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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Z10, 환호하거나 심드렁하거나

2013.03.27

기대는 많이 했지만 ‘블랙베리Z10’이 잘 될지, 잘 안 될지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한동안 블랙베리를 썼고 이 회사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도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블랙베리10 운영체제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 이게 블랙베리의 변화일까, 다른 스마트폰을 뒤따르는 것일까. 그간 블랙베리가 놓치고 있던 ‘재미’라는 요소 딱 그것만 잡을지, 더 큰 그림을 그릴지도 모르겠다.

제품을 만나봤다. 블랙베리Z10이, 더 나아가 블랙베리10 OS가 안드로이드처럼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잘 될 것 같은 이유, 잘 안 될 것 같은 이유들을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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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메뉴화면에서 왼쪽으로 끌면 나오는 블랙베리 허브에는 모든 알림 메시지와 내가 이용하는 e메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모두 녹아 있다. e메일은 블랙베리에 앱이 아니라 운영체제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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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10이 성공할 것 같은 이유는 단순하다. OS 자체가 가볍고 잘 만들었다. 처음 손에 쥐자마다 척척 쓸 수 있는 인터페이스는 아니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는 명확하다. 메시징 기능은 더 강화됐고 소셜과 통합에는 그 어떤 스마트폰보다 적극적이다. 자, 블랙베리는 이제 ‘꼰대’ 이미지만 벗으면 될까.

새로운 이미지

블랙베리가 답답한 업무용 스마트폰 이미지를 벗었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사장이면 직원들에게 블랙베리를 쓰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e메일은 그 어떤 스마트폰보다 빠르고 정확히 도착한다. 하지만 게임은 없다시피하고 동영상 재생도 쉽지 않다. 메시징, 그러니까 업무와 관련된 것 외에 그 어떤 콘텐츠도, 배려도 없던 게 블랙베리였는데 게임도 깔리고 동영상 재생도 된다. 음악 재생 화면의 인터페이스도 더 쉬워졌다.

블랙베리가 기본으로 갖고 있던 보안 든든한 업무용, 메시징용 스마트폰의 이미지 그대로 재미까지 더했으니 사실상 시장이 원하는 요구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지루하다’는 이미지를 벗어던져야 한다. 용도가 게임인지 업무인지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소비자들이 정할 수 있어야 블랙베리가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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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인터페이스

인터페이스가 좋다. QNX의 운영체제를 손봐 기존 블랙베리 스마트폰과 접근방식 자체가 다르다. 특히 홈 버튼 없이 슬라이드로 멀티태스킹이나 앱 종료가 이뤄지는 접근 방식은 신선하다. 처음에는 조금 어렵지만 이내 익숙해질 수 있고 합리적이다. 계속 쓰면서 왜 이쪽 방향으로 쓸어서 움직이는지 깨닫게 되니 편하기까지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월트 모스버그가 “UI가 논리적”이라고 말한 게 어떤 것인지 와 닿는다.

그런데 과연 이게 일반인들에게 먹힐까. 홈 버튼이 없어도 된다고 소비자들이 받아들여준다면 훌륭하겠지만, 그 단계까지 가는 게 쉽진 않다. 안드로이드도 하드웨어 버튼을 없애고 싶어하지만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쉽게 버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고민일 것이다. ‘블랙베리니까…’라는 말을 듣고자 했다면 1년쯤 빨리 나왔어야 했다.

e메일과 연락처 통합

블랙베리 Z10과 조금 가까워지니 가장 감탄하게 되는 것이 연락처와 e메일, 소셜이다. 모든 스마트폰이 이를 통합하고 싶어하지만 블랙베리10의 그것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우선 e메일 앱이 따로 없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는데, 블랙베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만큼 앱이 아니라 런처 맨 왼쪽의 ‘허브’에 들어가 있다. 왼쪽으로 밀면 언제든 e메일과 일정 정보를 바로 보여준다.

연락처는 트위터, 페이스북, 링크드인 등 소셜 네트워크와 합쳐지며 그 사람의 모든 정보를 모아준다. 최근 소셜 네트워크 활동 정보와 그 사람이 다니는 회사에 대한 뉴스까지 끌어온다. 물론 한국 뉴스는 안 보여주지만 블랙베리가 제대로 운용되는 국가에서는 좋겠다. 특히 블랙베리를 업무용으로 많이 쓴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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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10의 키보드는 키 입력을 예측해서 빠르고 정확하게 입력해준다. 거의 확신할 수 있는 단어는 스페이스바에 심어 한번 누르면 입력되면서 공백이 생긴다. 한글 표시는 잘 되지만 입력은 안된다.

키보드, 살아 있네~

블랙베리10을 산다면 풀터치스크린의 Z10보다 키패드가 달린 Q10을 구입하겠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런데 풀터치스크린에서도 막상 써보면 키보드 기술에 감탄한다. 오타가 잘 나지 않고 키를 하나씩 입력하는 동안 키보드 사이의 공간에 어떤 글자를 입력하려는지 미리 찍어준다. 시야를 해치지도 않고 키보드에 익숙하지 않아도 빠르고 정확하게 입력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글 입력기가 없고 나중에 추가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영문 입력에 대해서는 물리 키보드 못지 않게 빠르고 스크린 키보드 중 최고다.

글쎄요

하지만 출시가 늦어진 만큼 기대가 크면서 아쉬운 점들도 여럿 눈에 띈다. 물론 가장 큰 불만은 한국 시장에 제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철수인지, 기다리는 중인지도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 일본의 철수 발표와 한글 키보드가 빠진 것으로 미루어 판단하기에는 미련이 많이 남는다. 앱도 양적인 성장보다 ‘난 이것 때문에라도 블랙베리를 써야겠어’라고 할 만한 한 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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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팔 물건인가

시장 전략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이전 세대인 ‘블랙베리 볼드’보다 안 팔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블랙베리10이 아무리 잘 만든 스마트폰이라고 해도 블랙베리는 영업 전략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니, 시장 자체가 꼬여버렸다. 블랙베리Z10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잡았는데 이미 프리미엄 시장에는 아이폰과 고성능 안드로이드폰이 포진돼 있다. 이 제품들과 치열하게 싸워야겠지만 그나마도 한국과 일본 시장은 빠졌다.

새 블랙베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장은 동남아시아 시장이지만, 이 시장이 소화하기에 블랙베리Z10은 너무 비싸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이전 제품인 블랙베리 볼드가 더 많이 팔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과 일본은 애초에 개발은 생각한 것 같다. 국가 설정을 한글로 바꾸면 날짜 등도 우리말로 나오고 웹페이지나 메시지, 페이스북 내용도 한글로 잘 뜬다. 그러니까 입력 빼고 다 된다. 컴퓨터와 연결하는 블랙베리 링크도 메뉴까지 깨끗하게 한글화돼 있다. 키보드는 왜 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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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시대, 블랙베리 인터넷 서비스 열면 안되나

원래 블랙베리는 BIS(블랙베리 인터넷 서비스)라는 별도의 서비스에 가입해야 제대로 쓸 수 있다. BIS는 블랙베리 메신저와 보안 e메일 푸시, 그리고 인터넷 압축 등을 담고 있는 서비스다. 무선 인터넷 연결 상태와 속도가 좋지 않은 환경에서 블랙베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강력한 무기다. 대신 한 달에 5천원씩내야 한다. 국내 뿐 아니라 현재 상당수 국가들은 3G가 대중화돼 있고 블랙베리 Z10이 주력으로 할 국가들은 LTE까지 깔린다. 블랙베리 메신저(BBM)를 제외한 나머지 서비스들은 일반 네트워크로도 충분하다.

BBM 없는 블랙베리? 이미 대세는 블랙베리끼리만 쓸 수 있는 BBM이 아니라 아이폰, 안드로이드, 윈도우폰 등 운영체제를 가리지 않는 메신저 앱이 아닌가. 사실상 특별한 보안이 필요하지 않은 일반 이용자들에게 BIS는 5천원짜리 BBM 서비스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이럴 거면 보안을 높인 기업용 서비스를 따로 두고 일반 이용자들에게는 무료로 푸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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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에 가입하지 않으면 블랙베리 메신저를 쓸 수 없는 것 외에는 딱히 불편한 것도 없다. 앱 장터는 아직 부족하다. 숫자가 아니라 킬러앱이 없다.

앱, 앱월드는 아직 많이 부족

그런데 메시지를 따로 쓰기에도 문제가 있다. 아직 블랙베리 Z10에는 ‘카카오톡’도, ‘라인’도, 심지어 ‘왓츠앱’도 없다. 블랙베리 볼드9900에는 있었는데? 기존 블랙베리와 운영체제가 달라서 호환이 안 된다. 언젠가 나오겠지만 주요 앱들이 너무 늦다.

블랙베리는 앱 개수가 10만개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빠르게 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막상 쓸만한 앱은 그리 많지 않다. 일부 안드로이드 앱을 블랙베리에서 작동시킬 수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마켓은 시간에 흐름에 차츰 개선될 것이고 안드로이드4.1 이상에서 작동하는 앱도 돌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를 포기하고 넘어갈만큼 마음을 이끄는 앱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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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열어도 속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서 속살을 보는 부담이 덜하다. 그런데 배터리는 너무 숨차게 떨어진다.

하드웨어로 시선 끌 수 없을까

디자인은 ‘역시 블랙베리’라고 할 만큼 잘 만들었다. 단단해 보이고 크기나 손에 쥐는 느낌도 좋다. 재질은 약간 가볍다. 하드웨어 스펙만 두고 보면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과 비교하기 어렵다. TI의 OMAP 4470 프로세서는 1.5GHz 듀얼코어 프로세서이고 화면은 4.2인치다. 배터리도 1800mAh다. 앱이나 운영체제는 지체없이 돌아가지만 구입 전에 숫자만 두고 보면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어렵다. 지금 블랙베리에게는 쿼드코어, 2GB 메모리 같은 ‘쇼’도 필요하다. 각 운영체제에 필요한 만큼의 하드웨어 요구 조건이 있고 블랙베리 Z10 역시 그에 맞춘 것일진대, 시장의 반응은 장담하기 어렵다. 용량이 중요한 건 아닌데 배터리 지속시간 자체가 너무 짧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