문지 ‘핫뮤직’의 ‘콜렉터스 초이스’라는 칼럼을 맡아 3년간 고정 연재를 하면서 음반 구입 비용을 마련했습니다.”

최윤석 전무는 이렇게 음악 잡지에 글 쓰고 받은 고료를 음반 구입에 재투자했다. 지구레코드, 서울음반에서 발매된 음반 해설지 작성을 통해서 받은 돈도 예외는 없었다. 음악 관련 활동을 통해 받은 월급은 100% 음반 구매비로 충당됐다. 결혼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사 때마다 음반 4천장도 함께 옮긴다고 생각해보자. 아내 눈길이 고왔을 리 없다.

“이제 다 옛말입니다. 저도 이젠 편하게 MP3으로 음악을 내려받습니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음반을 모으지도 않지요. 전 과거 콜렉터 입니다. 그래도 가끔 LP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어떻게 하면 편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예전 맛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USB 턴테이블 같은 걸 사서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새가 방앗간을 쉬이 지나갈 리 없다. 얼마 전 ‘오라클 오픈월드 2012’ 행사 참여차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최윤석 전무는 세계 최대 독립음반매장인 아메바 뮤직(Amoeba music)에 들려 마릴리온의 음반 몇 장을 구매했다.

“과거처럼 대대적으로 사모으지는 않는단 얘기였죠. 샌프란시스코까지 왔는데 아메바 뮤직을 안 들리자니 아쉽잖아요. 조금씩은 구매하고 있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