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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人] 자랑스런 비주류, 인디게임 개발자

2012.12.05

인디밴드와 인디음악, 인디영화까지. 문화 콘텐츠 앞에 ‘인디’라는 말이 붙으면, 상대적으로 돈 냄새가 덜 난다. 지하 녹음실이나 돈 몇 푼 안 드는 촬영 환경에서 음악이나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인디게임도 있다. 인디음악, 인디영화와 마찬가지로 돈 냄새가 덜 나는 게임 개발 현장을 뜻한다.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자는 의지를 갖고 팀이 시작됐습니다. 우리 둘 다 게임업계에서 근무를 하다 의기투합했죠. 지금은 이렇게 비주류 게임을 만들고 있어요.”

국내에서 온라인게임을 제외하고, 패키지게임이나 개인 게임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 유통된 게 언제적 일이었던가. 국내 게이머 대부분이 국내에서 인디게임 개발자가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형 게임 개발업체의 온라인게임 혹은 모바일게임 쪽으로 시장이 쏠린 이후 돈벌이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인디게임쪽 시장은 전무하다.

인디게임 개발팀 파이드파이퍼스 임현호 게임 디자이너(외쪽)와 김주명 프로그래머

임현호 파이드파이퍼스 게임 디자이너는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것도 아니고, 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일도 아니니 인디게임이라는 설명이 퍽 어울린다. 파이드파이퍼스는 현재 임현호 디자이너와 김주명 게임 프로그래머 두 명이 팀을 이뤄 ‘아미앤스트레티지:십자군’을 개발 중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아직 인디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김주명 프로그래머는 “상업용 게임을 만드는 업체에서 오래 근무했다”라며 “온라인게임과 아케이드, 콘솔, 스마트폰게임까지 경험한 이후 나에게 스스로 상을 주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인디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인디게임 개발 팀에 합류한 것에 ‘상을 주는 것’이라는 표현을 한 점이 특히 인상깊었다.

“상을 주는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해야 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겼던 게임은 지금 국내 어디서도 만들 수 없으니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파이드파이퍼스에 합류하게 됐어요.”

파이드파이퍼스의 두 게임 개발자가 한창 개발 중인 ‘아미앤스트래티지: 십자군’은 턴방식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턴방식 전략시뮬레이션은 옛 486 시절 전후 흔한 게임 장르였다. 상대 진영과 게이머의 진영이 대치한 상황에서 지역의 내정을 관리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며, 군대를 이용해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다. ‘땅따먹기’가 게임의 주된 흐름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삼국지’나 ‘문명’ 시리즈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온라인게임이 주류인 국내 게임시장에서는 턴방식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찾아보기 어렵다. 임현호 디자이너와 김주명 프로그래머가 말한 ‘만들고 싶었던 게임’이 어떤 게임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임 개발 공정은 약 70%까지 완성됐다. 정식으로 출시되기 전 좋은 소식도 있었다. ‘아미앤스트래티지: 십자군’이 중국에서 해마다 열리는 ‘인디게임패스티발(IGF 2012)’에서 최고게임(Best Game) 부문 최종라운드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고게임 영예는 다른 게임에 돌아갔지만, 인디게임 개발 토양이 약한 국내 게임이 최종라운드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반갑다.

파이드파이퍼스 첫 프로젝트 ‘아미앤스트레티지: 십자군’

‘아미앤스트래티지: 십자군’이 턴방식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점과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겠다는 의지. 두 게임 개발자가 뭉치게 된 옛이야기는 어떨까. 파이드파이퍼스의 인연은 어느 한순간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두 개발자의 인연은 지난 1998년 PC통신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임현호 개발자와 1998년 천리안에서 처음 만났어요. 저는 천리안 프로그래밍 동호회 ‘채소소프트 프로그래밍’이라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었죠. 동호회에서 부시삽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김주명)

“저도 천리안 게임 동호회에서 소규모 게임 개발 그룹에 속해 있었어요. 그 커뮤니티의 운영진이었습니다.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개발 교류를 시작으로 김주명 디자이너를 처음 만났죠.”(임현호)

임현호 디자이너와 김주명 프로그래머는 천리안 PC통신 모니터를 넘어 진짜 게임 개발 세계로 나왔다. 임현호 디자이너는 대학 진학과 동시에 게임진흥원 종합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강변 테크노마트에 작은 게임 개발 스튜디오를 차렸다. 김주명 프로그래머도 이때 임현호 디자이너와 합류했다. 당시 임현호 디자이너의 나이 20살, 김주명 프로그래머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김주명 프로그래머는 “당시 제가 사는 집이 인천이었는데, 강변역까지 개발에 쓸 데스크톱을 직접 들고 갔던 기억이 난다”라며 “개발용 PC도 지원하지 않는 업체였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심지어 임현호 디자이너가 김주명 프로그래머의 월급을 떼먹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이니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두 게임 개발자의 추억이다. 두 게임 개발자가 얼마나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만들고 싶은 게임이 있어 잘 다니던 중견 게임업체를 나왔다는 설명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두 게임 개발자 모두 서른이 넘었다. 파이드파이퍼스와 인디게임 개발은 나이 서른, 두 남자의 꿈인 셈이다.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꿈을 꾸는 이의 책임일 터. 파이드파이퍼스의 두 개발자는 ‘아미앤스트래티지: 십자군’을 어떻게 팔 계획일까.

파이드파이퍼스는 ‘아미앤스트래티지: 십자군’을 밸브의 온라인 게임 내려받기 서비스 ‘스팀’을 통해 지원할 계획이다. 인디게임 몇 종을 팩으로 묶어 판매하는 ‘험블인디번들’ 같은 판매방식도 고려하고 있다. 윈도우 운영체제(OS) 버전은 물론, 애플의 맥과 리눅스 등 다양한 운영체제에서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김주명 프로그래머는 현재 파이드파이퍼스 팀의 게임 개발 작업을 ‘아마추어’라고 설명했다. 아마추어 게임 개발을 먼저 시작한 프로 게임 개발자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다시 아마추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일생 동안 게임을 개발 현장에 남고 싶다는 바람도 들려줬다. 임현호 디자이너와 김주명 프로그래머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변한 이후에도 계속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인디게임 모험가다.

“지금 제 나이가 31살입니다. 앞으로 30년은 게임 개발 현업에 있고 싶어요. 아마 저는 100살까지 살지 않을까요? 그때 해야 할 일을 지금 어느 정도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미앤스트래티지: 십자군’으로 돈을 못 벌어도 좋아요. 이 작업이 돈을 못 번다고 해서 인디게임은 죽었다며 좌절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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