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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님, IT 개발자 얘기 좀 들어주오”

2013.06.25

서울시가 IT 개발자의 설움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시청에서 6월24일 저녁 7시부터 약 2시간여 동안 진행된 ‘IT 개발자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청책토론회’에 약 100여명의 개발자가 모였다. ‘청책’은 ‘정책’을 잘못 쓴 말이 아니다. 서울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주제를 바꿔 ‘청책워크숍’으로 이어지고 있다.

행사에는 원래 토론회라는 제목이 붙기는 했지만,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과 얼굴을 마주한 개발자 모두 그간의 울분을 꺼내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쌓인 감정을 토해낸 문제가 여남은 명의 IT 개발자만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울시청 다목적홀을 가득 메운 IT 개발자의 설움은 사실 자칭 ‘IT 강국’인 한국의 적나라한 속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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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살아보자”

이날 토론회를 시작하는 발표를 맡은 이는 노상범 OKJSP 대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짧은 문장이 현장을 매운 IT 개발자들의 가슴을 때렸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어느 곳 하나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고, IT 개발자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지만, 사회와 정부의 도움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 대한민국 IT 개발자들이 처한 현실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IT 개발자들은 병원 영안실 등 열악한 환경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야근비를 받는 경우는 드물며, 소위 ‘보도방’이라고 불리는 일용직 노동 환경에 내몰려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보도방’은 갑을 계약 관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을 이르는 자조 섞인 농담이다. 갑이 전한 일을 을이 받고 을이 준 일을 병, 정이 받아 마지막에는 ‘보도방’의 일용직 IT 개발자가 모든 개발을 끝내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 갑이 발주한 2억짜리 개발 프로젝트가 ‘보도방’에서는 300만원짜리로 둔갑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단다. 사람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들의 울분에 어찌 아니 공감할 수 있으랴.

노상범 대표가 제안한 해결책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파견법이나 근로기준법과 같은 노동 환경을 지키는 기초적인 법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고, 갑이 발주해 완성한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개발자가 갖도록 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게 노상범 대표의 주장이다. 서울시가 나서서 소프트웨어 공학센터 형식으로 꾸준히 IT 개발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면 더 좋겠다. 현재 노상범 대표와 OKJSP는 개발자 협동조합을 오는 8월 설립한다는 자구책을 마련 중이기도 하다.

노상범 대표가 국내 IT 개발자가 처한 현실에 관해 요약한 직후부터 행사에 참여한 100여명의 눈과 입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가리켰다. 따지고 보면, 서울시만의 잘못은 아니다. 중앙정부에 꽂혀야 할 분노가 서울시와 박원순 서울시장을 향한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불공정 계약과 ‘을’, ‘병’, 그리고 ‘정’

계약관계의 불합리성, 그리고 갑과 을, 더 나아가 병, 정으로까지 이어지는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려는 목소리가 가장 컸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돈을 떼이는 일도 밥 먹듯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란다. 모든 노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근로기준법조차 무시한 환경에 처한 국내 IT 개발자들. 과연 프리랜서 개발자만이 겪는 문제일까.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서울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가장 신경 써 답을 내줘야 하는 사항이다.

신은지 DB 개발업체 대리

“개발 프로젝트를 계약할 때 1년 무상 유지보수로 계약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면, 거의 1년여 동안 무상으로 유지보수를 해줘야 합니다. 분명 개발 작업인데도 무상 유지보수라는 이유로 공임이 돌아오지 않죠. 기존 개발자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맡아 개발해야 하는데, 이 같은 계약 조건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이런 규정에 관해 규제나 규칙을 정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지보수는 서비스지만, 불공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성훈 12년차 SI 개발자

“많은 개발자가 야근이나 휴일 근무에 따른 수당을 제대로 못 받고 있습니다.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노동부에 요청을 해도 자료가 없거나 규제가 미비한 탓에 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죠. 계약업체가 작업을 지시할 때 ‘작업지시서’를 내리지 않으면 회사에서 강제적으로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작업지시서에 따라 야근, 휴일근무수당을 제대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혹은 회사가 지급하지 않은 수당에 관해 서울시가 대신 지불하고, 서울시는 추후 회사로부터 돈을 받는 식으로 운영돼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밖에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6시30분까지 근무시간으로 정해두는 식으로 불공정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고, 임금이 밀린 회사로부터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갑수 프리랜서 자바 10년차 개발자

“서울시만큼은 IT 개발 재하도급 단계를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갑이 돈을 주면 된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중간 단계를 거치며 그 돈이 사라집니다. 그 단계를 차지하는 이들은 갑 업체에 근무하다 나와 알선업체를 차리시는 분들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사무실에 책상과 전화기, 컴퓨터 놓고 일을 하는 거죠. 일이 넘어오면, 단계별로 프로젝트 기간이 줄어듭니다. 2년에서 1년, 1년에서 다시 6개월로. 그리고 돈도 함께 줄어들어요. 최종 단계에 있는 IT 개발자는 2억짜리 프로젝트를 300만원에 맡아 합니다. ‘보도방’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서울시가 프리랜서 개발자를 위한 표준 계약서를 만들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계약이 공정한지 아닌지 서울시가 직접 판단해 주고 감시해 준다면, 이 같은 문제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같은 개발자들의 심정을 솔직히 얘기해 볼까요? 갑이 주는 돈을 받을 수만 있다면, 밤을 새워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것입니다. 과정은 좋은데 결과가 나쁜 것 보다, 과정은 나쁘지만 결과만 좋게 나오는 것은 전체 산업 환경을 병들게 합니다.”

도안구 테크수다 기자

“IT 쪽을 14년 동안 취재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14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서울시가 다 들어달라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웃음). 갑을 관계와 재하청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돈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발주한 갑은 을과 계약하면 게임이 끝난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죠. 그 돈이 을을 통해서 어디로 어떻게 흘러들어 가는지 관심이 없어요. 최종 단계에서 300만원 받고 일 하는 개발자가 있다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죠. 발주자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업체와 인력과 돈의 흐름을 담은 명세서를 요구하면 이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역할

이른바 ‘갑을’ 문제는 서울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서울시도 IT 개발 발주 사업을 벌이고 있고,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많은 프로젝트를 개발자와 함께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의 IT 개발 발주 사업에 실망을 느낀 이도 적잖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공공 데이터를 공개하는 ‘정부3.0’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모든 공공 데이터를 열어 민간의 창의적인 활용을 돕겠다는 취지다.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나 아직 자유롭게 열람할 만한 데이터 환경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게 IT 개발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서울시와 중앙정부가 힘써 해결해야 할 지점이다.

양준철 온오프믹스대표

“저는 정부나 시청과 컨설팅 업무를 하기도 합니다. 서울시청에 제 아이디어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당시 서울시 답변은 “이미 대행사가 있으니 대행사를 통하지 않으면 일을 진행할 수 없다”였습니다. 아이디어에 관한 회의라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더이상 일이 진척되지 못한 것이지요. 서울시는 지정된 업체하고만 일을 하나요? 서울시가 스타트업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지 의문입니다.”

김기훈 게임개발업체 창업 준비 중인 개발자

“뉴욕 블룸버그 시장은 데이터 과학자를 중점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빅데이터와 관련한 얘기가 많지만, 빅데이터로 과연 뭘 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데이터센터를 많이 지어서 일자리만 늘리겠다는 식의 계획이 아니라 데이터를 활용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높일까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조성재 자유소프트웨어 운동가

“현재 소프트웨어 품질 정량화가 어려워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IT 개발 기술을 심고, 품질을 정량화해 평가할 수 있도록 현재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소프트웨어 공학센터를 설립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유효한 정책은 부족한 실정이죠. 서울시만이라도 소프트웨어 공학센터 주축을 이루는 IT 개발자들의 의지를 반영해 실질적인 정책을 도입한다면, 현재 IT 관련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부당한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선호 오픈날리지파운데이션코리아 개발자

“우리 단체에서 서울시 오픈링크 구축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가 많았어요. 정제된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인데다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것은 물론, 데이터의 일관성도 없었죠. 교육 관련 정보와 서울시 재정 데이터를 받고 싶으면 각각 접근해야 했습니다. 일관된 통로로 공공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더 품질 좋은 소프트웨어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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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희망은 소통에서 시작”

“많은 IT 개발자들이 ‘희망’을 달라고 말합니다. 전 집단지성과 소통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IT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의 현장 경험과 생각이 서울시를 채워 바꾸면, 서울시의 변화가 중앙정부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주신 의견을 초안으로 문제를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약 20여명의 청책토론회 참가자가 저마다 마이크를 잡았고, 수많은 아이디어와 불만과 과제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귀에 들어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의견을 듣고 즉각적인 답변을 내리기보다는 희망에 관해 얘기했다. 희망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선, 박원순 서울시장은 IT 개발 사업 발주의 재하청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직접도급을 활성화할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시가 만든 일감은 되도록 스타트업과 중소업체에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것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의지다.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데 꼭 필요한 공공 데이터도 더 편리하게 가공할 생각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불공정 노동 관행에 관해서도 서울시가 노동부와 심의 과정을 거쳐 공정한 야근을 하고, 제대로 된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갈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서울시의 청책토론회는 ‘라이브서울’ 소셜방송으로 통해 생중계됐다.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은 라이브서울에 접속하면 된다. 한때 동시접속자 수가 500여명을 넘기도 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해시태그 ‘#it청책’을 통해 수많은 IT 개발자가 마음을 함께 했다. 이날 청책토론회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 공무원이 해결책을 찾아, 오는 7월 중으로 서울시 홈페이지에 개선 방안을 올릴 예정이라니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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