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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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8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보통신부가 폐지됐다. 2013년 3월 23일,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면서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됐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애플의 아이폰 쇼크를 맞았고, 그 이후 불거진 국내 ICT 산업의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그 같은 새로운 기술 혁명의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ICT 정책을 독임하는 부처의 폐지와 신설이 번복되는 가운데 국내 주요 정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한다. 유수의 국내외 경제 연구 기관에서 내놓는 경제성장률도 크게 다르지 않다. 15년만에 장기침체를 경험하는 일본에 경제성장률이 뒤진 사실에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경각심이 일고 있다.

이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한국 경제를 견인해온 국내 ICT 산업은 한국 경제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어떻게 ICT 산업을 개혁해야 이번 정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날이 커져가는 빈부차와 민생고를 줄일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의식은 ICT 정책이 기술 정책일 뿐아니라 경제정책이며 경제정책일 뿐아니라 사회정책임을 보여준다. ICT 정책이 바뀌면 경제가 바뀌고, 경제가 바뀌면 복지도 바뀐다. 쉽게 말해 ICT 정책을 통해 기술 혁신이 증가할수록 경제적 생산성이 증가하고, ICT 정책을 통해 기술 발달의 혜택이 고르게 분배되면 사회적 형평성도 증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으로 어떻게 ICT 산업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예를 들어, 현재 국내 ICT 정책의 출발점인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한 논란은 기술 정책을 넘어 경제 정책, 사회 정책으로서 ICT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데 좋은 기준이 되는 것일까?

한국의 정책역사상에서 볼 때 컨트롤 타워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유산이다. 박정희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로 정치를, 경제기획원으로 경제를 통제했다. 중앙정보부는 필요하면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반대편을 무마했고 언론을 통제했다. 이는 박정희의 권력 기반을 공고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경제기획원은 경제 정책 담당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 각 부서간 의견을 조율했고 정책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유지했다.

사실상 한국의 ICT 정책도 초기에는 경제기획원의 기획안이었으며 1970년대말 한국 경제가 겪었던 고물가, 저성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한국 ICT 산업의 출발점이 된 1980년은 한국 경제가 1960년대 이후로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을 때였으며 경제기획원 관료들은 이 위기를 새로운 산업(전자산업)의 육성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한국을 ‘아시아의 두 번째 기적'(Asia’s Next Miracle)이라고 소개한 경제학자 암스덴의 분석을 보면 당시 해외 비즈니스 잡지에서는 국내 PC산업을 청와대 사업이라 불릴만큼 경제기획원의 입김이 컸는데, 이런 관료의 영향력은 PC 산업뿐 아니라 통신산업 등 관련된 산업의 전반에 컸다. 청와대 관료였던 김재익과 오명이 각각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통부 차관으로서 한국의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에 어떻게 공헌했는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이며, 이들 관료들의 리더십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같은 국책연구소를 통한 연구 개발, 이제는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 LG 등과의 사업 협력을 통해서 한국 ICT 산업의 기초를 닦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큰 유산을 남겼다고 해서 과거의 경험을 답습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20세기 후반 한국의 경제 발전과 마찬가지로 한국 ICT 산업의 발달 역시 역사적 산물이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 폐쇄적 경제에서 개방적 경제로 전환하는 사회적 과정과 자체 기술 개발과 국내 기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산업의 필요가 맞물려 일어날 현상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의 일생에서 보듯 첫사랑의 기억은 가장 아찔하게 아름답지만 그걸 되돌리려 할수록 추해진다. 과연 복고풍이 진리인지는 재고해볼 이유가 있다. 21세기 초에 우리가 당면한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과제가 20세기 후반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정부가 손을 떼는 것 역시 답은 아니다. 컨트롤 타워를 부활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컨트롤 타워를 없애는 것이 답이라는 것 역시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관한 흑백논리다. 정부가 하는 일은 산업 진흥에만 있지 않다. 정부는 시장에 경쟁의 법칙을 만들고, 시장에서 낙오한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역할을 배제한다면 나타나는 건 이미 존재하는 권력과 자본의 집중화가 가속되며, 반대로 기존의 취약 계층은 더 심한 경제적, 정치적 차별화를 당하게 된다.

먼저 정부가 시장 규칙을 만드는 역할에 대해 논하자면, 1990년대 이후 진행해온 것처럼 기존 규제를 철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탈규제(deregulation)는 공정 경쟁을 위한 재규제(reregulation)와 함께 진행되야 한다. 후자가 없이 전자만 진행되면 시장에 신규 사업자가 들어올 수는 있지만 그 신규 사업자가 딛고 설 언덕이 없다.

예를 들어 국내에 상업적 인터넷과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보급되는 데는 허진호 박사의 아이네트, 이용태 회장의 두루넷, 그리고 하나로 등이 기여했다. 이들 기업은 지금 어떻게 됐는가? 혹은 현재 한국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 시장은 신규 사업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되나? 만약 이 답이 부정적이라면 한국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시장은 한국이 이 시장에서 전세계를 앞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경쟁 정책과 산업 진흥은 무관하지 않다. 사실상 경쟁 정책이 원활히 이뤄진다는 전제 없이 장기적으로 산업 정책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사업자들이 계속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이 시장에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정부의 사회적 약자 보호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국내 인터넷 정책의 맹점이 명백히 보인다. 헌법재판소도 한정위헌을 선고한 제한적 본인확인제(소위 ‘인터넷 실명제’) 그리고 최근 입법적으로 쟁론화되고 있는 공인인증의무제, 마지막으로 작년에 통신사의 카카오톡 보이스톡 제한을 놓고 논란이 컸던 망 중립성 정책의 공통점은 일부 엘리트(정치인, 유명 인사)를 위한 국민 다수의 표현의 자유 제한, 일부 보안 회사를 위한 국민 다수의 금융 서비스 이용 환경 불편 초래, 그리고 일부 이통사의 수익 보전을 위한 국민 다수가 이용하는 인터넷 생태계의 변화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는가. 플라톤 이래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 정의는 다수(demos) 지배(cracy)가 아니던가. 다수 지배는 포퓰리즘 등의 우려에 의해서 제한될 수 있다치자. 그렇더라도 최소한 인터넷 산업 및 시민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 집단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과정은 필요하지 않은가. 소비자에게, 시민에게 더 빠른 인터넷이 반드시 더 좋은 인터넷은 아니다. LTE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선 통신망이 구축됐다고 할지라도 그 인터넷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보안상 위험이 내재되고 혁신의 가능성이 침해되는 인터넷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다수가 아닌 소수의 지대 추구 행위를 위한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어느 쪽의 명분으로도 이는 합리화되지 않는다.

컨트롤 타워에 대해 극단적인 입장에서 반대하다보면 이와 같은 시장 규칙, 사회적 보호 측면에서의 정부 책임에 대해서도 포기하는 주장을 하기 쉽다. 정부는 악이 되므로 정부의 모든 행위도 악행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의 인터넷 정책 관련 논의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특별히 국내의 저항적 시민사회가 이런 경향을 보이는 걸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지향점인 복지국가 역시 국가 아닌가. 정책 논쟁에서 반대편에 있는 시장주의자들의 목표점인 규제국가 역시 국가다. 궁극적으로 시장에 사회안전망을, 경쟁을 설치하는 역할을 하는 건 국가고, 그 국가의 실제적 형태인 정부 외에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역할은 정부는 컨트롤 타워에 국한되지 않는다. 프레임 이론을 주장한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보수주의자들의 언어 프레임에 갇히기 때문에 진보가 항상 진다며, ‘코끼리'(보수의 프레임)를 생각하지 말아야 ‘코끼리’를 넘어설 수 있다 했다. 진보는 반보수의 게임이 아니라 진보의 게임을 할 때, 마이너스를 넘어서 플러스가 됐을 때 승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고 소비자 권익 보호에 나설 수 있으려면 컨트롤 타워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 한국 ICT 산업이, 그에 관련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뿌리내리려면 반정부의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정부의 역할이 뭔지에 대한 분명하고 적극적인 논의와 그의 정책적 입안과 실현, 평가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 ICT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은 과거의 답습도, 현재의 부정도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말로 미래지향적이려면 그들이 진행하는 정책이 한국 자본주의의 혁신성 강화와 민주주의의 형평성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며 그 과정이 필연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사조율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즉, 갈등을 피하기 위해 밀실행정을 택한다면 치통을 피하려다 발치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산업정책은 제대로 된 경쟁정책과 소비자보호정책에 기반했을 때 장기적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지, 집안 식구들은 모조리 차상위계층으로 전락했는데 장남 혼자서 고소득자가 됐다고해서 가정이 평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ICT 산업 내 정부의 다양한 역할과 이의 국가간 차이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정치학과의 존 자이스만 교수에 따르면(필자가 번역한 자이스만 교수의 2004년 논문 참조) 현시대는 산업혁명 초기와 비슷하다. 영국에서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나 공유지가 사유지가 되고, 빈민구호법을 통해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곡물법을 통해 상품시장이 등장했던 것처럼 정보통신산업은 가상재화의 거래를 촉진하고, 그 시장 안에서 재산,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등에 관란 논쟁을 야기한다. 시장이 이끄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는 정부의 간섭과 보호를 요구한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정부의 역할이 시대적 사명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사명은 컨트롤 타워가 전부가 아니다. 과거는 돌아오지 않지만 미래도 그저 오지 않는다. 미래는 반성하고, 성찰하고, 행동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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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http://www.flickr.com/photos/cacophonyx/2300181401.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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