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人] 야구선수에서 야구게임 기획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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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할 때 이 옷을 입어야 하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어요.”

네오위즈게임즈 개발실 회의실에 앉아 있었는데, 키가 큰 남자가 성큼 걸어들어오면서 건넨 말이다. 네오위즈게임즈의 새 실사형 온라인 야구게임 ‘야구의 신’은 사람의 동작을 컴퓨터로 입력받아 게임 속 선수들의 그래픽에 적용한 게임이다. 모션캡처 기법이라 부른다. 최홍진 네오위즈게임즈 게임개발팀 기획자가 말한 ‘옷’이란 바로 모션캡처 작업에 이용한 ‘쫄쫄이’를 가리킨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민망한 타이즈 패션을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단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자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게임 속 연출이나 동작, 작전 등 야구의 사실적인 면을 부각하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게임 속 선수들의 동작이 전략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생각하고, 직접 동작 소스를 이용해 게임 화면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죠.”

모션캡처로 얻은 선수들의 동작은 일정한 부분으로 나뉜다. 공을 잡는 동작이나 방망이로 공을 때리는 장면, 투수가 공을 던지는 장면 등을 하나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장면의 조각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것이 최홍진 기획자의 업무다.

예를 들어 점프해서 공을 잡는 장면과 공을 던지는 화면을 연결하면, 수비수가 외야 뜬공을 처리하는 장면이 완성되는 식이다. 이 같은 동작이 한 가지씩만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것도 사람의 실제 동작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순한 그래픽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야구 게임의 생동감을 떨어트릴지도 모를 일이다.

최홍진 기획자는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로 공이 뻗어 나가는 야구 게임 속에서 장면과 장면이 부드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수천 장의 모션캡쳐 장면을 직접 몸으로 만들어냈다. ‘야구의 신’ 속에서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3D 동작들을 볼 때마다 최홍진 기획자를 떠올리면 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좋아해서 소위 동네야구를 많이 했었죠. 초등학교에 야구부 감독이 야구부 입단을 권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야구선수로 살아왔습니다.”

최홍진 기획자가 ‘야구의 신’ 모션캡처 작업을 담당하게 된 건 독특한 이력 덕분이었다. 최홍진 기획자는 네오위즈게임즈에 합류하기 전 유년과 청소년 시기 대부분을 야구와 함께 살아온 야구선수였다. 실제로 대학교 진학과 동시에 서울 두산베어스의 드래프트 선수로 지명되기도 했다. 일이 잘 풀렸다면, 어쩌면 네오위즈게임즈의 ‘야구의 신’ 속이 아니라 잠실구장에서 최홍진 프로야구 선수를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야구 인생을 포기하게 된 건 프로구단 입단의 꿈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 야구선수로 지낼 당시 어깨를 수술한 것이 원인이 됐다. 투수로선 치명적이었다. 2001년 프로구단의 드래프트 선수로 지명됐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인 2004년, 프로구단으로부터 드래프트 지명 권리 포기를 알리는 우편물이 집으로 발송됐다.

“프로구단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상품에 하자가 생긴 것이죠. 비용을 주고 선수를 구입을 하는 것인데, 당시 그 구단은 저의 효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선수 처지에서는 이를 거부할 방법은 딱히 없죠.”

최홍진 기획자는 그 길로 야구선수의 길을 그만뒀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11살. 그때부터 대학교 졸업반까지 오로지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 온 10여년의 세월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셈이다. 인생이 요동칠법한 일이다.

최홍진 기획자는 “소속감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라며 “친구들도 전부 운동했던 친구들이고, 일반적인 사회 경험도 부족해 뭘 먹고 살아야 할지가 가장 걱정이 됐다”라며 담담하게 추억했다.

그동안 수족처럼 아꼈을 선수 유니폼과 선수 장비를 모두 숙소에 두고 나왔다는 것에서 최홍진 기획자가 얼마나 낙심했었는지 더듬어볼 수 있을 뿐이다. 큰 좌절 앞에 선 이의 결연한 마음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최홍진 기획자는 숙소에 두고 나온 야구 장비를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야구선수의 꿈이 문턱에서 좌절된 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 않다. 최홍진 기획자는 우선 체육교사가 되고자 했다. 헌데, 임용고시는 야구에만 몸과 마음을 바쳤던 이가 뚫기엔 너무 높은 벽과 같았다. 학교에서 기간제 체육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을 더 보냈다. 최홍진 기획자가 네오위즈INS로 적을 옮긴 건 2010년의 일이다.

“‘야구의 신’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야구에 지식이 있거나 경력이 있는 기획자가 필요하게 됐죠. 저를 포함한 2명이 면접을 보게 됐는데, 야구에 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제가 뽑히게 됐습니다.”

‘야구의 신’ 개발을 총괄한 송근욱 네오위즈게임즈 PD가 네오위즈의 전 조직을 뒤졌다는 후문이다. 모션캡처 작업이나 야구의 매끄러운 작전을 도입하는 과정 등 실제 야구를 게임 속으로 옮기기 위해 필수적인 작업을 해 줄 게임 기획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야구선수 출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야구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야구 경기에 관해 잘 모르는 이가 모션캡처 작업을 담당했을 때와 천지차이일 테니 말이다. 최홍진 기획자는 네오위즈INS를 떠나 2011년 8월부터 네오위즈게임즈의 ‘야구의 신’ 개발팀에 합류했다.

‘야구의 신’은 자이로 방식과 광학식 모션캡처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주로 자이로 방식이 많이 쓰였는데, 움직임에 제한이 덜하기 때문이다.

최홍진 기획자가 참여한 모션캡처 작업은 주로 자이로 방식으로 진행됐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장비를 몸에 두르고 카메라 앞에서 야구 동작을 시연하는 일이다. 흔히 사람 몸에 검은색 패치를 붙이는 모션캡처 방법도 있는데 이는 광학식 모션캡처 방식이다.

자이로 방식은 자이로 센서가 사람 관절이 움직인 궤적을 읽은 정보를 블루투스 신호를 통해 컴퓨터로 전송해주는 방식이고, 광학식은 카메라가 직접 사람이 움직인 모습을 포착하는 원리다. 자이로 방식은 블루투스가 정보를 전달해주니 활동 범위에 제약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 속에 이용할 모션캡처는 외주 제작업체를 통하거나 이미 만들어져 있는 엔진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외부 업체와 즉각적으로 대화할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다. 네오위즈게임즈는 이 같은 노력을 줄이기 위해 직접 모션캡처 작업을 진행했다. 장비를 직접 갖고 있으니 필요할 때마다 언제나 추가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모션캡처를 통해 동작을 확보하는 일은 많이 할수록 품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기존 야구게임의 그래픽 엔진과 비교를 하자면, 기존 모션캡처 엔진은 미국이나 서양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미국 야구와 한국 야구는 동작이 많이 달라요. 미국은 체구도 크고 힘도 센 사람들이 하는 야구인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선수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이 많습니다.”

네오위즈게임즈가 직접 장비를 구입하고, 실제 선수로 뛰던 기획자를 모션캡처에 동원해 얻은 이익은 비용뿐만이 아니다. 실제 한국 야구에 가장 가까운 동작을 게임 속에 담았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예를 들어 미국 야구는 일반적으로 동작이 투박하다. 힘이 세고 체구가 커 먼 거리에서도 어깨 한 번 휘둘러 송구를 할 수 있다. 한국은 다르다. 공을 잡고, 한 두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 공을 던진다. 힘도 부족하거니와 공을 효율적으로 1루에 던지기 위해 부가 동작이 곁들여지는 셈이다. 최홍진 기획자처럼 실제 야구 선수가 아녔다면 흉내 내기 어려운 정교함이다. 네오위즈게임즈가 ‘야구의 신’에서 과장되지 않은 한국적인 야구 동작을 입히고자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홍진 기획자는 몸이 기억하고 있는 야구 기술을 이용해 게임을 만들고는 있지만, 아직 야구장에 가는 것은 어렵다고 털어놨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이 프로선수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장 관중석으로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넓게 펼쳐지는 그라운드를 차마 못 보겠더라는 얘기다.

10여년 야구 인생을 떠나보낸 이가 게임 개발업체에 들어와 야구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니. 운명을 가르는 신이 있다면 장난이라도 치는 모양이다. 최홍진 기획자의 ‘야구인생’은 게임 속에서 제2막을 맞았다.

“불과 얼마 전 까지 만해도 운동했다가 실패한 사람이라는 열등감이 제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었어요. 동시에 서너 가지 일을 마구잡이로 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악에 받쳐 지냈는데, 지금은 게임이 새로운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일반 게이머뿐만 아니라 야구를 함께 한 친구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