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엔지니어라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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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살. 두 아이의 엄마. 네트워크 엔지니어.

이재미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부장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네트워크 엔지니어(NE)는 직접 벽을 타고 오르내리며 케이블을 설치하고 네트워크 장비도 손수 들어 옮기는 등 일이 고된 탓에 여성이 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이재미 부장이 근무하는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전직원을 통틀어서 여성 네트워크 엔지니어는 4명밖에 안된다. 그만큼 국내에선 여성 네트워크 엔지니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재미 부장은 자신이 네트워크 엔지니어라서 행복하단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 앞으로 네트워크 엔지니어로서 계속 남고 싶다고 자랑할 정도다.

취재차 개발자 행사에 가보면, 계속되는 야근이 너무 힘이 들어 자기 자식만큼은 엔지니어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 얘기를 어렵잖게 듣는다.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회사생활에 염증을 내고 다른 일을 찾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적잖다. 그렇기에 네트워크 엔지니어로서 계속 살고 싶다는 이재미 부장의 말은 선뜻 와 닿지 않았다.

“전 컴퓨터공학과를 나왔습니다. 컴퓨터를 좋아해서, 잘해서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건 아닙니다. 아버지가 취직이 잘 된다고 추천해서 컴퓨터공학과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컴퓨터를 하나도 모르는데 입학했지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입학 후 3년 동안 아무 재미도 못 느꼈습니다. 열심히 수업 듣고 과제도 제출했지만 제 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따라 전자공학과 네트워크 개론 수업을 들었는데 신세계가 보이더군요.”

대학교 4학년, 이재미 부장은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라우터, 스위치 등 네트워크 수업은 그녀에게 너무 재미있게 다가왔다. 3년 배운 컴퓨터공학은 왠지 현실과 동 떨어진 학문 같은 느낌에 흥미를 갖지 못했는데, 네트워크는 달랐다. 인터넷이 어떻게 시작되고, 내가 웹사이트를 통해서 본 정보는 어떻게 전달되는지 등 그녀가 평소에 품고 있던 궁금증을 풀어줬다.

“뭔가 현실적인 학문이라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알고리즘 수업을 들었는데, 이론에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뭔가 실생활에 직접 필요한 건 아니란 생각을 했지요. 네트워크는 달랐어요. 오죽하면, 저 그 때 수업에 쓰인 네트워크 교과서를 아직도 갖고 있을 정도랍니다.”

네트워크 엔지니어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해당 분야 일을 맡기까지는 고난의 시간이 이어졌다. 우선 취직이 문제였다. 1990년대 후반은 IMF 가 터진 직후라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잘 뽑지 않을 때였다. 입사지원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을 정도다.

취업 간담회에 온 선배에게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물어 쌍용정보통신을 추천받았다. 학과에 입사지원서 3장만 들어온 기업이었다. 다행히 운이 따라줬다. 이재미 부장은 치열한 경쟁 끝에 쌍용정보통신에 입사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 네트워크 엔지니어로서 첫 발을 디딘 셈이다.

“입사 후 처음 3개월은 회사에서 공부만 했습니다. 동기들과 다르게 졸업 작품을 마치고 입사하느라 신입사원 연수를 놓친 탓에 바로 실무로 들어갈 수 없었거든요. 교육이 없던 건 아닙니다. 속성으로 받았습니다. 실물로 만져보길 원했던 네트워크 장비는 모두 글로 공부했지요.”

계속되는 이론에 싫증날 무렵 기회가 왔다. 이재미 부장에게 네트워크 구성 프로젝트가 떨어진 것이다. 과장은 이재미 부장에게 ‘증권사에서 코로케이션 서비스하는 망으로, 네트워크 구성이 단순해 일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단독 프로젝트를 줬다.

“3개월만 열심히 책 보고 공부하던 제게 갑자기 현장에 나가서 일하라고 등을 떠민거죠. 그것도 혼자서요. 라우터 2대, 스위치 4대로 네트워크 장비는 총 6대니, 6월까지 구축 완료하라는 말만 남긴채 말입니다.”

앞이 깜깜해졌음 물론이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24살짜리 새내기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얼마나 알겠는가. 보통은 선배들과 함께 작업하기 마련인데, 그녀는 혼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선배들이 제작한 프로젝트 계획서, 프로젝트 진행서, 장비구성도를 보고 계획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영업사원과 손잡고 그녀의 첫 고객을 만나러 갔다.

“고객이 제 얼굴을 보더니 당황하더군요. 나름 네트워크 엔지니어라고 청바지에 운동화, 배낭을 메고 갔으니 얼마나 어려 보였겠어요. 다행히 같이 간 영업사원이 ‘걱정 안해도 된다’라고 안심시켜서 일을 시작하게 됐지요.”

라우터 2대와 스위치 4대 장비를 설치한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끝나는 게 아니다. 트래픽이 문제 없이 잘 흘러가는지 네트워크도 감시해야 하고, 이를 위한 시스템 설정도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작업만 있을까. 장비를 인터넷 데이터센터(IDC)게 갖다 놓는 일부터 시작해서, IDC 내 장비를 서로 연결하는 일까지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직접 해야 한다. 그 사이에 고객사에 진행 사항을 문서로 정리해서 알려주기까지 해야 한다.

“선배들에게 계속 물어보고, 공부하고, 고객사 미팅 마치고 돌아와서 눈물을 찔끔거리는 날의 반복이었던 것 같아요. 오롯이 혼자 했다면 못 버텼겠지요. KT IDC 직원, 케이블 담당자, 선배들까지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버틸 수 있었죠.”

첫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재미 부장은 맨 처음 들어가서 일을 배운 네트워크 통합(NI)이 아닌 망 관리 시스템(NMS) 엔지니어로 활동하게 됐다. 소프트웨어도 공부하면서 네트워크에도 관심을 가진 그녀를 눈여겨 본 NMS 담당자가 스카우트한 게 계기가 됐다.

NMS는 시스템 관리자가 네트워크를 통제하는데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2000년대 인터넷 붐이 불면서 네트워크 관리 문제가 불거졌고, NMS 쪽 엔지니어를 요구하는 기업들이 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를 둘 다 할 줄 아는 이들은 찾기 힘들어 NI가 NMS일도 겸임하는 식이었다. 그 와중에 소프트웨어를 알면서도 네트워크도 아는 이재미 부장이 얼마나 귀한 인재였겠는가. 결국 네트워크 장비를 설치하는 일은 증권사가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젝트가 됐다.

이재미 부장은 4년5개월 동안 쌍용 정보통신에서 일한 뒤 우크라이나로 잠시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시스코에 둥지를 틀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2명이나 낳았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아마 3년 전에 지금과 똑같은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살기 싫다고 말했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달라요. 그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네트워크가 다시 재밌기 시작해졌어요. 예전엔 우물 안 개구리였다면 이젠 바깥 세상도 보는 여유를 찾았다고 할까요.”

사내에서 나 홀로 NMS 엔지니어였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항에 e메일로 질문을 보내면 즉각 답변을 보내주는 전세계 동료가 있다. 아이가 아플 때 재택근무 할 수 있게 배려해 준 상관도 있다. 회사는 자신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회사 자랑이 아닙니다. 제가 혼자서 일한다는, 여자로 일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끔 도와준 사내 문화 덕에 전, 몇 명 안 되는 여성 네트워크 엔지니어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제가 계속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살아가게끔 하겠지요. 행복합니다. 네트워크 엔지니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