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터넷 정책, 정부 주도로 가서야

가 +
가 -

5월14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세계정보통신정책포럼(WTPF)이 열린다. 주요 안건은 인터넷 정책.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학계와 시민단체, 정부가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행사는 한국인터넷거버넌스협의회가 주최하고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주관하여 5월3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우곡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제2회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 토론회

인터넷을 다루려는 유엔의 시도, 이미 시작

유엔이 ITU를 통하여 다루려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다. WTPF 기조도 이미 정해졌다. 2012년 12월 ITU는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12)를 열고 인터넷 관련 조항을 규정에 넣는 시도를 한 바 있다. 합의제 기구라는 성격 탓에 이 시도는 전 회원국의 동의를 얻지 못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이 시도는 제3세계 국가와 개발도상국, 유엔이 전세계 인터넷이 작동하는 힘의 균형추를 정부간 기구로 가져오고 싶은 걸 반영했다. 물론 인터넷 접속권, 사용권을 하나의 기본권으로 바라보는 유엔의 시각도 있다. 반면 기존 방식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미국이 있고, 미국에 협조해 원하는 바를 이루는 유럽도 있다. 미국에서 출발한 거대 인터넷기업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세력 다툼으로도 볼 수 있겠다.

wcit-12 조약 찬성국가 지도

▲WCIT-12 인터넷 관련 사항을 포함한 결의문과 조약에 찬성한 국가(검은색으로 표시)와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

인터넷 세상의 국제 지형이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한국은 개발도상국과 같은 표를 냈다. 바로 ITU의 WCIT-12 회의에서였다. 이 회의로 자생적으로 자라고 성장한 인터넷은 한 국가 혹은 여러 국가 연합의 통제 대상이 됐다. 그 시도는 이제 막 시작했다.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가 도마에 가장 먼저 도마에 올랐다.

과연 유엔이 제대로 인터넷을 다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정부 대표단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특성은 미래의 인터넷을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만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남희섭 오픈넷 이사는 “ITU는 정부간 유엔 기구로, 논의 과정과 결과물을 누구나 볼 수 없고, WTPF를 앞두고 공개된 의장 성명서에는 ‘국제 인터넷 관련한 공공정책은 국가주권’이라고 쓰여 있어 특정 국가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ITU가 통신에 이어 인터넷까지 다루려는 걸 막기는 어려운 듯하다. 우리 정부는 이미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는가. 정부에서는 ITU가 인터넷을 다루기로 한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태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사는 “개방이라는 원칙이 개도국에는 고비용으로 느껴질 수 있고, 아랍과 러시아, 중국과 같은 반미·반서방 국가는 인터넷을 하나의 권력, 무기로 보고 그에 대한 견제 세력이 필요하단 생각에 ITU를 활용하는 것”이라며 “이미 기술, 주소자원 등 거버넌스가 확립된 분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면 후자에서 ITU가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국제 관계라는 게 오래 전문적으로 참여해야 목소리와 권한, 영향력을 가지므로 정부가 일단 모든 장에 다 참여하는 게 맞다”라고 인터넷을 논하는 국제적인 장에 우리 정부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은 ITU가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가 맡는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를 맡게 된다면 투명하게 운영하기를 주문했다.

그는 “ITU의 인터넷 주소자원관리에 시민사회가 참여하려면 투명성이 보장돼야 하며, ITU는 인터넷 인프라에 관련한 일에만 전념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국내에선 방송통신위원회가 망중립성 논의를 2년 반 정도 시민사회 참여를 배제하고 모바일 인터넷전화를 차단하고 이를 이동통신사업자가 하게 하기를 핵심으로 진행했는데 지금은 아무 소용 없게 됐다”라며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선 참여도 없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해야

토론회는 당장 코앞에 닥친 WTPF보다 국내에서 정부 주도 인터넷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비판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정부 주도로, 소수 기업의 의견만 듣는 식으로 인터넷을 통제한 모습을 돌이키면, 유엔 또는 유엔이 아닌 제3의 정부간 기구가 인터넷을 다룰 때 하지 말아야 할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이영음 방송통신대학교 교수는 “ITU 관련 논의에 참여할 때 한국의 입장을 어떻게 관철할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국내 이용자가 정말로 원하는 게 국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부터 생각하자”라고 말했다.

윤복남 법무법인한결 변호사는 한국인터넷진흥원에 자문하는 인터넷주소정책포럼에 참여한 경험을 들려줬다. 윤 변호사는 “최종 의사결정은 항상 정부몫이었다”라며 “법령상 또는 제도로 보장돼 있지 않으면, 정부 담당자가 조직 이름, 구성원, 할일 등을 바꿀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방송통신위원회가 한국인터넷거버넌스협의회를 발족하며 소속이 한국인터넷거버넌스협의회 주소인프라분과로 바뀌었다. 인터넷주소정책포럼 구성원은 자기 소속이 바뀌는 걸 결정할 권한조차 갖지 못했다.

시민사회나 기업, 국민의 의견을 듣기 앞서 계획부터 세우는 우리 정부의 모습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거듭 강조됐다. 이동만 KAIST 교수는 “모든 걸 정부가 하려는 데서 엇박자가 생기기 시작했다”라며 “우리 정부가 조금 더 품위있게 인터넷에 관여하는 많은 사람의 능력을 믿고, 인터넷에 관한 정책에 대한 의견을 모을 때는 다자간 모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도록 한발짝 물러서 보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우리 정부가 WTPF에서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목소리를 내길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한국이란 가치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포함한다”라며 “한국 안에서 기업, 정부, 시민사회의 뜻이 다르고 시민사회에서도 다양한 가치가 있는데, 국제 또는 국내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의 장에 하나의 가치만을 입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정부, “아직 의견 모으는 중”

한국과 같은 몇몇 국가를 빼곤 인터넷은 자유로이 발전했다. 그래서 유엔이 인터넷 주소자원을 다루는 게 옳은 결과를 만들지 예측하기 어렵다. 팀 버너스리는 “유엔이 참여하는 데 우려하는 건, 국가가 일률적으로 인터넷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인터넷을 검열하거나 제재를 가하게 될 것에 대한 우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정부는 2012년 12월, 비서방국가와 같은 표를 던졌다.

2014년 부산 ITU 전권회의를 앞두고 우리 정부가 WTPF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눈길이 쏠린다. 최명식 미래창조과학부 인터넷정책과 사무관은 “아직 의제별로 의견을 정리하는 단계”라며 “(WTPF가 열리기 한 주 전인) 다음 주 정도에 의견이 모아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WTPF에 참석하는 송경희 미래창조과학부 인터넷정책과장은 토론회가 본격 시작하기 전 축사를 하고 자리를 떴으며, 최명식 사무관은 이 업무를 맡은 지 한 달밖에 안 됐다.

네티즌의견(총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