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CT 정책에도 ‘버크만센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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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주요한 의사 결정이 싱크탱크(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두뇌집단)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싱크탱크의 나라다. 그 점은 ICT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보면 알게 모르게 싱크탱크에서 연구, 발표한 내용들이 정책에 발표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올해초 미국 공화·민주 양당이 모두 지지를 표명한 스타트업 비자 법안(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이민법 개정안)의 법안 입안 과정을 보면 배후에는 카프만 재단이 존재한다. 카프만 재단은 해당 법안 초안을 제시했을 뿐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련된 연구 자료 발표를 통해 법안이 양당은 물론 국민적 지지를 얻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건 정책의 방향을 잡는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학술 연구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ICT 정책 연구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곳 중에 하나는 하버드의 버크만 인터넷과 사회 센터를 꼽을 수 있다. 1998년에 하버드 로스쿨에서 설립한 이 센터는 이제 학제간 연구센터로 발전했다. 제도경제학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종합한 네트워크 이론가로 주목을 받는 요하이 벤클러, 사이버 공간의 법제화 연구에 기여했고 미국 의회 개혁론의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로렌스 레식, 하버드 컴퓨터학과, 케네디스쿨, 로스쿨 모두에서 교수직을 갖고 있는 조나단 지트레인을 비롯해 미국과 전세계 전역의 주요 인터넷과 사회 관련 연구자들을 연구위원으로 포섭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단순히 ICT 관련 주요 정책을 짜내는 걸 넘어서 관련된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모이고, 만나고,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일종의 플랫폼으로 작용한다.

이런 미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한국은 ICT 정책에 기여하는 싱크탱크의 역할이 거의 부재하다. 물론 1980년대에 설립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등 ICT 관련 국책연구소가 있긴 하다. 하지만 국책연구소의 특성상 정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새로운 관점에서 정책 제안을 하거나 정부가 제시한 정책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물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그런 점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를 중심으로 해서 창조경제를 핵심 정책 아젠다로 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차원에서 정부 정책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따지는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그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좁다는 문제가 있다. 국내외에서 관련 연구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이 계속 연구를 진행하려고 해도 여건이 좋지 않은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한국에도 버크만 센터 같은 싱크탱크를 정부나 관련 대기업이 후원해서 만들어달라는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의 축이 미국에서 동아시아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ICT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지금은 실리콘밸리가 ICT 발전의 중심이지만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지의 동아시아 ICT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통합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ICT 정책과 동아시아 지역 연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싱크탱크를 설립해 활성화할 수가 있다면 버크만 센터와 차별된 고유한 경쟁력을 가진 싱크탱크를 설립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 이 곳을 통해서 국내외 인터넷 정책 연구를 담당할 인재들을 키워낼 수 있다. 이런 강점이 있다면 하버드 버크만 센터 외에도 영국의 옥스포드 인터넷 연구소(OII), 혹은 인도의 뱅갈로어 인터넷과 사회센터 같은 유사 싱크탱크와도 교류할 만한 근거도 생긴다. 한국을 글로벌 ICT 정책 발전의 또 하나의 축으로 만들 수 있다.

인터넷만 빠르다고 IT 강국이 되진 않는다. 종합적인 측면에서 고르게 잘 해야 한다. 정치인, 관료, 기업도 잘 해야 하고, 그들을 때로는 견제하고 때로는 지원하는 시민단체와 연구조직도 힘을 키워야 한다. 요즘 자주 강조되는 생태계의 논리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 인터넷 산업이 놓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실력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싱크탱크가 정책을 만들고 사람을 키워야 한다. 아시아가 세계 경제를 이끄는 21세기에, ICT 시장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은 한국 ICT 정책을 이끌어나갈 싱크탱크의 역할이다.

berk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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