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지갑, 아직은 이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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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사용자 3천만 시대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손안에 컴퓨터를 들고 다닌다. 전화와 문자메시지 외에도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앱) 설치를 통해 내가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게 오늘날의 전화기다.

기능이 많아져서일까. 그 크기와 부피도 만만치 않다. 과거 10여년전 휴대폰과 비교해 두께는 얇아졌지만 화면은 커진 탓에 한 손에 잘 쥐어지지 않는 스마트폰이 많다. 어지간한 스마트폰은 중지갑 크기와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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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지갑? 그렇다. 카메라도 MP3도 스마트폰에 들어갔는데, 지갑이라고 해서 빠질 이윤 없지 않은가. 이왕 손에 들고 다니는 건, 결제 기능까지 포함되면 금상첨화다. 가방과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손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갑 속 공간을 빼곡히 채웠던 포인트 적립카드와 멤버십 카드가 1차 정리 대상에 포함됐다. SK플래닛의 스마트월렛은 내 통신사 제휴카드부터 시작해 미용실 할인카드, 빵집 적립카드를 모두 담아 보여줬다. 내가 직접 카드 번호를 등록해 사용할 수도 있다.

이제 남은 건 결제다. 지난 2011년 구글은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반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구글지갑’ 서비스를 선보였고, 국내 통신사와 은행도 앞다퉈 모바일 전자지갑 서비스를 선보였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선불충전 방식을 지원하는 전자지갑 앱을 선보였다. KG모빌리언스와 엠틱은 바코드 결제 서비스를 들고 나왔다.

모바일 전자지갑 서비스 등장 3년, 그렇지만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길을 아직 멀고 험난하다.

1. 시험으로 그친 NFC 결제

지난 2011년 구글은 NFC 기반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구글지갑’ 서비스를 선보이며 모바일 전자지갑 시대를 열었다. 구글지갑은 구글플레이에서 앱을 결제할 때 사용되거나, NFC를 읽는 동글이 설치된 가맹점에서 스마트폰을 접촉하는 식으로 결제를 할 수도 있다.

국내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는 ‘NFC 명동 시험 존’, ‘여수 엑스포 NFC 체험존’을 운영하며, NFC 결제를 장려했다. GS25, 훼미리마트, SK에너지, GS칼텍스, 홈플러스,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 9개 대형 가맹점들은 NFC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겠다며 손바닥을 맞췄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약 2만2천여곳에서 번거롭게 앱을 실행할 필요없이 스마트폰을 NFC를 지원하는 결제기에 갖다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뤄진다고 자랑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NFC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을 사자마자 NFC 결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뜰 정도였다. 여기저기 취재하러 돌아다니는 탓에 배낭을 메고 다니는데, 매장에서 무언가를 사고 결제할 때마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 건 번거로운 일이었다. 특히 주머니도 없는 옷을 입고 손에 스마트폰과 우산을 들고 있는 날은 짜증이 솟구쳤다.

집 근처 GS25와 스타벅스, 카페베네, 홈플러스를 대상으로 NFC 결제를 시도했다. 결과는 대참패였다. 그 어느곳도 NFC 결제가 깔끔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단 한 곳에서만 NFC 결제가 이뤄졌으며, 나머지 장소는 NFC 결제를 위한 동글도, 관련 교육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 합정역 근처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에선 아메리카노 한 잔 결제에 15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끝에 NFC 결제가 이뤄졌다. 해당 매장 점원도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녀는 내 덕에 처음으로 NFC 결제를 해봤다며 이번 기회에 좋은 걸 배웠다고 했지만, 속으론 ‘뭐 이런 손님이 다 있나’하고 궁시렁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9개 대형 가맹점과 2만2천여곳이라는 매장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1년전과 달리 NFC를 지원하는 단말기도 늘었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NFC는 ‘갖다대면 결제가 이뤄지는’ 아주 단순한 결제 시스템이다. 그런데 여전히 ‘NFC 결제요!’를 외치는 손님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2. ‘헉’ 소리 절로 나는 T머니 수수료

뭐, NFC 결제는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카드사와 통신사, VAN사 간 이해관계 때문에 빠른 시간에 대중화되긴 쉽지 않은 결제 플랫폼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카드사는 NFC 결제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모바일 전자지갑 시장에 대응하겠다고 입을 모았을 정도였다.

‘손 안의 지갑 시대’에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모바일 T머니가 있잖은가. 버스와 지하철 탈 때 스마트폰만 갖다대도 ‘삑’ 소리와 함께 결제가 이뤄지는 신통한 녀석 말이다. ‘갤럭시노트2’가 공식 제공하는 스마트플립 커버는 안타깝게도 카드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NFC를 통한 결제가 되니, 카드 넣는 공간은 없어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바일 T머니 서비스는 문제 없었다. 어디서든 잘 작동했고, 사용 내역도 앱으로 볼 수 있었다. 신한카드에서 발매한 신용카드를 제외하곤 후불교통카드가 지원되지 않는 게 불만이긴 했지만, 충전해서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헌데 엉뚱한 곳에서 발목을 잡았다. 충전 과정에서 지불하는 수수료가 만만찮았다. 지난해만 해도 모바일 T머니 충전 수수료는 건당 1천원이었다. 내가 100원을 충전하든 1만원을 충전하든, 모바일 T머니 사용료로 1천원을 내야 했다. 1만원을 쓰기 위해 1만1천원을 써야 하는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수수료는 낮아졌다. 최근까지는 수수료가 건당 700원이었고, 4월9일 기준으로는 충전할 때 이용하는 카드 종류에 따라 낮게는 1.8%에서 최대 3.6%로 바뀌었다. 물론 이 비율은 충전할 때마다 적용된다.

지하철 교통카드 발매기 앞에서 받은 카드도 다 사용하고 나면 500원을 환급받을 수 있는데, 무료로 모바일 앱 내려받아 사용하는 T머니 서비스에서 받는 수수료는 환급받을 수 없다는 게 억울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모바일 T머니 앱에서 하나SK카드로 1만원을 충전하면 수수료로 2.1%를 내야 하는데, 하나은행의 모바일 전자지갑 서비스인 하나N월렛으로 T머니를 충전하면 100원을 내야 한다.(그나마 이 금액도 9월30일까진 충전 수수료가 면제란다.) 서로 다른 충전 수수료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결국 멀쩡한 플립커버를 놔두고 카드가 들어가는 또 다른 커버를 샀다.

3. 모바일카드,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각 은행사들이 선보인 모바일카드도 그렇다. BC카드 설명에 따르면, 모바일카드는 스마트폰의 유심(USIM)칩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플라스틱 카드를 내려받아, 스마트폰 하나로 결제를 누릴 수 있는 서비스다.

그런데 이 모바일카드, 쓸모가 없다. 하는 기능과 역할이 모바일 안심결제(ISP)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프라인 현장에서는 모바일카드를 쓸 수 없으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도 없다. 온라인에서 거래할 때도 사용하려면 공인인증서를 내려받아 인증하고 비밀번호도 입력하는 등 사용자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기능은 안심결제 서비스와 똑같다. 안심결제 서비스 사용자라면 모바일카드를 따로 내려받을 이유가 없다. 플라스틱 카드를 유심칩으로만 옮기면 ‘모바일’ 카드가 되는 모양이다. 왜 ‘모바일카드’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서비스에 차별화된 요소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월렛, 하나N월렛, 모카, 주머니, 바통, 엠틱 등 다양한 모바일 결제 플랫폼이 경쟁하거나 공존하는 시대다. 이들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손 안의 전자지갑, 화이팅!’ 신용카드가 지폐를 대체했듯이, 신용카드 역시 전자지갑이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큰 오산이었나보다. 지금 이런 움직임이라면, 불편하고 갑갑해서라도 사용자는 모바일 전자지갑을 외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