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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욕배틀’, 처벌이 능사인가요”

2013.05.23

게임의 기본은 경쟁이다. 남과 다퉈야 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하물며 가위바위보도 우연에 기대는 경쟁이지 않은가. 게임에 참가하는 이들의 실력이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된다면, 그 게임판은 더없이 치열해질 게다. 라이엇게임즈 코리아가 국내에 서비스하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처럼 말이다.

‘LoL’은 5명의 게이머가 한 팀을 이뤄 다른 팀의 기지를 파괴하는 게임이다. 게이머가 조작하는 캐릭터는 한 판이 진행되는 동안 경험치를 얻어 성장한다. 좋은 아이템을 구매하면 캐릭터는 더 강해진다. 롤플레잉게임(RPG) 요소와 전략적인 특징이 버무려진 게임이다. 여기에 게이머가 캐릭터를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조작할 수 있느냐도 게임의 승패를 가른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50여분 동안 펼처지는 ‘LoL’ 한 판이 무척 치열한 까닭이다.

덕분에 게임 속에서는 각종 욕설이 난무하는 일이 잦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이 오가고, “나는 잘 했는데, 네가 못 해서 졌다”는 식의 ‘남 탓’도 흔하다. 팀을 짜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팀원들 끼리 게임보다 치열한 ‘욕배틀’을 펼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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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LoL’ 속에서 욕설을 방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게임 속에서 갖은 욕설로 남을 비난하는 행위, 팀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의도적인 일탈행위 모두 ‘비매너 플레이’로 규정하고 있다. 권정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본부장은 게임 속 비매너 행위를 순화하려는 노력은 단순히 게임 속 비매너 행위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전체 게임 문화, 인터넷 이용 문화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LoL’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의 문제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을 하지만, 게임 속에서 일부 게이머가 비매너 행동을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비매너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라이엇게임즈의 중심에 게이머 행동분석팀(Player Behavior)이 있다. 게이머가 게임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고, 연구하는 팀이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LoL’에 새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게이머 행동분석팀의 목표는 욕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욕을 하지 않는 게임 문화를 가꾸는 것이 목표다. 매너에 어긋나는 이들을 처벌하고, 욕설을 ***로 표시한다고 해서 욕이 사라질까. 욕설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게임을 이용하는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를 들여다 볼 일이다.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는 교통질서가 엉망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걸 개선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교통법규를 어기는 일이 100% 사리지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경찰이 없는 곳에서는 위반하겠죠.”

권정현 본부장은 “벌금을 내기 때문에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보다 교통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퍼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가 지난 2012년 겨울 도입한 ‘명예로운 소환사’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게이머는 게임이 한 판 끝난 이후 동료 게이머를 칭찬할 수 있다. 누가 어려울 때 도와줬는지, 어떤 팀원이 팀워크에 공헌했는지 등 3가지 측면에서 칭찬할 수 있다. ‘명예로운 적’이라는 훈장도 있다. 팀원이 아니라 대적해 싸웠던 적 팀 게이머도 칭찬할 수 있다.

칭찬이 쌓이면, 다른 게이머가 볼 수 있도록 게이머 정보 화면이 바뀐다. ‘명예로운’ 게이머가 되고 싶다면, 게임 속에서 욕하지 말고 팀원을 도우라는 얘기다. 사람은 누구나 명예를 탐하기 마련. 사람의 명예욕을 이용한 캠페인인 셈이다.

명예로운 소환사 시스템이 당근이라면, ‘게임 배심원단’ 제도는 채찍이다. 게임 배심원단 제도는 다른 게이머로부터 신고를 받은 게이머를 배심원 심의에 회부하는 제도다. 게이머의 잘잘못을 다른 게이머와 공유해 가리자는 의도다. 신고를 받은 게이머에 e메일을 보내 불이익을 주는 단선적인 제도와 비교해 소통에 힘을 실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게이머들 끼리 목소리를 나누고, 게이머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다는 게 라이엇게임즈의 설명이다.

권정현 본부장은 “인터넷 악성 댓글이나 게임 속에서 욕설이 오가는 문제가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칭찬과 독려 등 소통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을 통해 게임 이용 문화도 서서히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게임 배심원단 제도가 성과를 내고 있다.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관찰한 결과를 보면, 배심원단 시스템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게이머 중 절반 가량은 배심원단에 다시 회부되는 경우가 없었다. 명예로운 소환사나 게임 배심원단 제도가 당근과 채찍이 돼 전체 게임 문화를 조금씩, 하지만 지속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증거다. 기계적이고 일방적인 게임 시스템보다 게임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도 더 높은 점주를 줄 만하다.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심리학박사는 “게임 셧다운제나 경험치 억제와 같은 방식과 비교해 명예로운 소환사 제도가 더 세련된 시스템”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어디 ‘LoL’ 뿐일까. 욕설은 인터넷 세상 어디에나 있다. 다른 게임은 물론 인터넷 기사 댓글이나 커뮤니티에서도 키보드를 넘어 고성이 오간다. 댓글 옆에 있는 ‘신고’ 버튼이 무색할 지경이다. 단순한 신고 보다는 게이머와 인터넷 사용자의 행동 분석으로 기반으로 한 세련된 제도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물론, 험한 댓글이나 욕설 때문에 누군가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공감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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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하기보다는 격려와 칭찬을 건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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