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대기업·벤처에 바라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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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메이션8은 벤처기업에 돈을 대는 투자 전문 업체입니다. 본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습니다. 자본금 4억4800만달러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주로 미국 IT 벤처기업에 투자해 왔습니다. 그런 포메이션8이 7월25일 한국을 찾아 청담동 씨네씨티에서 투자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앞으로 한국 IT 벤처 업체에 관심을 갖겠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베이징과 싱가포르, 상하이에 사무소를 내고 아시아 벤처 발굴에 나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날 포메이션8이 개최한 설명회에서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가 무대에 올라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주제는 ‘한국 벤처, 대기업에 바라는 점’. 구본웅 대표는 10여 년째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투자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들어보니 구본웅 대표가 그동안 밖에서 한국을 바라본 감상에 분석을 곁들인 얘기였습니다. 구본웅 대표는 “나름대로 느낀 바”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200여명의 벤처 업체 관계자 중 많은 이들은 구구절절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겁니다.

구본웅 대표가 들려준 얘기는 사실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직접 실천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구본웅 대표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이번에는 좀 더 오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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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가장 왼쪽)

공인회계사 정신을 버리자

“한국 벤처업체를 발굴해 투자를 유치하다 보면, 종종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언제쯤 수익이 발생한다는 거요?” 벤처업체의 미래 가능성보다는 얼마나 빨리 수익을 낼 수 있느냐만 따진다는 얘깁니다. 모두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업체가 되길 바라면서도 구글과 페이스북이 오랜 시간을 거쳐 수익을 내는 업체가 됐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벤처의 성공과 성공적인 투자는 결코 계산기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엔지니어는 삼성·LG 떠나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에는 전세계 굴지의 업체가 많이 있습니다. 모두 가고 싶어하는 업체이기도 하죠. 하지만 실력 좋은 엔지니어가 모두 삼성전자나 LG전자에 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종종 뛰어난 엔지니어가 더이상 삼성전자나 LG전자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를 듣곤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반갑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오히려 대기업에도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뛰어난 엔지니어가 벤처를 설립해야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이들과 협력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포메이션8은 이 같은 분위기가 더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한국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돈과 인력만으로 벤처가 되나

“저는 한국 업체에 실리콘밸리에서 발굴한 좋은 IT 업체를 소개하는 일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그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이 30여명 규모에 인수 비용은 1천억원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으레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수할 게 아니라)그럼 한 200명 규모에 500억원 투자해 한국에서 그 업체 만들면 안 되나?”

안 됩니다. 작은 조직으로 시작한 ‘인스타그램’이나 옛 ‘유튜브’ 등이 대표적입니다. 비슷한 인력과 자본으로는 따라 할 수 없는 그 벤처업체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분명 대기업은 못 하지만 벤처업체는 할 수 있는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말을 듣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격렬히 논쟁하라

“포메이션8 조직 안에서는 논쟁이 활발히 일어납니다. ‘너는 이 업체에 투자하고 싶어 하지만, 난 별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싸우는 식이죠. 이 같은 논쟁을 거쳐 마지막에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국내 업체 구조는 밑에서부터 위로 결정권이 올라가게 돼 있죠. 밑 단계부터 이미 모든 것이 결정돼 있습니다. 아주 평화롭습니다. 한국은 논쟁이 이뤄지기 매우 어려운 구조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을 때는 논쟁해야 합니다. 논쟁을 거쳐 빨리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죠. 이 같은 논쟁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아이디어와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논쟁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CFO는 제동을 거는 이들이 아니다

“한국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이거 하면 돈이 이만큼이나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바로 CFO라는 것이죠. 하지만 CFO는 모든 일에 제동을 거는 인물이 돼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격렬하고 건강한 논쟁을 통해 마지막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CFO는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할게 아니라 ‘이런 것도 고민해봐야 한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부는 벤처 살리기 그만둬라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있는 자리에서도 대놓고 얘기하곤 합니다. 벤처를 한국 정부에서 나서서 키워주려는 정책 말입니다. 정부는 끊임없이 벤처업체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요즘은 ‘창조경제’가 핫이슈입니다. 그 주문을 받는 이들은 결국 대기업이나 정부부처입니다. 그러면 모양은 우선 만들어집니다. 대기업이 어떤 벤처와 손잡는 식이죠. 하지만 이 같은 협력은 결국 틀어집니다. 진짜 협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장갑을 낀 손으로 악수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든지 장갑을 벗기만 하면 스킨십한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정부가 지나치게 벤처 살리기를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벤처에 투자하거나 협력하는 시늉만 내게 된다는 것이죠. 일단 정부가 원하는 대로 모양은 갖춰놓아야 하니까요. 벤처가 진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협력으로는 안 됩니다.

한국에서 ‘갑을’ 논쟁이 뜨거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갑은 앞으로 을 없이는 목표한 지점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기업도 벤처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음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벤처업체와 협력해야 합니다. 벤처업체 편에 서서 함께 싸워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대기업과 벤처 모두 잘 되는 산업 생태계가 꾸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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