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人] 김시원 “개발자의 길동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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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실은 양산형 개발자 중 한 명입니다. 과거 정부에서 IT 인재 육성한다고 정부 지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 있잖아요. 그때 개발에 흥미를 붙였거든요다.”

김시원 이스트소프트 경영지원부문 경영지원팀 대리는 뒤늦게 개발에 취미를 붙였다. 대학교 4학년, 남들은 취업 준비가 한창일 때 그는 그제서야 프로그래밍 재미에 빠져들었다. 이전까지는 수업도 빼먹는 등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시험 성적이 좋았을 리 없다. 주변 친구들을 다 가지고 있는 토익 점수도 없었다. ‘졸업하고 취업은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게임이나 하고 컴퓨터를 끼고 사니까 어머니가 ‘컴퓨터 먹고 살아라’ 해서 컴퓨터공학과에 들어왔는데, 처음엔 흥미가 없었습니다. 과에서 배우는 프로그래밍 보다는 컴퓨터 조립에 더 흥미가 있었지요. 그래서 전 처음에 용팔이로 살 줄 알았습니다.”

물론 중간에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려고 노력한 때도 있었다.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전문대 나온 사무직 직원들이 굉장히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학은 졸업해야지’하는 생각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3학년 때 윈도우API를 보면서 조금씩 공부를 하려 했지만, 워낙 기초 지식이 없던 때여서 프로그래밍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 둘 프로그래밍을 짜는 상황에 그는 또 다시 게임에 빠졌다. 개발자로서의 김시원은 영영 멀어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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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시애틀에서 열린 MS MVP 서밋에서 스캇 한셀맨 MS 개발자와 함께.

칭찬은 서투른 학생도 프로그래머로 춤추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김시원 대리가 개발자가 될 수 있게 도와준 사건이 발생했다. 그와 똑같이 프로그래밍을 못하는 친구가 모바일게임 회사에 취직한 게 계기가 됐다.

“취직한 그 친구도 처음엔 저처럼 프로그래밍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나오더니 떡하니 회사에 입사해 자기 이름을 박은 게임을 출시하더군요. 부러운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오기가 생겼습니다.”

김시원 대리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저 놈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그 때부터 친구를 따라 IT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과정을 개설한 취업전문학원에 입학했다. 이 곳에서 배우면 그도 곧잘 프로그래밍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프로그래밍 공부만 했다. 다른 친구들이 토익 시험을 보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학원에서 프로그래밍 삼매경에 빠졌다.

그래서였을까. 학원 선생님들은 김시원 대리를 “굉장히 잘한다”라며 칭찬하기 시작했다. 칭찬에 탄력을 받은 그는 더욱 더 열심히 공부했다. 시험을 보면 반에서 1등할 정도였다. 나중에 선생님들은 김시원 대리를 수재 취급하기 시작했다.

“제가 실력이 좋았다기보다는 운이 좋았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취업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용도로 학원을 다니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제가 조금만 열심히 해도 실력이 눈에 띌 정도였지요.”

계속되는 칭찬은 김시원 대리가 프로그래밍에 푹 빠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는 언제 프로그래밍을 몰랐냐는 듯이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구구단 프로그램을 2년 동안 짜면서 처음엔 C로 짰다가, 다음에 C++로 짰다가, 자바로 짜는 등 부지런히 공부하고 연습했다. 계속되는 반복학습에 자신감도 붙었던 터였다.

“특히 C#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당시 학원에서 비주얼 스튜디오란 솔루션을 사용해서 프로그래밍 하는 법을 가르쳐줬는데, 까만 바탕화면에 명령어만 입력하는 C 보다는, 뭔가 바로 결과물을 보여주는 C#에 더 흥미가 생겼습니다.”

한번 프로그래밍에 흥미가 생기고 나니, 프로그래밍의 모든 게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개발자로서의 김시원 인생이 ‘꽃 폈다’라고 표현될 정도다. 졸업 후 장래도 자연스레 개발 관련 회사 입사로 바뀌었다. 친분 있는 선배가 메신저로 우리 회사에 입사하라고 권유한 걸 계기로 김시원 대리는 이스트소프트의 개발자가 됐다.

“회사에 막 입사해서 긴장했는데, 선배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군요. 자신감이 더 붙었습니다. 학원에서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는데, 회사에서도 같은 소리를 들으니까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김시원 대리는 회사에 들어와서 더욱 프로그래밍에 재미를 붙였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때문에 고민하다가도 해당 문제를 혼자 풀어냈을 때 쾌감에 빠지며, 점점 더 ‘개발자’가 되어갔다.

영어, 배울 수 있으면 배우자

하루는 김시원 대리가 신기술을 가르쳐 주는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날 세미나엔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MVP의 강연이 있었다. 김시원 대리는 이날 MVP의 강연을 듣으면서 자신보다 나이는 어리면서 더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 충격을 먹었다. 학원시절부터 회사 생활까지 계속되는 칭찬에 콧대가 높아져 있던 때라 충격이 더 컸다. 김시원 대리는 저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지식을 나누고 싶다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같은 레벨이 되어 소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MVP의 조건을 살펴보며 부지런히 노력했지요. 블로그 글도 열심히 쓰고 좀 더 쉽게 사람들에게 개념을 전달할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학창시절 배웠던 과목들도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기초를 다졌습니다.”

김시원 대리는 4년 동안 MVP 활동을 했다. 전세계 MVP들이 모이는 MVP 서밋에도 참석해 해외 개발자들과 지식을 나눴다. 첫해엔 영어의 벽에 부딪혔지만, 두번째 해엔 간신희 의사소통을 하는 수준이 됐다. 세번째 해엔 원활하게 자신이 고민하던 프로그래밍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해외 개발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전 개발자라면 영어 공부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개발자들과 좀 더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거든요. 해외 개발 동향도 좀 더 수월하게 익힐 수 있게 됩니다.”

김시원 대리가 처음부터 영어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첫 해엔 외국인 개발자가 하는 말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의사소통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귀국 후 그는 10개월 간 영어공부를 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다. 해외 개발자들과 좀 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기껏 해외에 나갔는 해외 개발자들과 만든 추억이 없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겠는가.

“개발자가 의사소통 능력이 좋으면 얻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이 높거든요. 특히 해외 개발자들과 기술에 대해서 소통하니까 얻을점이 굉장히 많더군요.”

영어를 배우니 개발의 신세계가 보였다. MS의 유명 개발자와 만나 그와 함께 어떻게 코드를 개선할 지 논의하면서 개발 지식을 높였다. 기술 한계점에 대해 논의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개발을 할 수 있을지를 배우게 됐다. 우물 안 개발자가 아닌 우물 밖도 볼 줄 아는 개발자가 된 셈이다.

김시원 대리는 이제 입사 7년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공부와 함께 학창 시절에 배운 운영체제, 자료구조, 데이터베이스, 컴퓨터 공학 같은 과목을 부지런히 공부한다. 이때 배운 과목들이 뼈가 되고 살이 돼 좀 더 기본기 탄탄한 개발자로 만들어 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해서 제 프로그래밍 인생이 확 바뀌었습니다. 저 과목들을 게을리하면 더 발전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지요. 지금도 개발하면서 해당 과목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저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길 당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