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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 마이크로시스템즈 27년의 흥망성쇠
by IDG Korea | 2009. 05. 04

썬마이크로시스템즈(SUN)는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IT 업계의 강자로 군림해 왔다. 오라클(Oracle)의 인수로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은 썬의 시작과 굴곡 많았던 27년을 짚어본다.

설립 당시의 썬(1982)

썬은 원래 Stanford University Network의 약자로, 스탠포드 대학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에 있던 앤디 벡톨샤임(오른쪽 두 번째)의 아이디어였다. 벡톨샤임은 전기 엔지니어이자 스탠포드 MBA 출신의 비노드 코슬라(맨 왼쪽)와 손을 잡았다. 코슬라는 팔로 알토에 있는 맥도널드 가게에서 빅맥으로 스탠포드 MBA 출신인 스콧 맥닐리(맨 오른쪽)를 꼬셔 왔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1982년 2월, UC 버클리의 컴퓨터 과학자로 유닉스 BSD 개발에 참여했던 빌 조이(왼쪽 두 번째)를 4번째 공동 설립자로 시작됐다. 초대 CEO는 코슬라가 맡았고, 1984년부터는 맥닐리가 맡았다.

오리지널 썬 워크스테이션(1982)

썬의 오리지널 워크스테이션은 메인프레임 터미널의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모토로라 68000 CPU에 1MB 메모리, 그리고 백만화소급 그래픽 디스플레이로 구성됐다.

네트워크가 컴퓨터다(1984)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썬의 “네트워크가 컴퓨터다”라는 슬로건은 스콧 맥닐 리가 아니라 썬의 다섯 번째 직원인 존 게이지가 1984년에 제안한 것이다. 빌 조의 UC 버클리 동료였던 게이지는 컴퓨터의 매력에 빠진 수학 강사였으며, 썬의 얼굴 마담이 되었다. 게이지가 제안한 슬로건은 클라우드 컴퓨팅을 예견한 것이다. 썬이 이런 저런 면에서 실패를 거듭하기 전까지, 이 슬로건은 썬의 통일된 정책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스팍 프로세서 : RISC 상용화에 성공(1989)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는 1980년대 UC 버클리에서 진행된 연구를 통해 성장을 거듭했다. 그리고 썬의 스팍(Sparc, scalable processor architecture의 변형)은 RISC를 워크스테이션용 CPU로 상용화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썬의 첫 번째 스팍 사양은 1986년에 발표됐지만, 스팍 프로세서를 사용한 첫 번째 워크스테이션인 썬 스팍스테이션 1은 1989년에야 출시된다. 스팍은 공개 사양이며, 이 사양을 기반으로 후지쯔와 LSI 로직 등이 스팍 프로세서를 만들었다.

솔라리스의 부상(1991)

썬의 원본 보도자료에는 솔라리스를 “업계 최초의 ‘개별 포장’된 분산 컴퓨팅 환경으로, CD 한 장에 담을 수 있다”고 표현했다. AT&T와의 합작 프로젝트로 탄생한 솔라리스는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유닉스 배포판인 BSD, 시스템 V, 제닉스를 융합했다. 처음부터 스팍 프로세서 뿐만 아니라 x86 프로세서에서도 실행 가능하도록 개발됐지만, 썬 시스템에서만 주로 사용됐다. 솔라리스는 현재 오픈소스 버전도 제공되고 있다.

자바의 등장(1995)

자바의 원래 개념은 자바 가상머신으로 어떤 플랫폼에서도 실행할 수 있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드는 것이었다. 쉽게 배울 수 있는 개발언어로 자바는 C보다 안전하고 비주얼 베이직보다 직관적이다. 자바의 관리된 코드 환경은 보안을 향상시키고, 잘못된 프로그램이 프랙티스를 방지하며, 분산 환경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지원한다.

썬,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다(1997)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우를 자바(JAVA)에 적대적인 운영체제로 만들려고 했다. 자바가 브라우저의 플러그인 메커니즘으로 액티브X를 위협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용 자바 가상머신을 역공학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에는 자바와 비슷한 개발언어인 비주얼 J#을 만들어 자바 개발자를 닷넷 진영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썬이 제기한 소송의 핵심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불법적으로 자바를 흡수해 자사의 목적에 따라 변경했다는 것. 이외에 다른 고소도 이어졌고, 마이크로소프트로 맞고소로 대응했다. 그리고 이 오랜 반목은 2004년에야 끝났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썬에 20억 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스콧 맥닐리와 스티브 발머는 정전협정을 맺었다.

“”We put the dot in dot com””(1999~2001)

닷컴 거품 시절의 이 유명한 광고 문구는 사실로 증명됐다. 울트라스팍 서버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자바가 모든 대형 웹 사이트에 매력적인 존재로 확인되면서 썬의 가치는 최고 2,000억 달러까지 치솟았고, 주가는 247달러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2001년 말, 썬의 주가는 49달러에 불과했다.

모든 가능성을 추구하다(2002~2004)

거품이 붕괴한 후, 썬은 엄청나게 광범위한 혁신 기술과 제품을 발표하거나 도입했지만, 이중 금전적인 면에서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드물었다. 예외로 들 수 있는 것은 멀티쓰레드 RISC CPU 서버인 울트라스팍 T1과 주목 받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현재 스토리지 관리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으로 평가받는 ZFS 정도일 것이다.

앤디 벡톨샤임의 복귀(2004)

썬의 첫 번째 직원이었던 앤디가 2004년 신생 서버 설계업체인 켈리아(Kealia)를 인수하면서 썬으로 돌아왔다. 벡톨샤임은 썬의 볼륨 시스템 제품 그룹 대표 아키텍트를 맡았으며, 썬의 AMD 옵테론 프로세서 기반 제품군 설계에 기여했다. 새로운 서버는 잘 팔렸고, 벡톨샤임의 설계는 썬의 x86 서버 사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슈왈츠, 왕좌에 오르다(2006)

많은 사람들이 스콧 맥닐리의 후계자 조나단 슈왈츠를 CEO감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해도 슈왈츠는 뛰어난 소프트웨어 인재이고, 썬의 매출은 대부분 하드웨어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CEO가 되기 전에 이 활력 넘치는 썬의 부사장은 썬을 자바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MySQL 전격 인수(2008)

시간이 지나면서 썬의 미들웨어는 엄청난 덩치로 불어났고, 대부분으 오픈소스였다. 여기에는 애플리케이션 서버, 관리 및 개발 툴, 애플리케이션 통합 소프트웨어, 서비스 버스, ID 관리 소프트웨어 등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는 없었다. 결국 썬은 MySQL을 엄청난 돈을 들여 인수했다.

오라클, 썬 인수

2009년 4월 20일 월요일, 오라클은 썬을 74억 달러에 사들이기로 합의했다. 오라클 CEO 래리 엘리슨은 자바와 솔라리스를 인수 이유로 꼽았다. 오라클 사장 사프라 캣츠는 올해 썬의 제품에서 15억 달러의 수익을 뽑아낼 수 있으며, 2010년에는 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원문보기 : http://www.idg.co.kr/newscenter/common/newCommonView.do?newsId=5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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