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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또 다른 상징, ‘스타트업 모임’

2012.11.07

어제, 11월5일 하루 내 해가 반짝했단 것만으로 런던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다들 “오늘 날씨는…”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꺼낼 때 표정이 정말 환했습니다. 그만큼 이곳 날씨는 변덕스럽습니다. 6일 오후엔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이게 런던”이라며 “런던에 온 걸 환영해요”라고 말합니다. 결국, 날씨가 좋건 나쁘건 런던 사람들은 날씨 얘기를 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글로벌 K-스타트업의 영국 여정을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는 “이게 바로 런던의 문화”라고 알려줬습니다.

▲어제는 해가 질 때까지 날씨가 이렇게 좋았습니다. 

우리에게 낯설지만, 런던에서는 익숙한 문화가 또 하나 있습니다. 런던판 실리콘밸리인 테크시티에는 스타트업 모임이 자주 열립니다. 이 모임에서 사람들은 방학 끝내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속사포 쏘듯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바쁩니다. 그간의 이야기를 기억이라도 하려는 듯이 들어주는 데도 열심입니다. 글로벌 K-스타트업의 일환으로 이곳에 온 지 이틀에 불과한데도 이런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글로벌 K-스타트업은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 구글코리아가 올해 처음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올 2월, 참가 기업을 모집하며 시작한 프로그램이 이번 2주 해외 일정으로 마무리됩니다. 선정기업에는 창업지원기금과 상금, 멘토링 등을 지원하는데 그중 일부 팀은 해외 진출을 돕기로 했습니다.

선정된 곳은 노리와 클래스팅, 피그트리랩스, 말랑스튜디오, 브레인가든, 프로그램스 등 6개 팀으로11월5일부터 9일까지는 영국 런던의 테크시티에서, 11월12일부터 16일 사이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다양한 벤처투자자와 스타트업을 만나게 됩니다. 한 개 팀은 이미 사업을 진행중이라, 미국 일정만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스타트업이 모인 곳, 샌드위치가 3파운드인 동네

런던의 문화에 대한 말을 꺼낸 김에 이틀간 다녀온 일정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첫날은 런던 테크시티 한가운데 있는 ‘마더’의 비스킷 빌딩을 방문하고, 쇼디치 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둘러볼 땐 4개팀으로 나뉘었는데 팀마다 테크시티에 있는 스타트업 사무실과 창업보육센터, 이곳 말로 코워킹 스페이스라고 부르는 협업공간, 근처에 있는 대학을 훑었습니다. 테크시티에 오려는 기업의 회계와 재무에 관한 사항을 전문으로 돕는 킹스턴스미스에서 점심을, 전반적인 사항을 돕는 런던&파트너스에서 저녁 모임을 하고, 웹상에 널린 각종 데이터를 기업이 활용할 방법을 돕는 오픈데이터인스티튜트를 방문했습니다. 이곳 대표는 이번이 7번째 창업이라고 하더군요.

둘쨋날인 11월6일, 라스트FM을 창업하고 CBS에 매각한 스테판 슬렌저가 세운 벤처투자사 패션캐피털 방문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모질라재단의 협업공간인 모즈스페이스, 구글이 테크시티에 마련한 협업공간 캠퍼스 런던에서 오후를 보냈습니다.

이틀 내 저희가 방문한 지역은 샌드위치 가격이 4파운드를 넘지 않았습니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정보입니다. 이곳에서 샌드위치가 3파운드대면 엄청 쌉니다. 이 정도면 유리지갑 직장인과 주머니 가벼운 스타트업에 가장 중요한 ‘그 동네 밥값은 얼마’란 정보에 해당하지 않나요.

테크시티에 대한 글을 찾아보면 상징적인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책은 빼고 이곳 사람들이 꼽는 일종의 문화이자 특징인데요. 저렴한 물가, 잦은 모임, 정보 공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게 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인 런던에 스타트업이 찾아오는 이유입니다.

테크시티를 런던판 실리콘밸리라고 소개했는데요. 사실 규모로 따지면 이곳은 너무 좁고 작습니다. 세계적인 IT 기업이 본사를 둔 것도 아니고, 창업지원센터를 세우거나 R&D센터, 디자인 연구소, 개발자 사무소 등을 설립한 데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에 법인을 올 9월 설립하고 곧바로 런던으로 온 ‘플리토’의 이정수 대표는 “미국엔 주로 미국 출신이 많지만, 이곳 런던에는 다들 출신과 배경이 다양하다”란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플리토는 영국 스프링보드의 인큐베이팅(창업보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으며, 캠퍼스 런던에서 전 직원 3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영국에 온 지 50여일 됐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리는 네트워크 파티

지금 하려는 얘기를 꺼내기 위해, 이정수 대표를 만난 과정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11월6일, 저녁 캠퍼스 런던에서 글로벌 K-스타트업 팀은 각자 3~5분씩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앞서 국내 온오프믹스와 비슷한 이벤트브라이트란 웹사이트에 ‘한국의 스타트업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오라’란 공지를 올렸습니다. 맥주와 음료를 마련한 덕분인지 30명 남짓 모였습니다. 이정수 대표를 바로 이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동양인임에 반가워 말을 걸어보니 한국 기업이었던 게지요.

런던 테크시티에는 제가 이정수 대표를 우연히 만난 이런 식의 자리가 자주 열립니다. 이번 자리처럼 맥주를 공짜로 주기도 하고, 때론 경품을 걸고선 발표를 시키기도 합니다. 플리토도 글로벌 K-스타트업처럼 낯선 사람들 앞에 서비스를 소개했는데, 1등을 차지해 갤럭시노트를 경품으로 얻었다고 합니다. 꼭 경품을 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들 궁금한 마음에 그저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모임이라고 소개했지만, 휴게실에서 잠깐 얘기 나누는 듯 격식도 형식도 없습니다.

이게 바로 테크시티가 내세우는 문화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매일 마련됩니다. 창업보육센터와 협업공간은 저마다 크고 작은 행사를 마련합니다. 해커톤이 될 수도 있고, ‘미트업’이라고 해서 가벼운 모임도 있고요. 이런 행사가 열리는 장소는 물론, 여는 주체도 정부의 어느 기관은 아닙니다. 금요일마다 여는 곳이 있는가 하면, 매주 목요일로 고정한 곳도 있습니다. 누가 올지도 모릅니다. 워낙 이런 자리는 자주 있습니다. 일부러 찾아오고,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일하는 곳에서 열린다니 조금 늦게 일하다 얼굴을 빼꼼 내비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플리토가 바로 후자이지요.

만나는 사람도 각양각색입니다. 11월6일 모임엔 어제 만난 TCIO 직원과 센트럴워킹그룹의 직원도 왔습니다. 이정수 대표처럼 스타트업을 이끄는 CEO나 팀 대표, 개발자, 디자이너, 스타트업을 차리려는 학생, 투자자, 또는 관심만 있는 사람 등 누구를 만날지 모릅니다. 대화 소재도 다양하겠지요. 정의형 피그트리랩스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을 만났다고 합니다. 플리토의 이정수 대표는 모처럼 한국 사람을 만났고, 한국의 미디어를 만났지요.

테크시티에 저녁마다 열리는 모임은 아주 자유롭습니다. 지각이란 게 없습니다. 7시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미리부터 와서 글로벌 K-스타트업 참가팀들에 다가와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치는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둘 자리를 떠나면 그게 곧 마치는 시간입니다. 장소는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휴게실이면 충분합니다. 이야기는 서서하거나 앉아서 하거나 상관없고요.

맥주 가지러 가다가 눈이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얘기가 재미있어 보이는 곳에 슬그머니 끼어 보기도 하고요. 피부색도 각양각색입니다. 앵글로색슨족처럼 보이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계나 중동계 모습도 비칩니다. 저희처럼 아시안도 있고요. 언어는 당연히 영어이지만 한국식, 싱가포르식, 인도식, 필리핀식, 영국식, 미국식, 호주식 등 스타일이 다양합니다.

제가 본 이 참석자들은 씨앗 유저가 될 소질이 충분해 보였습니다. 대체로 테크시티에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 곳곳 사람이 모인다고 하니, 각국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겠지요. 운이 좋게도 내가 만난 사람이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면,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서비스가 퍼질 수도 있겠지요.

이틀간 테크시티의 협업공간과 창업보육센터를 둘러보며 ‘인테리어 잘했네’라고만 감탄했는데, 바로 이렇게 편안하게 얘길 나누는 곳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의형 피그트리랩스 대표에게 슬쩍 물어봤습니다.

“한국에도 이렇게 IT 스타트업이 서로 만나는 행사는 자주 열리는데, 이런 공간이 필요할까요? 어떻게 보면 좀 쓸모없는 것도 같고요.”

“그런 행사는 명함처럼 분명히 챙겨갈 게 있겠지만, 저희와 같이 서비스 개발하기에도 바쁜 작은 조직이 찾아다니기엔 좀 무리예요. 이곳처럼 일하다 관심 있으면 편하게 와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좋지요. ‘스타트업은 어때야 한다’라는 강연 대신에 오늘처럼 개발 방법을 얘기하고 어느 웹사이트를 가야 좋은 정보를 얻는지 등 요즘 경향을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아요. 꼭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필요하단 게 아니고, 이런 분위기로 공간만 잘 마련돼 있으면 가보고 싶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자, ‘한국에 이런 공간이 들어설 곳으론 어디가 좋을까’란 상상을 해볼까요.

▲저녁, 여러 사람 앞에서 서비스를 이야기하기 전 1시간 남짓 발표 연습을 했습니다.

▲서비스 발표 시간. 테크시티에선 이렇게 자기 사업과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도 종종 마련된다고 합니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 걱정하는 한 팀에 이번 저녁 모임을 마련한 친왁의 샘 마이클은 “걱정 마라, 너보다 더 영어 못하는 사람들도 발표를 하더라”란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런던의 일정은 만남이 주제인 모양입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 창업자, CEO 등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소개를 반복합니다. (위)패션캐피털, (아래)모즈스페이스.

▲위 사진은 모즈스페이스 인증샷으로 부족합니다. 불여우가 빠졌으니까요. 파이어폭스폰을 미리 볼 기회가 있었지만,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었습니다. 내년 브라질에서 출시될 예정입니다.

▲오늘 일정에서 자유시간은 무려 ‘4분’. 덕분에 트라팔가 광장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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