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포럼] 크몽, “진주에서 재능거래 서비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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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포럼은 ‘혁신은 담벼락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포럼 회원 중 한 명이 말한 게 발화점이 됐습니다. “벤처가 넘어야 할 담은 높고, 벤처는 높은 담벼락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며 사업을 한다”란 설명이었습니다. IT 벤처가 기댈 담벼락이자 새 서비스를 알리는 담벼락(게시판)이 되고 싶다는 뜻도 담겼습니다.

담벼락포럼은 매달 참가 기업 신청을 받습니다. 창업스토리를 들려주고 서비스 허점을 파고드는 거침없는 질문에 대답도 해줄 곳을 방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열정 가득한 IT 스타트업을 응원합니다.

담벼락포럼 웹사이트(참가신청)
담벼락포럼 옛 모습, ‘SNS포럼’ 보러가기

“지방에서도 이런 거 할 수 있다는 거 보여주고 싶어요. 크몽을 키워서 놀이터 같은 회사를 만들래요.”

경상남도 진주에서 재능을 사고파는 ‘크몽’을 만드는 박현호 대표의 말입니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옛말이 없었다면 서울 쏠림 현상이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을 겝니다. 아니, 이 속담이 지금 시대에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죠. 이른바 ‘서울공화국’에서 멀찍이 떨어진 남쪽에 본사를 둔 IT 신생기업의 생존법을 담벼락포럼에서 소개합니다.

크몽은 박현호 대표 자택에서 시작한 서비스입니다. 흔히 실리콘밸리 성공기업에는 차고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링크드인처럼 창업자 거실에서 시작한 서비스도 있습니다. 에어비앤비가 그랬지요. 크몽도 비슷합니다.

▲황룡 사이러스 대표와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 박현호 크몽 대표, 정보라 블로터닷넷 기자(왼쪽부터)

  • 일시: 2013년 4월25일 목요일 오후 4시
  • 장소: 블로터아카데미
  • 참석자: 박현호 크몽 대표,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 황룡 사이러스 대표, 이희욱/정보라 블로터닷넷 기자

지리산에서 절치부심

박현호 대표는 서울에서 두 번 창업하고 실패를 겪은 뒤 고향 진주로 돌아갔습니다.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가 은둔생활도 했다고 합니다. 그때 절치부심했던 모양입니다.

“돈도 없었지요. 지리산에서 머물던 곳은 인터넷도 안 들어오고 전화도 안 터지던 곳이라 제가 지내며 인터넷을 연결해 달라고 요청했지요. 거기에서 해외 서비스를 연구했어요. 우연히 ‘파이버’라는 이스라엘 개발자가 만든 웹사이트를 봤는데 1년 성장 그래프가 놀라웠습니다.”

파이버는 5달러에 자기 재능을 사고 파는 웹사이트로, 최소 5달러에 ‘캐리커처를 그려주겠다’, ‘당신을 위한 메시지를 내 고양이 사진 위에 적어 주겠다’, ‘영국 억양으로 당신에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겠다’와 같은 거래가 올라옵니다. 2010년 출시되고 200개 국가의 수백만 이용자가 150만개 거래를 올렸습니다. 지금도 하루에 수천개가 올라온다고 합니다.

이 웹사이트는 지금까지 2천만달러를 투자받았고, 알렉사에서 전세계 웹사이트 214위로 꼽힙니다. 박현호 대표가 솔깃할 만한 서비스 같습니다.

박현호 대표는 파이버를 참고하여 크몽을 만들었습니다. 2011년 6월 서비스 문을 처음 열고, 2012년 10월부터 본격 서비스에 집중했습니다. 박현호 대표가 직원을 새로 뽑고 서비스를 정성껏 가꾸기 시작한 지 이제 반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크몽의 겉모습은 아직 파이버 판박이입니다. 거래액은 5천원 이상, 거래 성사시 20%는 수수료로 떼기, 웹사이트 구성과 디자인 등 크몽과 파이버는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두 번의 실패에서 얻은 깨달음 ‘조급함은 금물’

▲담벼락포럼은 종종 이런 구도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크몽은 파이버 ‘따라하기’에 불과해 보이는데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는 크몽의 미래를 밝게 점쳤습니다. 박현호 대표의 과거 때문입니다. 이동형 대표는 두 번의 실패와 산속에서 보낸 시간을 값지게 여겼습니다. 어디, 박현호 대표의 과거사 좀 들어볼까요.

“스무살, 대학교에 입학하고 수업은 안 듣고 혼자 게임을 만들곤 했는데 1997년, 용산에서 게임 CD를 사다가 웹사이트에서 주문을 받아 우편으로 발송하는 쇼핑몰을 만들었습니다. 재미로 했지요. 그러다 PC방 화면에 우리 프로그램 깔면 이용자를 늘릴 수 있겠다 생각해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창업했어요. 그때가 스물하나,둘이었던 것 같아요. 개인투자자 10명에게 2억원 투자도 받았지요.

그런데 사업은 망했고, 학교는 다니지 않아 제적됐습니다. (그는 자신이 ‘고졸’이라며 멋쩍은 듯 웃음을 지었습니다.) 고향에 내려와 크레이그리스트(온라인 벼룩시장으로, 인터넷 웹사이트로는 방문자 수 기준 세계 43위)와 같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중고나라와 피터팬, 파인드올, 잡코리아, 알바몬 자료를 수집해 만들었고, 별다른 광고 없이도 검색 타고 들어온 사람이 하루 1만명이 됐지요.

그러다 외부 웹사이트에 거래를 올렸다가 거래가 성사됐는데 제 웹사이트에선 이게 지워지지 않으면서, 일부 이용자가 네이버에 항의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트래픽 80%를 몰아주던 네이버가 검색DB에서 저희를 지웠습니다.”

멋진 경험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이동형 대표는 박현호 대표가 두 번 실패에서 배움을 얻었다고 말한 데에 점수를 준 것 같습니다.

박현호 대표는 자신이 그땐 조급했던 것 같다며 “꾸준하게 차근하게 하면 할 수 있었을 텐데, 처음부터 무리하게 시작하고 급하게 해서 실수를 많이 하고 반복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과유불급을 몸으로 느꼈던 겁니다.

선과 악, 합법과 불법 사이의 차이점

▲크몽 웹사이트 첫 화면

크몽에 올라오는 거래 중 눈에 띄는 건 디자인 대행과 블로그 마케팅 대행,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팬수, 조회수 늘려주기입니다. 일부 이용자는 눈살을 찌푸릴 법한데요. 크몽에서 거래를 관리하는 기준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느냐’입니다.

“크몽에서 거래는 저희 승인을 받고 공개됩니다. 애인대행과 같은 거래는 승인하지 않고, 블로그마케팅은 올립니다. ‘혹시나?’ 싶은 거래는 다시 생각해보는 거죠. ‘5천원에 욕설을 들어주겠다’는 판매자도 있어요. 판매자가 올리는 거래에 관한 비즈니스 가능성을 가늠하는 건 아니에요.”

‘5천원에 이것 해줄게요’란 다양한 거래가 올라오는 가운데 박현호 대표는 디자인 대행에 좀 더 집중하려는 눈치입니다. 크몽에서 최고 거래액 기록을 세운 거래가 바로 한 병원의 디자인 작업이었지요. 웹툰으로 홍보물 만들기였는데, 550만원이었답니다. 이 판매자 덕분에 크몽에 10만원 초과 거래도 가능해졌습니다. 총 성사된 거래액이 1600만원에 달하는 판매자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크몽에 올라온 ‘이것 해줄게요’를 사는 사람은 신생기업이나 벤처, 소기업을 운영하는 3,40대 이용자라고 합니다. 중국어, 스페인어, 영어 등 문서번역 거래도 종종 올라오고요.

거래에 만족하거나 거래가 성사됐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디자인물이라면 이용자 기호에 따라 불만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요. 결제가 이루어진 거래 중 2,30%는 구매자쪽에서 거래 취소를 합니다. 거래는 크몽을 거쳐 진행되고 구매자가 서비스나 제품, 결과물을 받고 나서 거래 확인을 해야 판매자에게 입금되는 구조라 거래 취소가 가능하지요. 이걸 보장하기 위해 박현호 대표는 크몽을 통하지 않은 직거래는 엄격하게 관리한다고 말했습니다.

크몽에서 재미있는 모습이 하나 있는데요. 크몽이 파이버를 따라했듯, 또 다른 파이버 미투 사이트도 있는데요. 이 사이트가 또한 크몽 구매자도 된다고 합니다.

“새로 만들어진 경쟁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이런 서비스가 있다’라고 광고를 해야 할 텐데요. 크몽에 와서 마케팅 거래에 주문을 넣는 거죠. 처음엔 차단했는데 그 사이트 쪽에서 ‘크몽에서 결제하려는데 잘 안 된다’란 연락이 와서 풀었습니다.’

진주에서 IT 서비스를 운영하기란

4월 담벼락포럼으로 크몽을 꼽은 데에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서울 밖 IT 회사는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관한 호기심이었습니다.

박현호 대표는 크몽을 고향인 진주에서 만들었고, 직원도 진주에서 채용했습니다. 본사는 당연히 진주에 있지요. 이 글 처음에 언급한 속담이 기억나는지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란 얘기요. 모두가 서울로 오면서 지방에서 뜻맞는 사람 찾기는 점점 어려울 것 같은데요. 크몽엔 직원이 12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미지: 오픈스트리트맵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 진주에서 사업하면서 제일 어려운 게 무엇인가.

박현호 크몽 대표 개발자 뽑기가 어려웠다. 웹은 내가 만들어봤지만, 앱은 잘 모른다. 내가 공부해서 만들 수 있어도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디자이너는 뽑기 더 어렵다.

황룡 사이러스 대표 같은 지방대 출신으로 그 어려움을 이해한다. 지방에서는 학생에게 취업을 위한 공부를 시키지, 창업에 관한 꿈을 심어주진 않는다. 지방대는 학생에게 ‘여기를 졸업해 대기업 지사 근무하기’와 같은 생각을 심어준다.

이동형 개발자를 뽑기 어려워도 계속 지방에 있을 건가.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벌어 내려갈 수도 있지 않나.

박현호 지금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지방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예전과 달라진 게 초반엔 잡코리아에 채용 공고를 올리면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력서가 하나둘 들어온다.

황룡 지방에 사는 사람 중 능력 있는 사람은 여유롭게 살고 싶어해, 회사가 안정적이라면 충분히 들어가서 일할 것 같다.

이희욱 블로터닷넷 기자 크몽은 개발자를 어디에서 채용한 건가.

박현호 지금 있는 사람은 진주 출신인데 서울에서 일하다 내려온 사람, 진주 토박이 등 진주 출신들이다. 그런데 서울과 분위기가 달라서 그런지 진주에선 치열함이 덜하다.

이동형 직원 12명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방에서 서비스하기란 쉽지 않은 거니까. 싸이월드의 경우는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했어도) 전직원 스톡옵션이 있었다. 함께하는 직원이 박현호 대표를 이해한다면 굳이 박 대표가 직원들을 채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담벼락포럼을 진행하며 박현호 대표가 ‘고향에 살고 싶었다’라고 한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소망과 크몽의 성장이 같이 이루어지길 빌어봅니다.

<담벼락포럼 회원이 크몽에 하는 조언>

박현호 전문가도 크몽에 오게 하고 거래되는 서비스를 한 단계 높이고 싶다. 해외에도 우리 서비스를 퍼뜨리고 싶고. 서비스를 자동화하고 개선해 크몽을 플랫폼화하고도 싶다. 만들어야 할 게 많다.

이동형 사용자가 그렇게 요구하고 있는가. 지속 가능하려면 기술이 있더라도 기술회사란 생각보다 사용자 반응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용자보다 크몽의 속도가 빠르면 안 된다. 과하지 않게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황룡 플레이톡과 미투데이가 있었을 때, 플레이톡이 미투데이보다 더 잘나갔다. 그때 미투데이는 기능이 많지 않아 이용자는 없는 대로 썼는데, 플레이톡은 이용자가 추가해 달라는 기능을 그때마다 넣으며 마이크로블로그란 이름이 무색해졌다. 크몽은 이용자와 콘텐츠에서 적당한 선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 서비스를 쓰는 사람들은 고급 퀄리티를 찾기보다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욕구가 더 강한 것 아닌가.

<지금 크몽은>

크몽은 박현호 대표가 10년 전 친구 집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다 ‘컴온’이란 가사를 ‘크몽’으로 듣고서 바로 구매한 도메인에서 시작했다. 그가 한국의 크레이그리스트를 꿈꾸며 만들었던 웹사이트 이름도 크몽이다. 박현호 대표는 이후 2011년 6월 크몽을 재능 거래 웹사이트로 만들었다.

현재 크몽 회원 수는 4만명, 등록된 재능수 즉, 거래수는 5천개 정도다. 주 이용자는 서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주로 디자인 대행과 온라인 마케팅 대행해준다는 거래가 올라온다. 크몽의 지금 로고도 바로 크몽에 디자인 대행해주겠다고 올린 한 판매자가 만들었다. 크몽의 매출은 구매자가 크몽에 등록된 재능을 주문하고 결제한 뒤, 거래 확인을 한 뒤 판매자에게 전달하고 남은 수수료 20%다. 크몽의 본사는 경상남도 진주시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학협력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