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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동의 잉여로운 독립잡지 ‘월간 이리’

2013.06.28

창간호부터 2013년 6월 발행된 30호까지 종이와 PDF 파일로 배포되는 잡지가 있다. 이 잡지 표지는 강렬하지만, 내지는 썩 세련되지 않았다. 얼핏 보면 대충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 읽다보면 묘한 매력이 있다. 독립잡지 혹은 인디잡지라고 불리는 잡지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매력이다.

‘월간 이리’는 서울 상수동에 있는 ‘이리’란 카페에서 발행하는 무료 잡지다. 이주용 화가가 표지를 디자인하고 카페 직원으로 일한 이훈보 씨가 필진 섭외와 원고 교정, 편집 등을 맡는다. 2011년 1월, 창간호를 낸 뒤 매달 1일(종종 이보다 늦게 나올 때도 있다)이면 ‘월간 이리’ 블로그에 PDF 파일을 올린다. 카페에는 종이로 찍은 인쇄본을 200부씩 비치한다.

# 오해 1. 기업이 사보를 내면, 카페 이리는 ‘월간 이리’를 만든다

카페 이름과 제호가 같아 ‘월간 이리’를 카페 비치용 잡지라고 생각했다. 공짜로 비치하는 김에 카페 이름을 알릴 겸 인터넷에 잡지 파일을 무료로 올리는 것이겠지. 편집자 이훈보 씨를 만나 물어보니, 아니란다.

월간 이리 편집자 이현보

▲이리 카페에서 만난 ‘월간 이리’ 편집자 이훈보 씨. 

월간 이리는 이훈보 씨가 2010년께 내던 잡지 ‘고민과 잡담’에서 시작했다. 여러 사람에게 기고를 받아, 원고가 도착한 순서대로 실은 잡지였다. 이렇게 만들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완성도가 높아지리라 생각했는데 1년 반을 해도 똑같은 모습이었단다. 그래서 ‘고민과 잡담’은 그만뒀다.

그리고 1년쯤 지났을까. 이훈보 씨는 카페 사장에게 ‘이런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 사장이 ‘가게 이름을 딴 잡지가 나오면 좋겠다’라고 한 말도 떠올랐다. 사장은 ‘그러마’라며 매달 인쇄비를 대준다고 했다.

그 ‘이런 잡지’가 바로 ‘월간 이리’다. 이훈보 씨가 만들려는 ‘이런 잡지’는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했다. 예술 작업하는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지나치게 감성적이지도 가볍지도 않고, 세련미보다 덜 가공된 형태여야 한다는 3가지 생각은 창간호를 만들 때부터 줄곧 유지한 월간 이리의 목표이다.

이리 카페가 홍대에서 상수동으로 이사온 때와 월간 이리 창간 준비 시기가 겹친다. 혹시 월간 이리는 홍대의 상업주의에 대한 저항하는 의미를 품은 게 아닐까. 이훈보 씨는 고개를 저었다.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나선 일사천리로 잡지 제작에 돌입했다. 기획회의도 없이 우선 아는 사람들에게 원고를 부탁했다. 필진은 쓰고 싶은 걸 쓰게 하되, ‘고민과 잡담’과 달리 편집에 신경을 쓰자고 생각했다.

# 오해 2. 독립잡지라고? 흠… 한가로운 얘기만 하겠군

PDF 파일을 내려받고 페이지를 훌훌 넘기며 든 인상은 뭐랄까, ‘잉여’로움이 가득했다. 잡지야 취향 따라 읽는 거라지만,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출퇴근길에 치이는 일하는 사람의 삶과 거리가 먼 아닐까.

 ▲월간 이리 속은 외부 필진이 채운다.

이훈보 씨는 월간 이리를 만들며 딱히 독자층을 정하지 않았다. 팔지 않는 잡지여서일 수도 있다. 그는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야만 기본 색깔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이유를 말했다. 이 말도 맞다. 상상 속의 독자, 혹은 취향 다양한 독자 중 목소리 큰 독자의 얘기에 맞춰 잡지가 갇힐 수 있다. 처음 세운 목표, 그대로 밀고 가는 게 월간 이리를 월간 이리답게 만드는 길이리라.

독자를 그려본 적은 없어도 10만 독자를 모으는 게 꿈이다.

독자가 늘면 우선 다양한 필진을 모아 의학, 지질학, 무속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얘기를 품을 수 있을 게다. 또, 10만 독자가 있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명인 인터뷰를 할 수도 있겠다. 이훈보 씨는 “누가 뭘 찍고 뭐 하는지는 다른 데서도 하니 우리 같은 사람은 다른 얘기를 하면 어떨까”라며 “딴지일보도 이런 걸 하지만, 월간 이리는 다르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훈보 씨는 광고를 싣고 필진에게 원고료를 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금 월간 이리 필진은 원고료를 받지 않고 기고하고 있다. 월간 이리가 나중에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화두를 던지길 기대한다고 이훈보 씨는 말했다.

# 오해 3. 애써 만든 잡지를 인터넷에 PDF 파일로 뿌리다니 대충 만드나 보지, 뭐

이훈보 씨는 월간 이리를 인디자인으로 제작해 PDF 파일을 인쇄소에 보내고, 그 파일을 드롭박스와 온라인 잡지 서비스 ‘이슈’에 올린다. 차이점이라곤 인쇄할 땐 검정 잉크만 사용해, 흑백과 컬러라는 점뿐이다. 표지 디자인은 두꺼운 붓으로 휙휙 그린 듯하다.

알고보면, 월간 이리는 정성껏 만들어진 잡지다. 이훈보 씨는 기고받은 원고를 잡지에 넣으며 꼼꼼하게 읽고 때론 필진에게 집필 의도를 묻는다. “무가지라고 얕보일 수 있어 글이 감성적으로 흐르는 걸 막는 편이에요. 그런데 연재 시작할 때 얘기를 주로 온라인으로 하는 터라, 문체 때문에 오해를 살 수도 있어 조심스럽죠.”

감성적인 글은 호불호가 분명해 독자가 해당 글을 아예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진에게 ‘이게 좋아?’라고 되묻는 대신 ‘왜 좋은지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한다.

월간 이리는 글을 게재하는 순서를 정하는 데에도 공을 들인다. “편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본문이 잘 전달되느냐이지요. 잡지이다 보니 순서도 신경 써요. 읽다가 질리지 않게 해야죠.” 글만 많으면 독자가 지칠 수도 있어 군데군데 사진이나 이미지, 만화도 외부 필진에게 받아 싣는다.

# 오해 3. 기고 받은 글로 30호까지 만든 건 필진이 넘치는 덕분

편집자인 이훈보 씨도 종종 글을 쓰지만, 월간 이리는 외부 필진의 원고로 만들어진다. 필진의 원고가 월간 이리와 맞는지를 따져보면서도 원고료는 지급하지 않지만, 30호까지 만들었다. 나름 ‘그 바닥’에서 유명한 잡지가 된 것일까.

필진 구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필진 한 사람의 연재가 끝날 때면 ‘새 필진은 어떻게 구하나…’ 생각하죠.” 월간 이리는 필진을 구하며 최소 3개월 연재할 것을 약속하는데 한 달에 2건 정도 기고 문의를 받는다. 월간 이리에서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외부에 기고 의사가 있는지 문의한다.

온라인으로 받아보는 독자는 어림잡아 1천명에서 2500명 사이로 추산된다. 한 달 블로그 방문자 수가 5천명 정도인데 절반 혹은 5분의 1은 읽을 거라고 짐작해 어림잡은 수치다. 읽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필진 찾는 것도 쉽진 않으리라. 그래도 창간호가 마지막호인 독립잡지가 수두룩한 걸 떠올리면, 30호까지 발행된 월간 이리는 주목할 만하다.

“필진들은 잡지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기고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격주도 느리다고 하는데 월간으로 제작하면 더 알차야 하는데 인디는 그것도 쉽지 않죠. 꾸준하게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뭔가를 하려면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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