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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물관에서 발견한 컴퓨터 발자취

2012.11.04

1990년,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고 맨 처음 배웠던 것은 컴퓨터를 켜는 게 아니라 바로 ‘에니악’이었습니다. 에드박, PL-1 등 그 당시에도 볼 수 없었던 컴퓨터의 할아버지들의 족보를 줄줄줄 외고서야 비로소 베이식 언어를 배울 수 있었던 게 당시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시 수업에 썼던 애플II, 테이프 레코더가 달린 SPC1000 등도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미국에 바로 그런 박물관이 있더군요. 마운틴듀에 자리잡은 컴퓨터 역사 박물관입니다.

길을 찾아가다 보니 컴퓨터 역사 박물관 바로 길 건너는 구글의 본사 캠퍼스입니다. 왠지 설레이는 동네입니다. 입구에서 표를 구입하고 들어갈 수 있는데 표를 끊기 전에 직원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의 직원인지’ 묻습니다. 이 기업들의 직원은 별도의 할인 프로그램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니라고 하니 일반인들은 15달러를 내라고 합니다. 만만한 가격은 아니군요.

매표소 옆을 보니 디스켓 드라이브가 두 개 들어 있던 HP의 데스크톱 PC과 매킨토시의 프로토타입 컴퓨터가 눈에 띕니다. 각각 1983년, 1981년생이라니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 하는 생각이 다 듭니다. 이 박물관은 이런 곳입니다. 자 이제 안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산기들입니다. 고대의 계산기들부터 요즘 컴퓨터보다 큰 전자계산기들까지 모여 있습니다. 컴퓨터가 원래는 반복적인 숫자 계산을 대신해주는 기계였다는 것이 새삼스럽지만 새롭게 느껴집니다.

창립 100년을 맞은 IBM 이야기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창립자인 왓슨박사 자리 뒤에 항상 붙어 있었다는 THINK 카드가 여러 버전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씽크패드 노트북의 이름도 이 카드를 보고 순식간에 떠올렸다고 합니다.

조금 더 둘러보니 드디어 찾던 컴퓨터가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바로 에니악입니다. 진공관을 켜고 끄는 것으로 0과 1을 인지해 계산하는 바로 그 컴퓨터의 시조입니다. 진공관의 개수가 바로 컴퓨팅 성능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방 몇 개를 채워야 했고 진공관은 수시로 죽어나가 애를 먹였다더니 크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소프트웨어 문제로 꼽는 ‘버그’라는 말도 에니악에서 나온 말입니다. 계산 결과가 틀려 컴퓨터를 살펴보니 진공관 사이에 벌레가 끼어 있었다는 일화에서 태어난 단어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진공관이 트랜지스터로, 다시 실리콘으로 발전해 아이비브릿지 기반의 쿼드코어 i5 프로세서에는 14억개가 집약되어 있는 걸 생각해보면 기술 발전에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잘 알 물건입니다. 이니그마입니다. 독일이 쓰던 암호 코드였는데 당시로서는 이 암호를 해독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이후 해킹이 되면서 세계대전의 판도를 뒤집어놓기는 했는데 통신과 암호의 중요성을 세상에 널리 알린 대표 사례입니다.

그 유명한 IBM의 시스템/360입니다. 1964년 태어난 이 컴퓨터는 IBM이, 그리고 메인프레임이 인정받고 자리잡을 수 있게 했습니다. 컴퓨터마다 전혀 다른 환경이었던 이전 시스템들과 달리 이 제품 이후 IBM은 시리즈간 똑같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운영체제 보편화에 나섭니다. OS/360이 바로 그것이지요. 어쨌든 그 효용성을 인정받아 60년대에도 1대에 300만 달러의 끔찍한 가격이었지만 한 달에 1천대씩 팔렸다고 합니다.

스토리지의 발전도 눈부십니다. 디스크의 할아버지인 IBM RAMAC350 드라이브입니다. 지금 하드디스크와 똑같은 구조로 자성을 입힌 디스크 여러장을 겹쳐 1초에 1200번 회전시키면서 헤드가 필요한 정보를 꺼내어 컴퓨터에 전달해주는 겁니다. 세탁기만한 게 철컥거리면서 움직이는 게 신기합니다. 이 안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는 500만자, 요즘 용량으로 계산하면 약 4.8MB가 담깁니다.

이후 기술이 발달해 플로피디스크와 하드디스크는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끌게 됩니다. 아마 이때 당시의 개발자들이 손톱만한 마이크로SD카드 1장에 32GB씩 담아서 다니게 되는 요즘 컴퓨터 환경은 생각조차 못했겠지요.

크레이1 슈퍼컴퓨터입니다. 크레이는 병렬 컴퓨팅을 기반으로 하는 슈퍼컴퓨팅을 세상에 널리 알린 바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컴퓨터를 여러 개 겹쳐 엄청난 성능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으로 요즘도 기상청처럼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곳에서는 인기입니다. 왠지 연구소에 딱 어울릴 것 같은 디자인입니다.

컴퓨터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역시 반도체 기술입니다. 인텔이 프로세서를 더 세밀하게 집적하고 한 번에 더 많은 칩을 찍을 수 있도록 한 웨이퍼의 발전사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300mm 웨이퍼를 쓰는데 곧 400mm 웨이퍼를 적용한다고 합니다. 지금이 100mm 커지면 생산량이 2배로 늘어납니다.

인텔의 프로세서들, 이 중에서 얼마나 많이 써보셨나요? 돌아보니 제가 갖고 있는 것들도 상당하네요.

DEC가 개발한 알파 프로세서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만 하던 삼성전자가 이 프로세서를 라이선스해서 생산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64비트 기반의 RISC 프로세서이고 작동 속도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이 프로세서는 이후 컴팩을 거쳐 인텔에 팔리면서 현재는 아이태니엄 시리즈로 기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에서나 보던 최초의 마우스도 있습니다. 스탠포드의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만든 것인데 컴퓨터에 X-Y 좌표를 입력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 기술을 이후 제록스에 넘어가고 IDEO가 애플컴퓨터에 공급하면서 지금은 필수품이 되었지만 정작 이걸 처음 만든 사람들은 어떤 대가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지요.

독특한 키보드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키보드를 종일 두드리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모양의 인체공학 디자인 키보드가 나왔지만 지금 보면 결국은 본래 모습 그대로의 키보드만 쓰고 있네요.

컴퓨터가 발전하게 된 또 하나의 축은 게임입니다. 집집마다 게임기가 들어오게 된 데는 닌텐도의 패미컴이 큰 역할을 했지만 당시에도 세가 마스터 시스템이나 아타리가 치열한 경쟁을 한 바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이런 모든 흔적이 남아 있네요. 게임 잡지에서나 보던 반다이의 게임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닌텐도와 소니에 밀려버린 아타리의 야심작 재규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아타리는 이 게임기를 마지막으로 콘솔 게임 시장을 떠났지요.

심 시리즈 게임은 많이 했지만 오래전 게임들의 패키지는 새롭군요.

드디어 가정용 컴퓨터들이 소개됩니다. 여기에는 애플2가 빠질 수 없죠. TV에 연결해서 쓰도록 한 이 컴퓨터는 베이식 언어로 프로그램을 짤 수 있었고 당시 엑셀같은 비지캘크(VisiCalc)라는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은 킬러콘텐츠로 인정받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요즘은 엑셀이 인기지만 이 엑셀도 처음에는 매킨토시 컴퓨터용이었습니다.

책에서나 보던 코모도어 PET도 볼 수 있었습니다. 테이프를 넣어 프로그램을 구동하던 이 1977년의 개인용 컴퓨터에는 1MHz의 프로세서와 4KB의 메모리가 들어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가 쓰던 윈도우용 컴퓨터를 ‘IBM PC 호환기종’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이 PC의 뿌리가 IBM이 만든 IBM PC였고 HP나 델, 삼성은 이 x86 PC의 규격을 따라 만든 일종의 호환 기종이었습니다. 아마도 IBM이 PC사업을 레노버에 넘길 즈음부터 호환기종이라는 말 대신 그냥 PC라는 말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곳은 모바일쪽입니다. 제 첫번째 PDA인 팜파일럿도 보입니다. 팜 PDA는 당시 모뎀으로 유명했던 US로보틱스에서 만들었지만 이후 쓰리콤으로 넘어갔다가 사업이 커지면서 별도로 분사했습니다 그 팜이 돌고 돌아 HP로 인수됩니다. 생각해보면 이 PDA를 만든 쓰리콤도 HP에 인수됐네요.

통신 기능을 덧붙인 팜VII도 있네요. 단순한 일정 관리에서 시작했지만 돌아보면 팜 PDA로 PC통신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갈무리해서 읽기도 했고 요즘 인기있는 ‘애니팡’과 비슷한 ‘비주얼드’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은 앞날이 불투명한 팜OS를 보는 마음은 좀 짠하네요.

영국에서 만든 PDA 사이언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페이스가 화려했고 키보드가 있어서 메모하기 좋았습니다. 한때 매우 갖고 싶었는데 값이 비쌌고 구입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블랙베리를 만드는 RIM의 삐삐입니다. 다른 삐삐들이 숫자만 받을 수 있던 것과 달리 이 삐삐는 문자를 받을 수 있었고 심지어 보내기도 됩니다. 블랙베리의 BBM과 같은 기능이었는데 이걸 무기로 블랙베리는 순식간에 북미 시장을 휩쓸어버렸습니다. 카카오톡이 스마트폰 보급을 이끈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해보이기도 합니다.

아이폰의 할아버지쯤 되는 애플의 뉴튼 메시지패드입니다. 팜에 비해서 크고 무거운 편이었는데 당시에도 끌어다 놓고 제스처로 명령을 내리는 기능은 다른 PDA들과 달랐습니다. 메모 중에 틀린 글자를 펜으로 슥슥 문지르면 지워지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애플은 이걸 단종하면서 아이패드를 준비했던 듯 합니다.

IBM의 씽크패드 701CS입니다. 뚜껑을 열면 접혀있던 키보드가 펼쳐져 12인치 키보드 정도로 넓어집니다. 버터플라이 키보드라고 불렸지요. 지금도 씽크패드의 키보드는 최고 수준으로 꼽히지요.

이건 초기 구글의 서버입니다. 메인보드만 있는 PC들을 랙에 꽂고 이를 이더넷으로 묶고 2개의 라우터를 연결해 하나의 서버랙을 꾸렸습니다. 이렇게 서버를 묶어서 시스템을 만들던 구글의 기술이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등 요즘의 컴퓨터 환경을 만드는 구글의 토대가 된 듯 합니다.

최초의 모뎀입니다. 전화선을 컴퓨터에 꽂는 게 아니라 아예 수화기를 얹도록 되어 있습니다. 옆에서 무슨 소리라도 내면 통신 연결이 끊어질 것 같습니다. 이름은 모델 ADC300 이라고 합니다. 통신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빠르고 편해졌지만 치지직거리며 연결되던 모뎀 소리가 왠지 그립습니다.

박물관을 돌아보는 데는 꼬박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곳에는 수많은 컴퓨터과 관련된 볼거리들이 그득합니다. 소개한 내용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예술품이나 역사적인 유물들만이 박물관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PC, 스마트폰, 인터넷 환경들도 역사의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