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CCL=저작권 보호 기능’이라시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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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 Creative Commons License)를 알게 된 지도 4년이 넘었다. 지난 2005년 3월, 한국에 CCL이 처음 도입됐을 때만 해도 저 낯선 저작물 규약이 어떤 효력을 가지는지, 그 가치는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4년동안 CCL 전도사들을 만나고, CCL이 어떻게 저작물에 공유의 날개를 달아주는지 보고 배웠다. 저작물은 손에 쥐고 있을 때가 아니라 널리 풀고 나눌 때 가치가 거듭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요컨대 CCL은 보호와 통제를 위한 약속이 아니라, 공유와 재창조를 위한 관용이라는 가치를 위해 존재한다.

CCL 인지도도 조금씩 높아졌다. 다음 블로그를 시작으로 파란, 네이버 등이 블로그 글에 CCL을 붙일 수 있는 기능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세계 최대의 개방형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도 CCL을 기본 저작물 이용허락 조건으로 채택했다. 한글과컴퓨터는 국내 SW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한컴 오피스 2007’로 작성한 문서에 CCL을 붙일 수 있는 메뉴를 도입했다. 꽉 막힌 저작권 정책에 물꼬를 튼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디지털 저작물에 적용해보려는 시도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지금도 진행중이다.

헌데 아직도 CCL을 이른바 DRM(디지털 저작권 관리)와 비슷하게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이를테면 저작물을 엄격히 보호하고 관리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CCL이란 식의 인식이다.

지난 4월 중순 블로그 메뉴에 CCL 기능을 추가한 야후코리아를 보자.

[공지] 저작권 보호를 위한 CCL 기능 추가

yahoo_ccl

CCL 기능을 도입해 블로그 글을 널리 나누고 퍼뜨리자는 취지에는 절대 공감한다. 하지만 이같은 공지는 ‘CCL=DRM’이란 식의 인식을 블로그 이용자들에게 심어줄 소지가 다분하다. 무엇보다 야후 블로그 공식 블로그 운영자 스스로 이같은 관점에서 접근하는 인상이 짙다. 다음과 같은 문장만 봐도 그렇다.

“야후! 블로거 여러분들이 힘들게 작성하신 블로그 포스트(저작물)의 무단 사용 및 배포를 막기 위하여, 블로그 콘텐츠 저작권 보호를 위한 CCL 기능이 추가 되었습니다.”

CCL을 잘 모르는 이용자가 이 공지를 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CCL을 달면 저작권 무단 사용과 배포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확률이 높다. 허나, CCL은 기술적 보호장치가 아니다. ‘저작물 이용 허락 표시’다. 저작물이란 게 애당초 탄생과 더불어 저작자에게 엄격한 권리를 부여하는 바, 굳이 내 저작물을 손에 꽁꽁 쥐고 있지 않겠다면 CCL로 이용허락 조건을 걸고 다른 이들에게 개방하자는 뜻이다. 예컨대 ‘BY-NC’ CCL이 붙은 저작물은 저작자를 표시(BY)하고 상업적 용도로 쓰지 않는다(NC)는 조건만 지킨다면 따로 저작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더라도 해당 저작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걸 뜻한다. 물론 저작자가 내건 조건을 지키지 않고 저작물을 쓴다면 엄연히 저작권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요컨대 웹에 올라온 저작물이란 게 일일이 저작자에게 허락을 받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절차도 번거롭기 때문에, 저작자가 먼저 CCL 표시를 달아두면 방문객들이 이를 확인하고 저작물을 안심하고 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CCL은 기술적으로 복제방지 장치나 워터마크 등을 교묘하게 집어넣은 DRM과는 취지부터 정반대다. DRM이 보호와 방어를 위한 장치라면, CCL은 나눔과 창조를 위한 약속이다.

CCL 자체가 새로운 저작권법은 아니다. CCL을 달든 안 달든, 남의 저작물을 불법으로 가져다 썼다면 저작권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CCL은 그런 점에서 저작권자가 미리 이용 조건을 걸어둠으로써 이용자에게 권리를 다시한번 환기시키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물론 법의 울타리 안에서 저작물을 널리 나누고 재창조하는 데서 발생하는 가치가 더욱 크겠지만.

야후코리아가 블로그에 CCL 기능을 도입한 일은 두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블로그 이용자에겐 CCL 도입 의미나 영향을 정확히 설명해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CCL의 정확한 취지와 가치를 모르는 이용자가 저작물에 자물쇠를 채우기 위해 CCL을 적용했다가 ‘불펌’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자기 저작물을 남들과 나누기 싫거나 어떤 식으로든 ‘펌질’을 허용하지 않으려거든 CCL을 달지 않는 게 좋다. 아니, 애당초 웹에 공개하지 않는 게 최선이겠다.

야후는 구글과 더불어 CCL이 적용된 컨텐트만 골라 찾을 수 있는 CCL 검색 기능을 제공하는 등 CCL 도입에 남보다 먼저 팔을 걷어붙인 기업이다. 플리커만 봐도 CCL이 붙은 사진만 조건별로 골라 검색할 수 있는 ‘Creative Commons‘ 메뉴가 따로 제공되고 있다. 야후코리아가 이번에 좋은 취지로 도입한 제도가 자칫 이용자에게 왜곡돼 전달되지 않을까 싶어 노파심에 말이 길었다.

<업데이트>

야후코리아 공지 내용이 아래와 같이 수정됐다.

“야후! 블로거 여러분들의 창작물에 대하여 저작물의 허용 조건을 명시, 다른 이용자에게 알려줄 수 있는 CCL 표시 기능을 오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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