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스앤노블서 보낸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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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출장차 갔다 1주일간 머물렀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친 마지막 밤, 숙소 근처 큼직한 쇼핑몰을 가기로 했습니다. 옷, 초콜릿, 화장품, 목욕 용품, 주방용품, 잡화 등 100여개 상점이 있는 게이트웨이몰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반스앤노블이라는 서점에 먼저 들렀습니다. 서점을 나올 무렵 이미 주위 상점은 다 문을 닫았습니다. 좀체 오기 어려운 외국인데 쇼핑은커녕 서점에 콕 박혔다 나온 셈입니다.

솔트레이크시티 게이트웨이몰 반스앤노블

주위 상점을 두고 반스앤노블을 먼저 찾은 건 와이파이 때문입니다. 외국에 가면 한국의 인터넷 접속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 깨닫게 되는데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 보내는데도 속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국처럼 곳곳에서 와이파이가 터지지도 않고, 3G 접속도 원활하지 않아서입니다. 반스앤노블은 문 여는 시간 대신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붙여 뒀습니다.

솔트레이크시티 반스앤노블 와이파이 시간

그렇게 반스앤노블의 문을 열었습니다.

반스앤노블에 들어서니 누크 진열대가 눈에 띕니다. 누크는 반스앤노블의 전자책 서비스 이름이자 전자책 전용 단말기, 태블릿PC 이름입니다. 누크는 압도적으로 미국 전자책 시장 1위를 차지하는 킨들보다 뒤처지지만, 2위 제품입니다. 최근에 깜깜한 밤에도 읽을 수 있는 전자책 전용 단말기 ‘누크 심플 터치’를 내놨지요.

누크 심플 터치는 낮이나 불빛 아래에서만 읽을 수 있는 e잉크 단말기의 단점을 보완했습니다. 화면에 빛을 쏘아 어두운 가운데서도 전자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효과를 보이고자 반스앤노블은 누크 심플 터치 전시대는 어둡게 해뒀습니다. 막상 누크 심플 터치를 써보니 내장 조명이 조금 조악했습니다. 교보문고가 퀄컴과 만든 ‘교보e북’이 생각났습니다.

누크 심플 터치 진열

바로 옆에 내장 조명이 없는 누크도 있습니다. 한국이퍼브의 ‘크레마’가 이 전자책 단말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안드로이드를 변경했다는 평을 들은 바 있지요. 아쉽게도 크레마를 들고 오지 않아 비교할 순 없었습니다. 누크를 잠깐 살피니 크레마나 교보문고 ‘샘’보다 글자가 또렷한 듯합니다.

서점 입구에 있는 누크 진열대 바로 뒤, 책장 하나를 차지한 ‘더미에게 물어봐’ 시리즈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시리즈는 1991년 ‘얼간이를 위한 DOS’라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책에서 시작했습니다. 기술을 쉽게 알려주자는 콘셉트였는데요. 국내에는 아이폰, 아이패드, 프레지, 페이스북,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비즈니스 등 IT 분야 책이 출간됐습니다.

더미에게 물어봐

‘더미에게 물어봐’는 DOS 소개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다루는 내용을 넓혔습니다. 경영, 경력, 컴퓨터, 소프트웨어, 취미, 역사 등 각종 분야와 지식을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반스앤노블은 더미에게 물어봐 시리즈 중 경영과 IT 분야를 한데 몰아놓고, 갖가지 분야의 책 속에도 꽂았습니다. 종교 코너에 ‘더미에게 물어봐’의 불교와 몰몬교 책이 있고, 우리말 교재가 있는지 궁금해 외국어 코너에 가니 일본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책이 있었습니다. ‘더미에게 물어봐’는 역사 코너에도 있었습니다. 여행 사진 찍기, 미국 대학원 입학 능력시험인 GRE, 미국 경영대학원 입학시험인 GMAT, 수학, 철학, 과학, 정치 코너도 ‘더미에게 물어봐’ 책이 꽂혔습니다.

더미에게 물어봐 GRE, GMAT

인터넷에서 온갖 정보를 찾을 수 있대도 잘 정리한 책 한 권이 아쉬울 때가 있지요. 서점 곳곳에서 ‘더미에게 물어봐’ 책이 눈에 띄었는데 이런 생각을 저만 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반스앤노블이 10대를 위한 코너를 마련한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대체로 소설이었는데요. 긴 책장 하나를 10대 소설이 채웠습니다. 아이들에게 권장 도서를 권해도 모자랄 텐데 대체로 가벼운 로맨스 소설 위주였습니다. 아예 10대를 위한 신간만 따로 모아 둔 것도 발견했습니다. 그날 혹은 그달 들어온 신간 중 10대를 독자로 한 책을 따로 빼어 놓은 거지요.

반스앤노블 십대 코너

반스앤노블 십대 코너

매장 진열 방식이 신기했지만, 반스앤노블도 국내 서점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바로 문구 코너입니다. 절반 수준은 아니지만, 계산대 쪽에 수첩과 카드, 편지지, 메모지, 문구류를 진열했습니다. 그중 몰스킨이 눈에 띄었습니다. 몰스킨은 이탈리아에서 제작하는 수첩 브랜드인데 헤밍웨이가 즐겨 썼다고 알려졌지요.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인데요. 2012년 에버노트와 협력해 스마트 노트란 걸 제작한 기억이 떠올라 진열장을 살폈습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클라우드 서비스가 퍼지며 수첩 쓰는 사람이 줄 것 같은데요. 몰스킨은 다양한 수첩을 내놨습니다. 일반적인 노트가 있었지만, 여행 기록, 와인 기록, 요리법 기록, 웰빙 생활 기록 등 기록 분야를 세분화해 만들었습니다. 기록하며 정리도 같이 하고 싶은 욕구를 파고든 것 같습니다.

반스앤노블 몰스킨

반스앤노블 몰스킨

반스앤노블 몰스킨

스마트폰을 쓰면서 메모지를 점점 멀리하는데요. 메모도 종류별로 하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사랑한다는 말, 어처구니없는 상황, 간단 조리법, 기운을 북돋는 말, 내가 어떤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책에서 읽은 글귀 등을 적는 메모지가 있었습니다. 신선해 보였는데요.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 중 메시지 앱이 있고, 연인끼리 쓰는 앱이 있고, 위치나 내가 가본 장소 지도, 위치와 기록하는 앱도 있는 것을 떠올리니 ‘이런 게 나올 만도’ 싶기도 합니다.

용도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진 메모지

용도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진 책갈피용 메모지

▲카드 받을 사람과 용도를 정해주는 것처럼 SNS, 웹서비스, 모바일 응용프로그램도 ‘이것도 된다’가 아니라 ‘이럴 때 쓰라’라고 용도를 설명해주면 어떨까요.

2시간 가까이 반스앤노블을 둘러보고 나니 손에 책 한 권, 도장 하나, 메모지 하나가 들렸습니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결제했는데요. 영수증 2장을 받았습니다.

책을 추천하는 메모지

▲우리나라도 영수증이 광고 플랫폼으로 쓰이고 있지요. 반스앤노블은 또다른 책을 추천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결제 금액이 쓰인 거고 다른 하나는 제가 산 책과 비슷한 책 2권을 추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스티븐 레비가 쓴 ‘해커스’란 책을 샀는데요. 한국에도 출간됐는데 지금은 절판이라 구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반스앤노블은 스티븐 레비가 쓴 다른 책과 해커스와 비슷한 책을 한 권씩 골라 주었습니다. 잘 모르던 책인데 제가 산 책과 비슷하다니 문득 관심이 갑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책 봉투에 누크가 그려진 걸 발견했습니다. 한쪽은 밤에도 읽을 수 있는 누크 심플 터치, 다른 쪽엔 누크 태블릿이 그려졌습니다. 전자책을 모르던 고객도 누크란 이름은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반스앤노블 누크 홍보하는 책 봉투

반스앤노블 누크

▲누크 태블릿PC의 용도를 설명하는 포스터. 애니메이션과 패션잡지도 볼 수 있군요.

2시간 가까이 반스앤노블을 둘러보며, 어느 틈에 들어온 이유는 잊었습니다. 한국에서 봤으면 스쳐지났을 풍경이 외국 서점이기에 더 재미있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아이패드나 아이패드 미니를 보는 모습이 바로 뒷자리에선 손전등을 켜고 읽는 모습과 대비돼 더 눈길이 간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패드와 아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