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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보니] 아톰 칩 품은 안드로이드폰, 레노버 ‘아이디어폰 K900’

2013.07.26

인텔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불과 1년 전만 해도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꽤 가까워졌다. 만져보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제품도 여럿 나왔다. 그 중에서 레노버의 ‘아이디어폰 K900’을 며칠간 직접 만져본 뒤 확신이 섰다. 결론은 아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쓸만하다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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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인텔이 아톰 프로세서를 처음 내놨을 때 세상은 넷북에 열광했지만 사실 인텔의 속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같은 형태의 제품이었다. 이를 제대로 만들어 줄 짝을 찾지 못했고 아톰 프로세서 자체도 성능, 전력, 열, 그리고 운영체제 지원에 대한 모든 채비가 안 되어 있었다. 넷북은 유행처럼 번졌지만, 정작 다른 기기로 확장되진 못했다. 그저 싼 노트북 내지는 윈도우를 돌릴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대변될 뿐이다.

돌아보면 인텔도 나름 노력은 해 왔다. 직접 ‘미고(Meego)’라는 이름의 리눅스 기반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시제품도 내놓았다. 아톰 프로세서와 미고 운영체제를 얹은 태블릿은 몇 년 동안 대만 컴퓨텍스를 비롯한 세계 IT 전시회의 단골이었다. 문제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고 실제 제품이 나오지도 못했다는 데 있다. 여전히 컴퓨터 관점에서 접근한 탓이다. 결국 ‘아톰=넷북‘이라는 암묵적 상관 관계가 만들어졌다.

인텔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건 스마트폰, 그리고 아이패드였을 것이다. 2010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들고 나와 처음 했던 이야기가 ‘스마트폰과 PC의 사이는 넷북이 아니라 태블릿이 될 것‘이었다. 이게 현실화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문제는 넷북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PC시장의 침체가 오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인텔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두 가지다. PC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거나, 스마트폰 업계에 뛰어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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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업계가 인텔을 반기진 않는다. PC업계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확고한 위치의 인텔이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이방인이다. 특히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휴대폰 제조사들이 선뜻 아톰 프로세서를 써줄 리 만무했다. 인텔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RM 프로세서를 가장 잘 만들던 회사였는데 이 시장을 x86으로 바닥부터 다시 들어가는 건 인텔 스스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게다.

인텔은 가장 먼저 레노버와 손을 잡았다. PC시장의 가장 큰 파트너사다. 레노버도 스마트폰 시장에 처음 뛰어드는 것이었고 인텔도 안드로이드에 처음이었기에 이해관계가 통했으리라. 그 사이 모뎀 업체도 인수했다. 제대로 된 제품만 만들면 됐다. 그게 ‘K900’이다.

먼저 레노버 K900을 간단히 살펴보자. 이 제품은 5.5인치 1920×1080 해상도의 디스플레이와 인텔 아톰 프로세서를 썼다. 프로세서는 듀얼코어로, 2GHz의 속도를 낸다. 본체는 금속 재질로 덮었고, 배터리는 교체할 수 없도록 고정했다. 화면 때문에 커 보이지만, 손에 쥐면 얇고 가벼워서 거부감은 없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는 이 K900의 성능을 두고 한바탕 시끌시끌했다. 현재 가장 빠른 프로세서로 꼽히는 ‘갤럭시S4’의 엑시노스5 옥타와 엇비슷하거나 더 나은 성능을 낸다는 테스트 결과가 나와서다. 안투투 벤치마크, 쿼드런트 등의 벤치마크 테스트를 돌려보면 어떤 건 최신 ARM 프로세서들이 높게, 어떤 건 아톰 프로세서가 높게 나온다.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를 두고 신빙성 논란이 일긴 했지만 아톰의 성능이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전혀 다른 아키텍처의 프로세서들이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게다가 그게 이제 막 제대로 뛰어든 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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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아톰을 쓴 레노버 K900(왼쪽)과 현존하는 가장 빠른 ARM 프로세서 스냅드래곤800을 쓴 갤럭시S4 LTE-A(오른쪽)의 안투투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 스냅드래곤600이나 엑시노스5은 아톰과 격차가 더 좁혀진다.

대체로 ARM 프로세서는 전력 소비량이 적은 대신 성능이 낮다는 선입견이 있다. 반대로 x86 프로세서는 성능을 올리긴 좋지만 그만큼 전력을 많이 쓴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예전엔 그랬다. 그런데 엑시노스5, 스냅드래곤600, 아톰 프로세서 모두 직접 써보면 큰 성능 차이는 없다. 사실 벤치마크 테스트는 대략의 성능을 가늠할 뿐이다. 아키텍처가 다르면 점수의 특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몇 % 내의 점수 차이로 어떤 제품이 우월하다고 평가하는 것도 어렵다. 게다가 모두 안드로이드를 편하게 쓰는 데 부족하지 않은 성능을 낸다.

가장 의외였고 만족스러운 건 열이나 배터리 성능이었다. ‘배터리 먹는 귀신’으로 불리는 ‘모두의 마블’을 쉬지 않고 3시간 돌리고도 16% 가량 배터리가 남았다. 대기상태에서도 거의 전력을 쓰지 않는다. 절전 효과는 확실하다. 배터리 걱정 없이 쓸 수 있다.

중요한 건 아톰이 안드로이드에 쓰기 충분한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K900을 일주일 가량 썼는데 처음 켤 때 인텔 인사이드 로고가 뜨지 않는다면 어떤 프로세서를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실행되지 않는 앱은 없었고 속도나 성능도 부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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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로서는 자존심을 찾을 수 있는 기본 발판은 세운 셈이고 ARM으로서는 뒷통수가 뜨끔할 수도 있다. 완전히 출발점이 다른 두 프로세서 진영이 성능이나 전력의 특성 모두가 닮아가고 있다. 내년에는 또 다시 완전히 새로운 아키텍처로 성능을 끌어올릴 채비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제조사와 소비자의 인식이다. ‘인텔 칩=PC’라는 고정관념을 인텔은 깨야 한다. 제조사에게는 성능과 전력 소비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인텔 칩을 썼을 때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점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아톰이 ARM보다 더 빠르다는 논리만으로는 시장을 뒤집기 어렵다.

그래도 K900을 만져본 느낌은 꽤 좋았다. 인텔은 애초에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저전력 칩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단말기에 넣었다. 삼성도 ‘갤럭시탭3’에 아톰 칩을 쓰면서 상황을 거들고 있다. 게다가 올해 말에는 뿌리부터 완전히 싹 뜯어 고친 새 아키텍처로 만든 모바일 프로세서가 인텔 로고를 달고 나온다. 지금은 듀얼코어지만 인텔은 새 아키텍처로 8코어짜리 칩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새로운 경쟁자가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은 늘 흥미롭다. 그게 심지어 계급장 떼고 새로 시작하는 인텔이니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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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