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포럼] 디지털 시대, 사전의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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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종이사전을 들춰본 게 언제였더라. 공부가 일상인 중・고등학생도 종이사전을 쓰진 않을 것 같다. 전자사전이 있고, 전자사전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찾아주는 검색 서비스를 휴대폰으로도 쓸 수 있잖은가. 요즘 세상에도 종이사전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포털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사전을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바로 검색도 가능하니 종이사전도, 전자사전도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그래서일까. 사전을 만드는 곳이 없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 그 많던 사전은 다 어디로 갔을까. 뜬소문처럼 떠도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앞으로 우리는 포털에서 사전을 계속 쓸 수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관한 답을 찾고자 사전을 만들었고, 만들고 있고, 서비스하는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 일시: 2013년 6월19일 오후 4시
  • 장소: 블로터아카데미
  • 참석자: 안상순 전 금성출판사 사전편찬팀장,이승재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 언어정보팀장, 장경식 한국브리태니커 이사, 정철 다음커뮤니케이션 지식서비스 팀장, 블로터닷넷 정보라 기자

대한민국 사전의 위기

정보라 블로터닷넷 기자 이번 포럼의 가제는 ‘사전은 어디로 가는가’이다. 사전을 내던 출판사들이 더는 사전을 만들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린다. 지금에야 포털에서, 포털이 출판사에게 사용료를 내고 받아온 사전을 무료로 쓰지만, 앞으로 사전이 새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믿고 쓸 자료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안상순 전 금성출판사 사전 팀장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사전은 수익을 창출하는 품목이었다. 잘 나가는 출판사라면 영어 사전을 1년에 30만권 정도 팔았으니 수지 맞는 장사였다. 국어사전이나 기타 사전은 이보다 못했어도 괜찮은 수익 사업이었다.

디지털 사전이 등장하면서 종이 사전에 위기가 왔다. CD롬 형태 사전이 있었고, 전자수첩 형태의 사전도 있었다. 휴대폰 메모리에 사전을 담는 방법도 있었다. 지금은 온라인 사전만이 주류를 이룬다고 봐야 한다. 10년 전부터도 조짐이 보였는데, 최근 5년 사이에 많이 문을 닫았다.

사전을 만들던 출판사의 사전 편찬실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내가 아는 곳 가운데는 민중서림 한 곳만 살아 있다. 지금 판매되는 종이사전은 그동안 찍어놓은 것이고, 사전 개정 작업이나 새로운 형태의 사전 제작은 거의 중단돼 있다.

정보라 백과사전도 비슷한 상황인가.

장경식 한국브리태니커 이사 브리태니커에 1992년 입사했는데 당시 한국 직원만 1천명이 넘었고, 연 매출은 300억원 정도였다. 그 바탕으로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을 만들 수 있었다. 브리태니커는 1989년 CD롬으로 백과 사전을 만들었고, 1995년 ‘이제 디지털이다’라고 하여 전세계 방문 판매 조직을 1년 사이에 없앴다. 한국에서 종이책은 2002년판을 마지막으로 잘 안 팔리고 있다. 한국브리태니커는 편찬 기능을 유지하고 매년 20%씩 업데이트한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브리태니커 웹사이트에서 이용 가능하다. 편집자)

안상순 사전은 백과사전과 어휘 사전이 있는데 백과사전이 변화에 더 빨리 직격탄을 맞았다. 종이책의 위기를 가장 먼저 겪은 게 백과사전이다. 그 뒤 어휘사전으로 왔고, 단행본 형태의 종이책도 점차 영향을 받는다.

정철 다음커뮤니케이션 지식서비스기획팀장 백과사전이 가장 먼저 위기를 겪은 건 백과사전의 원래 역할이 가정 내 1차 참고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검색이 그 역할을 가져갔다. 백과사전은 온라인 백과사전과 경쟁한 게 아니라, 검색과 경쟁했다.

장경식 정보라 기자가 믿을 만한 정보를 어디에서 구할지를 물었다. 마샬 맥루한은 ‘물고기는 물 밖으로 나와야 물을 의식할 수 있다’고 했다. 사전의 물성이 사라져 사전을 찾아볼 수 없게 되니 ‘사전이 뭐였지?’와 ‘사전은 믿을 만한 것이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안상순 십수 년 전만 해도 학생들은 책가방에 두꺼운 사전을 넣어서 다녔다. 특히 영한사전 한 권씩은 넣었다. 그게 있어야 영어 공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전자사전이 나오며 전자사전을 갖고 다니지 않으면 공부 안 하는 애가 됐다. 지금은 그것도 필요 없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사전을 바로 이용할 수 있다.

장경식 그 모습은 나라마다 다른 것 같다. 브리태니커는 나라별로 자회사가 있는데 일본은 전자사전 시장이 부침이 있긴 하지만, 전자사전 자체의 매출은 유지된다. 카시오 사전은 지금도 잘 팔리는 것으로 안다. 반면 한국은 전자사전이 3년 전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해 지금은 시장이 없다.

이 모습의 차이는 어디에서 만든 사전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서 나온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영한사전은 민중서림, 영영사전은 콜린스 코빌드를 으뜸으로 여겼다. 최근 2,3년 새 그 개념이 사라졌다. 좋고 나쁜 걸 가리는 눈도 사라졌다. 그저 검색해 나오는 결과가 맞겠거니 하며 볼 뿐이다. 틀렸는지 맞는지 옥석을 고르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안상순 지금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서비스하는 영어사전이나 불어사전에 저작권이 표시되는가.

정철 다음 지식서비스 팀장 하단과 오른쪽에 쓰여 있지만, 인지는 안 되는 것 같다.(아래 다음과 네이버 국어사전 이미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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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순 포털에 들어가면서 포털 사전이 돼 버린 것 같다.

정철 지금 포털이 잘못하는 게 하나 있다. 뉴스처럼 사전 브랜드를 무색무취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포털이 변해야 한다. 일본 국어사전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이와나미 쇼텐(岩波書店)에서 만든 코지엔(広辞苑, 1935~), 산세이도(三省堂)에서 만든 다이지린(大辞林, 1988~), 쇼가쿠칸(小学館)에서 만든 다이지센(大辞泉, 1995~) 이런 식이다.그 이름을 보고 사는 사람이 꽤 있다. 사전마다 성격이 다르고 특색이 있고, 권위가 있다.

장경식 원래 사전류는 교육의 목적이 컸다. 좋은 정보를 잘 조직하여 배울만한 정보를 모은 게 사전이다. 지금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는 건 학생에게 굉장히 치명적인 문제인 것 같다.

안상순 사전을 생산하는 기구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으니 (어느 사전을 봐야 할지)옥석을 가리고 싶어도 가릴 수 없다. 그동안 ‘사전의 위기’란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사전 콘텐츠는 끝없이 키워야 하는데 어느 단계에서 성장이 멈췄다. 계속 고쳐야 생물이 되는데 죽어가고 있다. 이게 사전의 위기다. 현재 멈춘 지 얼마 안 됐다. 사전 출판사가 문을 닫기 시작한 지 한 5년 됐다.

그나마 국어사전은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사전 편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상업 출판사는 수익을 창출해야 그 수익으로 다음 작업할 수 있는데 수익이 막혀버리니까 더는 지속하기 어렵게 됐다. ‘국립국어원조차 사전에 손을 안 댔다면 우리나라 국어사전은 어떻게 되었을까’란 아찔한 생각도 든다.

사전 만드는 곳은 콘텐츠 독점 생산자가 돼 버려

이승재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 언어정보팀장 1990년대 초 국립국어원이 국어사전을 만들 때 국가가 국어사전을 편찬하면 민간 사전과 달리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 민간에서 사전을 만들 때 바탕이 되는 큰 규모의 사전, 원천 자원을 만들어 제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가 행정은 민간이 잘 되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결과만 두고 보면 국가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게 되는 현실이 돼 버렸다.

정철 ‘믿을 수 있는’이란 표현이 나왔던 것 같은데, 포털은 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거기에서 믿어야 하는 것은 이용자의 불만이다. 사전의 브랜드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 뿐 아니라 이 사전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용자가 정보를 어느 정도 신뢰할지 판단할 최소한의 정보가 더 필요하다.

장경식 사전 데이터는 고도로 정제된 데이터다. 몇십년에 걸친 편찬자의 감과 안목, 엄정한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다. 이러한 기준으로 노력하는 건 국어사전은 국립국어원과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백과사전은 저희만 남은 것으로 안다.

정보라 사람들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정보를 찾지, 더는 사전을 펴지 않는다. 통합검색 결과에 보이는 내용이 사전 항목에서 나온 건지 블로그 글인지를 크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다. 사전은 통합검색 결과 가운데 가장 간단하게 내용을 설명해주는 항목 정도 아닐까. 그렇다면 포털 서비스는 검색 품질을 높이려고 사전 서비스를 닦는 때가 올 수도 있겠다. 그럼 사전 편찬 작업을 출판사가 아닌 포털이 하게 되고, 또 그들이 해주길 바라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장경식 포털이 그 책임을 진다고 해도 포털은 국내에서 대형 2곳 뿐이다. 백과사전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서로 다른 특성으로 정보를 해석해 보여줘야 다양한 사유체계를 보여주는 문화가 싹튼다. (다음과 네이버 두 곳에서만 사전을 만든다면) 대한민국 문화는 평면적이고 단편화할 것이다. 정보라는 게 하나로만 규정되면 굉장히 무시무시하다. 한 번 왜곡되면 사고가 단절된다.

안상순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국어사전이 살아 있긴 하지만, 큰 역할은 하지 못한다. 사실상 국립국어원에 대적할 사전이 없고 독점이 됐다. 어떤 형태의 독점도 좋지 않다. 다양한 형태의 사전이 서로 경쟁적으로 나오며 여러 시각에서 정보에 접근했는데 그게 어려워진다면 우리에게 위기라면 위기다.

브리태니커는 온라인 사전을 스스로 감당하고, 소위 영어권 출판사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하니 상황이 상당히 낫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다. 지금 온라인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곳은 포털인데, 포털에서 그런 역할을 해줄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누군가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이 (사전 편찬) 역할을 지속하지 않는 한 사전의 위기는 심화할 수밖에 없다.

사전 작업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 축적돼야 한다. 사전 체제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해 적어도 10년 이상, 2,30년이 걸려야 제대로 된 경험이 쌓인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경험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다 다시 사전을 만들려고 할 때, 사전을 만들 인력을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안타깝다.

이승재 국립국어원이 사전 작업할 때 가장 어려운 게 그거다. 연속, 지속하기. 사전을 7~8년간 만들면 그 기간에 수십명의 인력이 숙련된다. 그런데 사전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 인력을 유지하며 써먹기 어렵다. 새로운 걸 만들지 않는 이상 정부 예산을 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만들고 나서 그 팀을 해체했다. 그런데 사전을 만들 땐 아무나 당장 데려다 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정철 두산도 사전편찬팀을 해체했다.

장경식 사전 편찬 기술은 최소 2~3년 이상 묵어야 감을 익힌다. 훈련된 전문 인력이 많이 사라졌다. 백과사전 분야에선 동아원색대백과 만들던 분들이 사라질 무렵, 브리태니커가 작업하고 두산백과 개정판이 만들어지고 동서문화도 만들었다. 그때 백과사전 붐이었는데, 그분들이 다 사라졌다. 네이버 지식사전은 전문가가 썼지만 사전은 아니고, 책이지만 사전은 아니다. 사전 만드는 저변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이승재 그래서 사전 사업할 때 인력을 열심히 훈련하는 게 국립국어원의 역할 중 하나란 생각을 한다.

정철 장경식 이사 말에 부연 설명을 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웹상에서 사전이라고 보는 것 상당수가 해당 항목에 대한 설명문이지 사전처럼 압축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세하게 기술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덜 기술하는 걸 고민해서 만드는 게 사전이다. 위키백과는 여러 사람이 참여해 서술하는 식으로 사전이 가진 극도의 건조함은 없다.

장경식 그러다 보면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닌 게 된다. 정보의 홍수라고 하는데 홍수 땐 먹을 물이 없다. 지금 학생들은 정보의 홍수에서 뭘 골라야 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승재 사전의 위기라기보다 콘텐츠의 위기다. 사전이 이런 위기에 몰리지 않으려면 재생산이 활발하게 되고 그게 이용자에게 활발하게 쓰여야 한다. 지금 그 유통은 포털에서 하는 셈이다. 포털이 사전에 신경을 쓰게 하려면 사전 콘텐츠가 좋아야 수익이 오른다는 등식이 있어야 하나.

안상순 아직은 사전 이용자가 사전이 죽어가고, 콘텐츠가 죽어가는 걸 체감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인식하게 될 것이다. 네이버의 사전 서비스인 지식백과에서 ‘호적’을 검색하면 호적이 아직도 현행제도로 나온다. 호적법이 폐지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 손질이 안 됐다.

(호적은 2008년 1월1일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하며 폐지됐다. 편집자)

네이버 지식백과 호적 검색naver_search_dic_201306_2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니고 늘어나면, 제일 먼저 포털이 ‘옛날 콘텐츠를 가져다 썼더니 문제가 불거지는구나’라고 위기를 느낄 것이다. 그런데 재생산할 데가 없어졌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포털이 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장경식 전에는 (포털 서비스가 내세우는 기조가) ‘찾아준다’였다면 이젠 ‘믿을만합니다’라고 해야 할 거다.

이승재 지금은 검색하면 사전도 나오고 뉴스도 나오고, 질문하면 답변 형태로도 나온다. 그걸로도 충족하니까 사전 콘텐츠를 업데이트하지 않아도 대체재가 있다.

정철 사전이 다른 정보보다 늦게 개정되면 결국은 믿을 만한 정보가 안 되는 거다. 결과적으로 이것에 대해서 아우성이 있어야 한다. 원성을 제일 처음 맞닥뜨리는 채널은 포털이 될 거다. 포털 내부에서 의사결정을 하든지 외부에 전하든지, 갱신하는 조직을 만들든지 그것에 대한 에너지는 원성이어야 한다.

이승재 국립국어원은 네이버에 표준국어대사전 DB를 제공하는데 그쪽을 통해 들어오는 민원이 꽤 된다. 다음쪽도 사전 데이터에 관한 민원이 많이 오는 편인가. (네이버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서비스, 다음은 고려대학교의 한국어대사전을 서비스한다. 편집자)

정철 생각보다 이용자는 제보 자체를 많이 하지 않는다. 아주 구체적으로 제보하는 경우는 족보와 관련한 것과 같이 이해당사자가 연락할 때다.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서술에 관하여 ‘내가 찾아보니 근거는 이러하여 고쳐야 한다’와 같은 제보는 거의 오지 않는다.

장경식 우리가 작업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 부담 없는 수준으로 온다. 많이 오면 우리도 좋을텐데 말이다.

안상순 두 곳과 달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민원이 상당히 많은 걸로 안다. 백과사전에 관한 관심보다 일반인이 국립국어원에 보이는 관심이 큰 것 같다.

장경식 그건 규범성 때문인 것 같다.

이승재 백과사전 의문점은 다른 데서 충족 가능하지만, 국어사전은 다른 데서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철 국어에 관해서는 다른 곳에 물어도 국립국어원이 정한 규범에 따르므로, 최종 권위자인 국립국어원에 직접 물어보는 것 같다.

포털에서 종이사전 내용을 무료로 찾을 수 있는 현실

정보라 출판사가 사전을 더는 만들지 않고, 그들이 사전으로 수익을 얻지 못한다는 얘기가 앞서 나왔다. 전자사전과 달리 포털에 일정 비용을 받고 사전 데이터를 제공하면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무료로 사전을 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종이사전이나 전자사전을 사지 않게 된다. 포털에서는 사전 데이터를 가져갈 때 이 부분을 제대로 보전하지 않은 것인가.

안상순 종이사전 만들던 데서 종이사전 판매가 급감해도 포털에 대여해 운영할 만했다면 문을 닫을 이유가 전혀 없다. 포털에 사전 데이터를 제공하고 받는 비용은 과거 수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푼돈이다. 그런 걸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 출판 자본이 손을 떼고 난 진공 상태를 누가 메워줄 것인가.

장경식 포털은 검색 빈도에 따라서 그 데이터의 유용성을 판단하는 것 같다. 사전은 전반적으로 검색 빈도가 낮다. 일반 어학사전은 양도 적고 거의 푼돈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 걸로 안다.

이승재 사전에도 메인이 있고, 끼워 맞추기용이 있는 것 같다.

장경식 민중서림 영한사전은 책은 작지만, 그 안에 든 데이터는 어마하다. 원고지로 치면 2~3만장에 달할 것이다. 그 안에 데이터를 바꾸고 신조어를 넣으려면 페이지도 바꿔야 한다. 편집부가 최소 10여명은 유지돼야 한다. 이는 1년 인건비만 몇억원이다. 포털에선 몇억원 수익이 나야 편집실을 유지할 것이다. 검색 빈도에 따라 팀을 꾸린다면, 사전의 검색 빈도가 낮으니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승재 사회가 변화하며 의사소통 방식이 변했고, 종이사전은 쇠퇴할 수밖에 없는 변화가 왔다. 종이사전은 실시간 수정이 불가능하니 몇 년 만에 바꾸면 느릴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느긋하게 참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온라인으로 가는 건 맞는데 매체가 바뀌며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했다.

정철 사전엔 ‘꽃배달’이 없다. 그런데 포털이 버는 돈은 ‘꽃배달’ 검색에서 나온다. 사전은 그런 데(돈을 버는 키워드)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게 없지만, 검색 품질을 유지하는 뼈대가 된다. 사전 없는 검색 결과에 대해선 뭐라고 하니, 사전을 유지한다.

안상순 사전은 포털 검색 결과에 떠야 할 구색이다.

정철 사용자가 ‘사전이 왜 이따위야’란 얘기를 하면 움직일 거다. 포털은 이용자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안상순 사전이란 콘텐츠가 위기는 아니다. 사전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그 수요에 대응해 사전을 개발할 곳이 없어지는 게 문제이지.

백과사전에 관한 욕구는 검색으로 커버가 될 것이지만, 어휘사전은 좀 다르다. 국어의 어떤 단어에 관한 심층적인 정보, 말 자체에 대한 심층적인 정보는 검색창에서 해결하기가 어렵다. 어휘사전을 통해서만 깊은 정보를 줄 수 있다. 그런 고급 정보를 원하는 독자가 자꾸 불만을 제기해 사전이 움직이게 하는 힘이 돼 주면 좋은데 그 동력이 언제쯤 생길지는 미지수다.

정철 사전 쪽은 위기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 빈사상태다. 위기는 10년 전이었고 지금은 빈사가 맞다. 어학사전 만들던 출판사 한 군데를 제외하고 어디도 편찬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은 빈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잠시나마 영어 번역사전이 메워주고 있다. 영한사전은 외산 사전이 도배했다. 콜린스코빌드와 옥스퍼드, 롱맨, 맥밀란 사전이 한국어로 번역됐는데 그중 옥스퍼드는 네이버에 공급된다. 이들 사전의 개정판이 과연 나올까? 그건 모르겠다. 영어 번역사전이 등장해 몇 년 간의 공백을 메웠다고 해도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흘러간다.

결국은 사전을 공공재로 생각하는 게 맞다. 이승재 팀장은 국립국어원이 사전 인력을 배출하는 게 국가의 의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이 가진 것보다 더 좋은 사전 편집 시스템을 찾기 쉽지 않다. 역사 용어 사전을 만든다 치면, 국립국어원의 사전 편집 시스템으로 편집한다든지 할 수 있겠다. 국립국어원에서 좀 더 예산을 확보하여 사전을 잘 만들 수 있게끔 어디엔가 펀딩을 한다든가, 좀 더 큰 기업에서 사전 편찬하는 데 비용을 내고 그걸 자기 홍보 채널로 쓴다든지, 그런 형태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존에 있던 건 빠져나가는데 어떤 것도 채워지지 않고 사용자의 목소리도 없다. 관심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안상순 콜린스코빌드나 롱맨 같은 사전이 영한사전으로 나오면 굉장히 질 좋은 사전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영어의 대역어로서 제시되는 한국어가 사실은 한계가 있다. A라는 언어가 B라는 대역어로 제시됐을 때 1대1 대응하느냐, 대부분 안 된다. 이(二)언어 사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걸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언어사전을 만드는 어려움이다.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섬세한 풀이가 가해져야 한다. 예전 국내 영한사전은 일본 사전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번역사전이었다.

‘해피=행복하다’라는 식의 접근법으로는 영어를 학습하고자 하는 사람이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한계를 메울 수 있는 영한사전이 개발돼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일본의 영어사전에 시도되고 있었다. 우리도 미약하긴 하지만 했다.

영어사전의 경우조차 당사자가 만든 번역사전을 갖다 놓고 영어를 배우는 건 사실 불행한 일이다. 한국어에 대한 부분은 우리가 고민해야지, 그 사람이 고민할 수 없다. 두 언어의 미묘한 차이에 대한 섬세한 설명이 들어간 영어사전이 개발돼야 하는데 그게 끊겼다.

정철 번역사전은 영어를 영어로 풀이한 걸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지, 대역어를 제시하지 못한다.

꺼진 불씨를 다시 지필 힘은 이용자 관심

정보라 오늘 블로터포럼을 꾸리며 ‘사전은 어디로 가는가’에 관한 답을 얻을 거로 기대했다. 네 분과 2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눴으나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사전의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밝은 장래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안상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라는 게 결론이다.

정철 요즘 이런 느낌이 든다. ‘어둠이 금방 걷힐 것 같지 않다.’

이승재 사전이 어디로 가는가란 물음에 빈사란 말이 나왔다. 그 빈사라는 얘기는 어쨌든 생산자가 없어서일 수 있지만, 소비자가 옛날보다 덜 찾는다는 방증일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관한 고민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철 줄어드는 것은 맞는데 멸종 위기에 처했다. 사전 만드는 사람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필요가 있게 되는 거다. 블로터닷넷 사무실로 오는 길에 보니 근처에 가야금 전수관이 있던데 이제 사전 만드는 사람은 국립국어원에만 있지 않은가. 사전처럼 많은 사람이 쓰는데도 박대받는 영역이 또 있을까.

안상순 사전 이용자가 사전이 없다는 걸 느껴야 구원 투수가 나타나는 것 아닌가. 우리처럼 사전을 한 사람이나 위기라고 느낀다.

장경식 같은 출판 종사자라고 해도 못 느낀다. 일반 출판하는 편집자는 사전 편집을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다른 일이다. 사전은 사전을 아는 사람끼리만 모여서 고민한다. 진공상태다.

이승재 다른 나라는 어떤가. 한국만 이런가.

장경식 5년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독일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도서전)에 가면 독일어 사전이 다양한 버전으로 큰 부스를 차렸다. 일본쪽 출판사 한 곳도 예년엔 사전을 전시하던 부스에 단행본, 만화, 학습참고서를 전시했다. 전반적으로 이런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안상순 이 흐름을 피할 길이 없을 거다. 종이라는 매체의 영향력이 급속하게 위축하는데 특히, 그 정도가 사전에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에서 자유로울 나라는 별로 없다.

정철 일본어는 일본대백과가 야후에 공개된 지 2년도 안 됐다. 이는 상징적이라고 본다. 저작권을 강하게 지키는 나라인데 온라인에 공개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거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온라인에 공개한 일본대백과 수준은 일본어 위키백과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정보라 사전의 위기는 콘텐츠에 제값을 치르지 않는 문화에서 온 것이 아닐까. 사전이 주는 간결하고 정제된 정보가 필요하지만, 이용 비용은 내고 싶지 않은 거다. 포털에서 무료로 찾을 수 있으니까. 만화나 음악, 영화, 책, 잡지, 신문 등도 포털이 돈을 주고 사서 무료로 제공하지 않는가. 사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장경식 사전은 문화 콘텐츠의 기반이다. 역사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게 중간에 떴는데 나중에 필요를 느낀다면 지금 이 시대는 기록이 안 되어 있을 것이다.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 국가적・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포털 같은 관련 업체는 자선 사업보다 조금 더 키워서 장학 사업으로 키우면 어떨까.

이승재 국가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문화라는 게 우리 언어에서 나오는 거고 한국어를 세계화하려면 우리말로 된 콘텐츠가 풍부해야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게 우리말로 된 사전류로, 정제된 기본적인 콘텐츠다. 그 나라를 대표할 국어사전, 백과사전이 부실하다면 어느 누구도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높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안상순 기업도 사회적 책무를 느껴야 한다고 본다. 한글학회가 ‘큰사전’을 만들 때 1948년 록펠러 재단에서 종이를 대줬다. 미국의 기업이 저 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가 사전 만드는 데 돈을 낸 것이다.

장경식 우리나라 교육 과정이 획일적이고 주입식인 게 크다. 다른 나라 사전이 명맥을 유지하는 건 학생이 정보를 찾아 구성해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는 데 사전이 필요해서다. 그 과정에서 ‘콘텐츠가 낡았다’, ‘제대로 된 정보다’, ‘아니다’를 판단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잘 정리된 참고서로 수동적으로 공부한다.

정보라 영어 참고서, 국어 참고서 한 권이면 사전과 같은 참고도서를 들출 필요가 없긴 하다.

정철 우리나라가 지금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한자사전을 만들었다. 단국대에서 30년간 만들었다. 대단한 업적이다. 그런 걸 내놓으면, 중국 대만에서도 긴장할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그럼 공부하는 국가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이승재 사전이 비슷하게 퍼져 있었다면, 변화가 있어서 예전엔 범용 콘텐츠가 있었다면 이젠 사전이라도 특정 목적으로 잘개 쪼개져 정제돼 존재할 것 같다.

안상순 특수 사전이 다양한 형태로, 그동안에도 많이 나왔다. 방언, 분류 사전이라든지. 우리도 품목은 그동안 다양해졌다. 그러던 차에 이런 위기가 온 거다.

정철 결국은 개별 사전의 브랜드가 중요하다. 브리태니커는 사람들이 ‘브리태니커는 한 번 봐야겠구나’라고 생각하지 않나. 매체로서 브랜딩이 좋은 것 같다.

장경식 그게 개성을 확보하고 다양성을 만든다.

이승재 종이사전은 알게 모르게 공간을 엄청나게 제약했다. 종이사전에서 전자사전(여기에선 디지털 사전)으로 바뀌는 것은, 종이사전이 가진 많은 제약을 벗어버리는 거다. 사전의 형태라든가 확장성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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