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人] 박상영 “기본기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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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박상영 티베로 기술개발센터 연구소장은 ‘되고 싶은, 워너비(wanna be)’ 개발자다. 학창시절부터 뚝심 있게 이어 온 개발자의 길, 멋진 아내와 토끼같은 두 딸은 가진 남편, 수십명에 이르는 연구원들을 통솔하는 지휘력 등 개발자들이 닮고 싶은 능력들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데이터베이스(DB) 시장에서 티베로가 오라클 같은 외산 솔루션과 당당하게 경쟁하게끔 만드는 데 톡톡히 기여할 정도로 검증된 개발 능력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박상영 연구소장의 개발자로서의 삶은 겉보기엔 부족한 게 없어 보이다 못해 풍족해보인다. 그야말로 개발자들이 원했던 모든 것들을 다 갖고 있다고 할까. 박상영 연구소장은 “제가 좀 운이 좋은 개발자이지요”라고 겸손을 떨었지만, 그가 운으로만 지금의 자리까지 온 건 아니었다.

# 나는 왜 개발자가 되었나

“제가 90학번입니다. 고등학교에서 PC를 처음 만났습니다. 왜, 남자들은 새로운 기기에 쉽게 빠져들잖아요. 저도 그런쪽이었거든요. 그 때부터였을거예요. 제가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과학기술고등학교, 요새 말로 흔히 과고라고 부르는 곳에 입학할 만큼 박상영 연구소장은 공부를 꽤 잘하는 학생에 속했다. 과고 입학 당시만 해도 그는 수리나 물리학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처음 마주한 PC에 마음을, 아니 영혼을 빼앗겼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이 새도록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코딩을 했다.

“다른 개발자들도 다 저와 비슷할거예요. 저와 개발이 ‘맞는다’라는 걸 알았죠. 어찌나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었는데요. 이게 딱 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죽하면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밤을 새우면서 영어를 배웠을 정도다. 요즘에야 번역된 책도 많이 나왔지만, 그 당시 컴퓨터 프로그래밍 책은 대부분 원서였다. 영어 공부가 즐거웠던 건 아니지만, 프로그래밍을 위해 박상영 연구소장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고 제가 영어를 잘 할거라고 생각하시면 오해입니다. 전산 영어는 쉬워서 조금만 공부하면 눈에 익습니다. 아마, 요즘 친구들이 말하는 토익을 지금 제가 보면… 하하. 점수는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렵니다.”

# 멘붕, 연예, 그리고 티베로와의 만남

박상영 연구소장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집중적으로 DB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재미와 호기심. 개발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과 비슷한 이유다.

“알고리즘, 컴파일러, DB에 흥미를 많이 느꼈는데, 그 중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뜬 구름 잡는 듯한 분위기만 연출하는 DB에 더 욕심이 생겼습니다. 저희 학교에선 석사과정을 밟으려면 교수님이 저를 선택하고, 저도 교수님을 선택해야 했는데요, 읍소 전략으로 교수님께 메달려 DB로 석사 학위를 딸 수 있었습니다.”

위기가 찾아왔다. 석사논문을 진행하는 데 앞이 막막해졌다. 같이 석사과정을 밟는 동료들과 선배들은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는데, 자신은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IMF 한파가 터진 직후 좁아진 취업문에, 공대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불고 있던 벤처 붐도 한몫했다. 마음 한구석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조급함과 불안감은 끝내 박상영 연구소장을 집어삼켰다. 2000년, 박상영 연구소장은 학교를 그만뒀다.

“개발자들에게 한 번씩 찾아온다는 그 위기를 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제 부족한 정신력도 한몫했나 봅니다. 석사는 우여곡절 끝에 넘겼는데, 박사과정의 고비는 넘지 못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게 마냥 안좋은 일로만 작용했던 건 아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신나게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공대생의 학사·석사는 시쳇말로 ‘월화수목금금금’의 연속이다. 어찌나 바쁘고 정신없는지, ‘입학하기 전 여자친구를 만들지 못한 개발자는 평생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을 것’이란 저주같은 얘기도 돌 정도다. 잠시 휴식시간, 박상영 연구소장은 ‘017 무제한 커플 요금제’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재도약을 준비했다.

“아내 덕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제 아내는 항상 절 크게 봐줍니다. ‘우리 남편은 훌륭해요’라는 식인데, 계속 듣고 있자면 제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박상영 연구소장은 2001년 티베로(당시 티맥스소프트)에 입사했다. 당시 티베로는 DB 분야와는 상관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학교 선배는 ‘2002년부터 DB를 만들 거야’라며 손을 내밀었다. DB분야로선 처음, 개발자로선 두 번째 직장이었다.

“제가 DB를 전공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DB를 하겠다는 국내 회사가 없었습니다. 박사과정 그만두고 시스템통합(SI)과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영 안맞더라고요. 믿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선배가 내민 손을 잡았지요.”

선배와 티베로는 약속을 지켰다. 2002년 1월1일 DB팀이 꾸려졌다. 총 4명의 개발자들이 티베로를 개발했다. 야근의 연속이었다. 주말, 공휴일 개념이 없을 정도로 박상영 연구소장은 일에 몰두했다.

“그 때만 해도 티베로의 DB 사업은 스타트업, 벤처였습니다. 어떻게든 당시 국내 시장에서 엄청난 세력을 과시하는 외산 솔루션을 이겨보려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했습니다. 매일 회사에 안나오면 불안했을 정도였습니다.”

티베로1.0과 2.0이 잇따라 나왔다. 회사 내 박상영 연구소장의 입지도 높아졌다. 개발자인 동시에 후배 개발자들도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 영역까지 올라섰다. 다행히 티베로는 관리자에게 개발자로서의 개발 능력 관리를 더 중요시하는 덕분에, 결재와 프로젝트 진행 등 개발 외의 일로 답답함을 느끼진 않았다. 박상영 연구소장에게 관리자로서 힘든 일은 단 하나다. 회사 경영사정 악화로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일이다.

“그 사람들 모두 회사가 싫어서 나간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회사 임금이 꽤 오래 밀려 있었던 상태였지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간 이들이었습니다. 안타깝더라고요. 관리자로서 그들에게 더 버틸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게 후회로 남습니다.”

# 10년차 개발자가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

박상영 연구소장은 10년 동안 개발의 단맛도, 쓴맛도 고루 경험했다. 티베로를 개발하면서 개발의 보람도 느꼈고, 동료들을 떠나보내면서 관리자로서 어떻게 조직원을 관리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세밑이다. 후배 개발자들이 티베로에서 일하기 위해 입사지원서를 부지런히 내고 있다. 박상영 연구소장이 후배 개발자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단 하나, ‘기본기를 충실히 닦을 것’이다.

“개발을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지요. 가령 전공 공부를 소홀히 하고 코딩만 열심히 하면 되지 않나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만, 코딩만 열심히 해서는 개발자가 되기 힘듭니다.”

박상영 연구소장 설명에 따르면 코딩은 하나의 기술이다. 데이터 스트럭처 알고리즘이나 컴파일러 이론, OS 같은 학창 시절 배우는 이론 없이는 코딩이 나올 수 없다. 덧셈, 뺄셈 모르고 곱하기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학부 시절에 배우는 이론은 겉보기엔 재미없어 보여도 향후 코딩을 좀 더 잘할 수 있게 선배 개발자들이 먼저 경험한 일을 정리해둔 사례집이다.

“제가 직접 느낀 경험이니, 후배 개발자들이 새겨주길 바라요. 이런 기본기를 모르면 애플리케이션을 짰을 때 한정된 기술만 구현하게 되거든요. 군대 다녀오고 학부 성적 신경써도 늦지 않으니, 이론은 꼭 충실히 배웠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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