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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는 블랙베리, 지지대는 ‘메신저’와 ‘소셜’

2013.05.15

위기는 누구에게든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블랙베리의 변화가 그렇다. 블랙베리는 미국시간으로 5월14일 블랙베리 라이브 행사를 열고 신제품과 새로운 서비스들을 발표했다.

첫번째는 ‘블랙베리10’ OS를 얹은 보급형 스마트폰 ‘블랙베리Q5’다. 얼마 전 공개한 쿼티 스마트폰 ‘블랙베리Q10’과 비슷한 형태의 제품이다. 720×720 해상도의 3.1인치 정사각형 디스플레이와 하드웨어 키보드 등 기본은 다르지 않다. 다만 재질이 플라스틱이고 위·아래가 둥글게 처리된 Q10과 달리 귀퉁이에만 곡선을 둔 디자인 정도가 차이다. Z10과 Q10이 1.5GHz 프로세서를 쓴 것과 달리, 작동 속도도 1.2GHz로 낮췄다. 단가 차이도 있겠지만 상위 모델과 차이를 두기 위한 것도 이유일 게다. 현재로서는 블랙베리10 운영체제로 고급 기종과 보급 기종을 함께 만들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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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제품만 내놓는 바람에 사실상 디자인이 딱딱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장은 기업들보다도 블랙베리를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신흥 국가들의 수요를 맞추는 것이 더 급하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블랙베리를 떠나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로 이동하는 흐름을 쉽사리 막을 수는 없다. 이를 인정하는 변화가 ‘색깔’이다. 블랙베리는 Q5에 이전에 없던 과감한 색을 입혔다. 빨간색와 분홍색을 씌운 블랙베리는 낯설다. 하지만 제품 자체는 메시징을 많이 쓰는 젊은층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간 블랙베리는 새 운영체제와 함께 고급형 제품만 먼저 내놨다. 그것도 맨 처음 제품은 풀터치스크린 제품이었다. Z10은 제품 그 자체로나 운영체제로 봤을 때 나쁘지 않지만, 따져보면 블랙베리 스스로가 성공시키길 원하는 시장이다. ‘풀터치스크린에 게임과 동영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블랙베리’다. 하지만 시장이 원하는 건 ‘남들이 다 쓰는 앱 그대로, 키보드를 얹은 블랙베리’다. Q10과 Z10은 동시에 나오거나 Q10이 더 급했고, Q5 같은 보급형 제품도 더 서둘러서 내놨어야 했다.

또 다른 변화는 블랙베리 메신저, BBM을 범용 메신저로 바꾸는 전략이다. 올 여름께 블랙베리는 BBM을 iOS와 안드로이드용으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자리잡기 시작할 때 더 일찍 시작했다면 무료 메신저의 이점과 블랙베리의 보안에 대한 믿음이 더해져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현재로서는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라인, 카카오톡 등과 처음부터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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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가 더 이상 특별한 서비스가 아닌 상황에서 개방하는 것이 차라리 옳은 판단이긴 하지만 시기는 아쉽다. 또한 기존 블랙베리에서 블랙베리 메신저를 쓰려면 BIS(블랙베리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해 매달 요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에서도 이를 유료로 할까? 유료라고 해봐야 왓츠앱처럼 앱 가격을 0.99달러 받는 정도일텐데 후발주자로서 그마저도 유료로 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인다. 결국 블랙베리 이용자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 혹은 BIS가 무료로 풀릴까?

블랙베리는 ‘채널’이라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만든다. 이용 방법은 게시판처럼 누구나 채널을 만들고 그 채널을 팔로우하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양방향 서비스라기보다는 트위터와 비슷한 방식으로 채널을 만든 사람만 대화를 시작하고 참여자는 댓글 정도로만 참여할 수 있는 소극적인 SNS다. 연예인들의 팬페이지나 뉴스 공급자 등의 용도로 쓰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마저도 가볍게는 트위터, 더 강력하게는 구글플러스가 버티고 있다.

블랙베리의 최근 행보는 더 이상 보안과 비즈니스가 아니다. 이번 블랙베리라이브를 보면 더욱 그렇다. 기업보다 소셜을 중심에 두려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변화는 좋지만 블랙베리10 운영체제부터 쿼티 키보드 블랙베리, 보급형 제품, 소셜 서비스까지 한결같이 시기가 ‘늦었다’는 느낌이다. 시장 지배력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생각대로 먹힐 지 의문이다. 어쨌든 이어지는 위기 상황을 통해 블랙베리는 달라지고 있다. 속도가 더 붙었으면 좋겠지만.

국내 출시는 어떨까. 여전히 안 나올 것 같다는 쪽에 비중이 높지만 그렇다고 블랙베리가 국내 시장을 완전히 떠나보낸 건 아니다. 얼마 전 블랙베리 관계자와 나눈 대화에 따르면 “국내 시장은 일본과 달리 철수가 아니라 축소에 가깝다”라고 한다. 국내에 사무실과 직원이 없는 상태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직접 관리하고 국내에 적절한 제품이 있으면 직접 제품을 유통하거나 다시금 지사를 열 가능성도 있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