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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태블릿 뛰어든 HP, 아쉽네

2013.02.25

HP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3’에서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내놓았다. 멕 휘트먼 HP CEO가 지난해 안드로이드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즈음부터 바로 개발에 들어갔는지 발표가 아주 빨랐다.

이름은 ‘슬레이트7’이다. 이름처럼 7인치 디스플레이 태블릿이다. HP가 밝힌 구성은 ARM의 코어텍스 A9 기반의 1.6GHz 듀얼코어 프로세서에 1024×600 해상도 터치스크린, 1GB 메모리와 8GB의 저장공간을 갖고 있다. 외장 메모리 확장도 된다. 무선랜과 블루투스2.1, 300만화소 카메라에 스테레오 스피커도 갖췄다.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4.1 젤리빈을 얹었다.

hp_slate7

숫자만으로는 HP가 만들었다는 태블릿 치고 좀 초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 제품의 포인트는 싼 가격이다. 169.99달러에 판매한다. 제품 개발의 첫번째 가치가 값에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질이나 디자인이 값싸 보이진 않는다. 고급스러운 제품을 싸게 내놓겠다는 요즘 HP의 전략에도 맞는다.

외신들이 전하는 리뷰 영상을 살펴보면 일명 스톡 안드로이드로 불리는 순정 안드로이드를 얹었다. 삼성전자가 터치위즈, HTC가 센스UI로 안드로이드 안에서 제품 차별화를 하는 것과 조금 다른 전략이다. 인터페이스 화면은 기능적인 부분보다는 하나의 런처일 뿐이라 하더라도,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시선을 끌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HP는 원래 안드로이드에서 거의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넥서스 수준으로 새 운영체제를 빠르게 업데이트하는 데에 유리하다는 계산을 한 모양이다.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 업데이트에 몇 달씩 걸리는 이유에 새로 바뀌는 운영체제에 맞춰 UI와 여러 가지 기능들도 따라서 새로 개발해야 하는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69달러란 가격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일단은 에이서와 비슷한 가격 전략을 가져가는 것으로 보인다. 넥서스에 대항하려면 일단 싼 값에 내야 한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 태블릿, 특히 7인치 제품 영역에선 ‘넥서스7’이라는 큰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가격과 성능 모든 면에서 ‘황금비율’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게 넥서스7이다.

당장 슬레이트7과 넥서스7을 사양만으로 비교해보자. 넥서스7은 1280×720 해상도, 쿼드코어 프로세서, 2GB 메모리, 16GB 저장공간을 갖고 있다. 반면 슬레이트7은 1024×600 해상도에 듀얼코어 프로세서, 1GB 시스템 메모리와 8GB 저장공간이다. HP는 저장공간 확장 슬롯과 비츠오디오, 디자인 등의 요소로 차별화하고 있지만 숫자에 예민한 안드로이드 태블릿 시장에서 30달러와 바꾸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다.

HP는 왜 넥서스7보다 더 고급 제품을 만들지 않았을까. 태블릿 시장을 움직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가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HP는 십수년 전부터 PDA와 스마트폰 시장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윈도우 모바일 운영체제를 쓴 ‘아이팩’ 시리즈로 PDA 시장의 주도 업체 자리에 올랐던 적도 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이 본격적으로 시장을 쓸어담기 시작할 무렵 HP는 팜을 인수했다. 시기나 전략 자체는 아주 좋았지만 제품을 매력적으로 만들지 못했다. 아이패드가 태블릿 시장을 휩쓸자 태블릿용 운영체제가 없던 안드로이드 진영은 골치가 아팠다. 이때 HP는 재빨리 ‘터치패드’라는 이름의 태블릿을 내놓았다. 하지만 값이 비쌌다. 아이패드와 같은 값이라면 시장의 선택은 뻔했다. 여러 이유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HP는 태블릿과 스마트폰에 대한 꿈을 접는다. 태블릿도 99달러까지 내려 과감하게 재고처리를 했다.

여기에서 반전이 생긴다. 그동안 냉랭하던 시장이 갑자기 돌아섰다. 가격에 반응한 것이다. 값이 싸니 제품의 장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웹OS는 반응성과 인터페이스면에서 팜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었던 운영체제다. 시장은 터치패드를 더 내놓으라고 난리였다. 하지만 HP는 숨고르기에 나섰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태블릿, 아이패드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싸게 만들어야 잘 팔린다’는 결론을 남겨 두었다.

하지만 1년이 넘는 공백 끝에 안드로이드를 갖고 돌아온 HP가 꺼내놓은 저가 전략은 좀 의외다. 물론 이후에 10인치대 제품으로 고급 제품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는 또 엄청난 해상도를 갖고 있는 넥서스10이 있다. 7인치도 상황은 좋지 않다. 넥서스7이나 킨들파이어HD에 비해 값은 15% 정도 싼 셈이다. 1천달러 제품에서 15% 싸다면 150달러 정도로 꽤 큰 돈이다. 하지만 199달러에 비해 15% 싼 169달러, 딱 30달러 차이라면 가격 경쟁력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어차피 169.99달러까지 지갑을 열었다면 199달러까지 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웹OS였다면 혹시 모를까.

이 태블릿이 미국이나 일본, 한국시장에서 아이패드나 넥서스, 갤럭시에 맞서 잘 싸울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가격 중심의 저가 태블릿을 원하는 시장이라면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지역이 있겠다. 특히 중국을 겨냥했을 가능성이 높다. 169.99달러를 중국 위안화로 바꾸면 1천위안 남짓한 돈이다. 중국 시장에 999위안에 판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HP는 최근 중국 시장에 목말라하고 있다. 레노버와 세계 시장 1위를 엎치락뒤치락하는 데에는 중국 시장에서 레노버에 비해 부진한 것에 이유가 있다. 태블릿부터 중국 시장을 겨냥하겠다는 의지로 비춰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태블릿이 등장한 이상 스마트폰도 곧이어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HP가 부활의 신호로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잡은 것은 좋은 결정이지만 남들이 없는 운영체제를 갖고 있는 입장에서 이미 꽉 차 있는 안드로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시기나 제품 전략으로나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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