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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개발자 행사로 보는 저작권과 혁신

2013.04.29

넥슨이 개최한 국내 최대 규모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 2013(NDC 13)’이 막을 내렸다. 지난 4월24·25일 이틀 동안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총 1만6천여명의 참석자 모두 만족할만한 배움을 얻었길 빌어본다.

헌데 NDC 13이 열리기 직전인 4월 중순, 작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넥슨 직원이 아닌 한 개발자가 NDC 13 일정 공유 웹사이트를 만든 일이다. 10여일을 투자해 만든 이 일정 공유 웹사이트는 빛을 보지 못하고 3시간여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넥슨은 개발자가 만든 일정 공유 웹사이트가 저작권 규정에 어긋난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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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우 개발자가 만든 NDC 13 일정 공유 웹사이트, PC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NDC 13의 일정표를 포함한 모든 콘텐츠는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가 적용돼 있다. 저작자를 밝히면 누구나 마음대로 공유하고 배포할 수 있다. 하지만 변경하거나 수정해 배포할 수는 없다. 2차 저작물 생산 금지 규정이 적용돼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는 NDC 13 일정표를 자르고, 붙여 일정 공유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넥슨이 만든 일정표 콘텐츠를 수정해 2차 저작물을 만들었으니 명백히 넥슨 규정을 위반한 셈이다.

하지만 이 개발자가 만든 일정 공유 웹사이트를 보니 이건 혁신이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일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강연 제목이나 강연자 이름으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강연자의 블로그를 찾아보거나 강연이 끝난 후 슬라이드쉐어 등 서비스를 통해 자료를 공유하는 것도 편리하게 설계됐다. 개발 과정에서 빠진 기능이긴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친구가 어떤 강연을 듣고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애초에 넣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넥슨이 배포한 NDC 13 일정표는 종이로 만들어졌다. 듣고 싶은 강연을 검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종이 일정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하지도 못한다. 사진을 찍어 올리면 모를까. 컴퓨터로 볼 수 있도록 배포한 일정표도 어찌 된 일인지 그림파일로 돼 있다. PDF 형식으로 배포된 이 그림파일 일정표도 검색이나 공유가 불가능한 것은 종이 일정표와 사정이 같다.

NDC 13 일정공유 웹사이트를 만든 주인공은 박현우 스마트스터디 개발자(트위터 @lqez)다. 그는 지난 4월19일 일정 공유 웹사이트를 만들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넥슨 공식 트위터 계정에 이 사실을 알렸다가 뜻밖의 답변을 받았다. 넥슨으로부터 웹사이트를 닫아 달라는 요청이 되돌아온 게다.

이용자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렵다. 종이 일정표보다 쓰기도 좋고, 보기도 편한 서비스가 나왔는데 저작권 규정 때문에 제대로 서비스되지 못했으니. 아쉬운 마음을 품고 박현우 개발자와 넥슨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보자.

NDC 13 일정 공유 웹사이트 개발한 까닭

박현우 개발자(CTO)는 스마트스터디에 몸을 맡기기 전 약 10여년 동안 국내 게임 개발업계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그는 넥슨이 NDC 13을 개최한다는 소식이 마냥 반가웠다고 한다. 자신은 그러지 못한, 성공한 게임 개발자를 향한 일종의 동경심이었다.

NDC 13에 참여해 발표를 진행할 개발자, 그리고 청중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어디 없을까. 박현우 개발자는 NDC 13이 열리기 보름 전부터 행사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고심했다. 그러던 중 NDC 13 공식 블로그행사 일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NDC 13은 공식 홈페이지가 없다. 행사 일정을 알려주는 블로그가 NDC 13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실상 공식 홈페이지 역할을 했다. 넥슨이 NDC 13현장에서 배포한 일정표는 종이로 만들어졌다. 온라인을 통해 미리 배포된 행사 진행표도 PDF 형식의 그림 파일로 만들어져 있었다.

“NDC 13에 관한 정보량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이 데이터를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죠. 종이에 인쇄물로 만들어 놓으면, 눈에 잘 안 들어오잖아요.”

NDC는 국내에서 열리는 게임 개발자를 위한 컨퍼런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번 NDC 13에서는 100개의 강연이 마련됐고, 106명의 강연자가 참여했다. 이들의 강연을 듣기 위해 이틀 동안 코엑스를 찾아온 청중도 1만6천여명에 이른다.

박현우 개발자는 NDC 13 일정을 정리해 웹사이트로 형식으로 만들기로 했다. 개발 도구는 오픈소스 웹 프레임워크 ‘장고(Django)’ 등을 썼다. NDC 13 일정 웹사이트는 박현우 개발자가 NDC 13을 위해 만드는 일종의 팬 페이지인 셈이다.

일정공유 웹사이트를 통해 강연자의 블로그를 방문할 수 있도록 했고, 강연에 관한 질문과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질문을 미리 전달할 수도 있다. 강연이 끝나고 마이크를 돌려가며 질문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미리 좋은 질문을 걸러내는 기능도 할 터였다.

박현우 개발자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를 통해 “일정표를 거대한 이미지 파일 하나로 배포하는 것을 보고,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라며 “개발자 컨퍼런스라는 것이 단순히 발표를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 간 교류의 장이 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기에, 이를 위해 적절한 온라인 ‘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현우 개발자는 ‘하라는 일은 안 하고’ 4월11일부터 NDC 13 일정 웹사이트 제작을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NDC 13 일정 웹사이트를 개발하기 위해 회사 일은 잠깐 하는 척만 했을 정도란다. PDF 일정표에 있는 아이콘도 일일이 캡처해 이미지로 썼다. 4월19일, 박현우 개발자가 오로지 ‘팬심’으로 제작한 NDC 13 일정표 웹사이트가 문을 열었다. 원래 종이와 그림 파일에 불과했던 행사 일정표가 공유와 참석자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디지털 콘텐츠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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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13의 모든 강연을 검색하거나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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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상세 정보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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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이 공식 배포한 종이 일정표

돌아온 답변, “팬 페이지 닫아주세요”

4월19일 밤 10시. 그러니까 박현우 개발자가 웹사이트를 서비스하기 시작하고, 약 3시간이 지난 시간. 넥슨 쪽에서 박현우 개발자에게 연락이 왔다. 웹사이트를 닫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날벼락을 맞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넥슨의 요구는 명확했다. NDC 13과 관련된 일정, 혹은 콘텐츠는 넥슨의 재산이라는 설명이었다.

박현우 개발자는 “담당자로부터 컨퍼런스와 관련된 자료를 이용한 2차 저작물 제작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얘기와 함께 사이트를 내려 달라는 요청을 듣고, 공개했던 팬 페이지를 서너 시간 만에 닫을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해는 가지만 아쉬운 마음은 숨기기 어려운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삼켰다.

이에 대해 넥슨 관계자는 “NDC는 비영리를 목적으로 한 개발자를 위한 행사인데, NDC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다”라며 “CCL 규정에 따라 콘텐츠를 자유롭게 배포하고 공유할 수 있지만, 변형을 통한 2차 저작물 생산은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확실한 것은 박현우 개발자는 일정 웹사이트를 만들어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넥슨 처지에서는 예외규정을 두기 어려웠으리라. 넥슨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일일이 관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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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우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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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우 개발자는 아쉬운 감정이 들었겠지만, 그래도 헤프닝은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 박현우 개발자가 만든 일정 공유 웹사이트는 ‘MIT 라이선스’가 적용돼 있다. 누구나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고, 배포할 수 있다. 다른 개발자가 더 좋은 기능을 붙이면 원래 박현우 개발자가 만든 소스코드를 수정할 수도 있다. MIT 라이선스는 오픈소스 개발 규정 중 가장 자유로운 환경을 지원하는 규정 중 하나다.

■ 박현우 개발자의 일정 공유 웹사이트 개발 자료는 박현우 개발자의 깃허브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관심 있는 개발자라면, 내려받아 써봐도 좋다. NDC 13에서 쓰도록 하겠다는 계획은 무산됐지만, 박현우 개발자는 올 하반기 개최될 개발자 행사 ‘파이썬 코리아’에서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깃허브: https://github.com/lqez/ndc13

저작물 보호와 혁신의 충돌

저작권법을 내세워 창작물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작물과 창작자를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패가 있어야 콘텐츠 생태계를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저작권은 종종 혁신을 가로막는 빗장이 되기도 한다. 저작권법으로 보호받는 대상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콘텐츠에 걸어 둔 걸쇠를 풀어 모두가 누릴 수 있게 했을 때 얻는 이익이 크다면 저작권자는 어떤 결정을 해야 좋을까.

저작권법을 들어 콘텐츠를 보호하려는 넥슨의 의도도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CCL 규정을 통해 공유는 하되 변형은 할 수 없도록 넥슨이 결정했다면, 누구나 규정을 따르는 것이 옳다. 법은 법이니까.

하지만 이번 해프닝은 저작권 주장이 혁신을 가로막은 사례로 남길 만하다. 박현우 개발자가 만든 일정 공유 웹사이트를 넥슨이 허용하고, 아니 박현우 개발자 동의를 얻어 공식 블로그와 적극 연동했다면 어땠을까. 1만6천여명의 NDC 13 참석자가 손에 혹은 가방에 종이로 된 일정표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강연자와 참석자가 좀 더 쉽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을 가질 수도 있었다.

강연을 검색하고, 어떤 강연자의 어떤 강의가 몇 번 방에서 몇 시에 열리는지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기능도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 분명하다. 강연자가 강연 후 강연 자료를 슬라이드쉐어 등으로 공유하는 일이 잦다. 일정 공유 웹사이트는 이 같은 자료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편리한 플랫폼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박현우 개발자가 개발한 일정 공유 웹사이트의 열매는 고스란히 넥슨 주머니로 돌아갔을 것이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외부 개발자의 2차 콘텐츠가 어떤 개발자의 ‘오지랖’으로 끝나버린 것 같아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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