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할인한다고 갑자기 책 읽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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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 화양동에 있는 ‘인서점’의 심범섭 대표와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최근 신간 할인율을 제한하는 도서정가제를 구간으로 확대하려는 ‘출판및인쇄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최재천 의원은 기존 도서정가제가 유명무실하다며 신간 출간 종수와 출판사 매출이 줄고, 소형 서점과 유통사, 온라인 서점이 폐업하거나 경영이 악화됐다고 개정안을 낸 이유를 밝혔다. 도서정가제가 강화되면 중소서점에 도움이 될지 의견을 듣고자 직접 서점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네. 1만4천원입니다. 낯이 익네요. 혹시 성함이…? 아! 예전에 우리 가게에 책 포인트 적립하던 양반이구먼.

요즘은 졸업생 아니면 책을 안 사요. 정말이냐고? 언제였더라. 05학번 이후로는 재학생이 책 사러 오는 일은 줄었지.

왜이겠어? 사람들이 책과 멀어진 거야. 내가 보기엔 그래요. 80% 대중은 인터넷의 바다로 가고 20%는 아날로그로 가요. 교수나 강사, 글 쓰는 사람만 종이책을 읽고 나머지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 거지.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싸게 팔면 읽지 않겠느냐고? 인문학 책은 할인해 팔 수가 없어요. 예전엔 초판으로 3천부를 찍었지. 그러다 1500부로 줄었고. 요즘은 700부를 인쇄해요. 최소 물량이 3천부였는데 이렇게 줄었어.

700부 찍어서 팔 수가 있느냐고요? 글쎄… 이런 책은 도서관에 납품하고, 시중에선 살 수 없어. 진열할 수가 없지. 아는 사람이 연락해 사는 수준이지. 90년대만 해도 인문학책 3천부가 팔렸지만, 지금은 500부 나가는 게 다예요. 할인이고 말고 할 게 없어요. 정가 2배 받아도 안 될 일이지.

사회과학 도서 전문 인서점

▲인서점

값을 올리면 될 거란 말은 말아요. 우리 서점 얘길 해 줄게. 나는 1982년에 인서점 열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차례 잡혀갔어요. 간첩 누명도 받고, 책도 많이 뺏겼죠. 그땐 사회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책을 읽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지. 그 뒤로 사회과학 서점이 142개 더 생겼고.

책 판다고 잡혀간 게 어디 나 뿐일까.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사서 읽는 사람도 잡혀갔어요. 그때 출판사들은 돈 벌 생각에 경찰에 쫓기며 책을 냈을까요? 학생들은 또 어떻고. 인문학은 그래요. 사회의 아픈 데를 지적하면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안 좋아하지. 인문학은 그 사회의 질환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학문이라오.

그래, 책값이 싸다고, 비싸다고, 할인한다고, 할인 안한다고 사람들이 산 게 아니지. 책 사러 와선 돈 없다고 하면 거저 가져가라고도 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망해갔어요. 1995년엔 학생 3800명이 모금해서 살려냈고, 2005년엔 1억3800만원을 모금해 지금 자리로 왔지.

지금도 월세 100만원씩 적자예요. 우리 가족이 벌어서 이 서점에 몽땅 넣고 있는 거지. 그런데도 어떤 손님은 책값이 비싸다며 깎아달라고 해요. 난 5배를 받아도 운영하기 빠듯한데. 그 손님? 도리 있나. 깎아줬어요, 허허.

도서정가제? 반대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손님. 인문학은 그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렇게 생각해요, 난. 143개 사회과학서점이 이젠 3개로 줄었는데 팔 책은 없어요. 책값을 할인한다고 해서 안 읽을 사람들이 갑자기 책을 읽을까요? 아니라고 봐요. 괜한… 얘기지.

허, 관계가 없대도 자꾸 도서정가제를 묻네. 굶어서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밥 한 사발 주면 도움은 되겠지. 이틀은 살 수 있지 않을까. 한 숟가락 준다면 5분은 살려나.

■ 인서점은

서울 화양동 건국대학교 후문에 1982년 문을 열었다. 옛 자리에 신축건물이 들어서면서 지금 자리(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195-17)로 옮겼다. 국내 최초 사회과학서점으로 알려진 이 서점은 2012년 11월 30주년을 맞이했다. 현재 국내에 사회과학서점은 인서점 외에 서울대학교 ‘그날이오면’과 성균관대학교 ‘풀무질’까지 3곳이 남았다.

■ 도서정가제란

도서 할인을 제한하는 제도다. ‘출판및인쇄진흥법’이 2002년 제정되고 2003년 발효되며 시행됐다. 출간된 지 18개월 미만인 도서는 할인율이 정가의 10%로 제한된다. 할인은 책에 표시된 정가를 기준으로 하며, 판매를 목적으로 발행된 책은 정가가 표시돼야 하여 도서정가제라고 불렸다. 할인 제한을 받는 신간도 서점 마일리지와 결합하면 최대 19%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출간 18개월이 지난 구간과 실용도서, 초등학습도서, 국가기관에서 구입하는 도서는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최재천 의원은 구간의 할인을 허용한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출판및인쇄진흥법 개정안을 2012년 11월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