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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폭력 부른다?…찬반논쟁 팽팽

2013.02.27

미국은 지금 게임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물 위로 나왔고, 반대로 게임 때문에 이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는 시각도 지지를 얻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게임의 폭력성이 실제 청소년의 폭력적 성향으로 이어지는지 연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게임의 폭력적인 표현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세계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갖도록 부추긴다는 주장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는 아니다. 미국에서 최근 이 같은 주장에 불이 붙은 이유는 지난 2012년 12월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때문이다.

지난 총기사고는 미국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벌어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20명에 이르는 초등학생이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그때 사고로 숨진 사람만 27명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역사는 이 사건을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은 지금 게임의 폭력성과 청소년의 강력범죄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국내에 이른바 ‘셧다운제’가 도입되기 직전인 지난 2011년, 셧다운제가 과연 청소년의 수면권과 학습권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인가를 갖고 설왕설래하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물론, 게임 규제에 관해 심사숙고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규제하는 쪽으로 빠르게 결론을 내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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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게임=현실의 폭력성

“가상현실의 폭력적인 게임이 현실세계의 폭력을 부른다.”

절반이 넘는 미국 성인남녀가 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업체 해리스폴이 미국 성인 22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8%가 게임 속 폭력적인 표현이 청소년의 폭력적 성향으로 이어진다고 답변했다. 미국에서 게임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곤두박질쳤는지 알 수 있는 자료다.

마이크 드 비어 해리스폴 대표는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시장의 혼란과 더불어 비디오게임 등급제에 관한 지각이 얼마나 결여돼 있는지 알 수 있는 결과”라며 “미국 정치권에서 폭력적인 게임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 총기협회(NRA)의 주장도 게임이 살인을 불렀다는 시각에 기름을 붓는다.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고가 터진 직후 NRA는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웨인 라피에르 NRA 부회장은 성명을 통해 “총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라며 “비디오게임과 미디어, 오바마 대통령의 예산안이 사람을 죽인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NRA는 총기 난사 사건에서 직접적인 이권이 걸린 단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총기 사고 여파로 총기규제가 거론되면 NRA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죽인 것이라는 주장도 듣는 이들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웨인 라파예트 부회장은 구체적으로 게임의 이름을 나열하기도 했다. ‘그랜드데프트오토(GTA)’나 ‘모탈컴뱃’ 등이 대표적인 폭력 게임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어디 미국뿐이랴. 게임을 둘러싼 이 같은 인식은 태평양을 가른다. 지난 2012년 1분기 국내에서 실시된 설문조사 자료를 참고하면 좋다. 이 시기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일명 ‘게임 쿨링오프제’를 거론한 때다. 학교폭력문제가 자살로 이어지는 사건이 발생한 시기이기도 해서 게임의 폭력성과 학교폭력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시도가 많이 일어났다. 국내 온라인 설문조사업체 두잇서베이의 자료도 이 같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나왔다. 두잇서베이가 내놓은 ‘게임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 자료를 보면, 국내 성인남녀도 미국과 비슷한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문에 응한 총 2863명 중 20.4%가 게임과 학교폭력이 ‘매우 밀접한 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60.7%도 응답자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국내 성인남녀 10명 중 8은 청소년 학교폭력문제의 가장 큰 혐의를 게임에 씌우고 있는 꼴이다. 설문에 응한 사람 중 17.7%도 게임이 가진 폭력적인 콘텐츠를 게임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꼽았다.

“강력범죄와 게임은 무관”

이와 반대로 현실세계의 강력범죄와 게임 속 폭력적인 콘텐츠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많다. 한 사회에서 어떤 주제에 관해 의견이 갈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게임 속 폭력적인 표현이 현실의 폭력성을 부추기는가에 관한 논의도 이 같은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존 리치티엘로 일렉트로닉아츠(EA) 대표는 지난 1월 열린 컨퍼런스콜에 참석해 “코넷티컷과 콜로라도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고에 게임업계도 놀랐다”라며 “하지만 총기 난사 사고는 게임 때문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존 리치티엘로 대표는 미국 이외 다른 나라를 예로 들었다. 덴마크나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등지에서도 미국과 똑같은 폭력적인 게임이 출시되고 있지만, 미국처럼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NRA가 게임 업계에 불편한 주장을 펼치자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임업체 대표가 게임과 현실세계의 폭력성 사이에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이번엔 다른 이의 주장을 들어보자.

미연방수사국(FBI)에서 범죄심리분석가로 활동했던 메리 엘렌 오툴은 CBS 뉴스의 대담 프로그램 ‘페이스더네이션’에 참석해 “비디오게임이 폭력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으로 얻은 것”이라며 “수많은 변수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메리 엘렌 오툴 전 FBI 범죄심리분석가 설명을 따르면, FBI는 범죄심리학적 측면에서 폭력범죄의 원인을 수사했을 때 게임이 폭력적인 범죄의 원인이라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미국 법학계에서도 게임의 폭력성과 폭력범죄를 연관짓는 것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 2011년 여름, 청소년에게 폭력적인 게임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캘리포니아주 주법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미국 대법원은 폭력적인 게임이 현실세계의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독특한 지시를 내린 것이 눈길을 끌었다. 총기 난사사건의 책임이 게임산업계로 몰아가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의식해 게임의 폭력성이 현실세계의 폭력적인 성향과 관련이 있는지 연구를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는 폭력적인 게임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할 것”이라며 “무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유행하는 폭력적인 사건의 과학적 근거에 관해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게임에 관한 연구를 지시하긴 했지만, 이는 상관관계가 있느냐에 관한 물음일 뿐이다. 게임이 폭력적인 성향을 부추긴다는 주장에 관해 조심스럽고 보수적으로 접근한 태도다.

연구는 미국 질병통제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CDC)와 연구 단체가 맡는다. 연구를 위해 CDC와 연구단체에 총 1천만달러, 우리돈으로 105억원 상당의 예산이 지원될 예정이다.

sidewa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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